LG생활건강(대표 이정애)의 2023년 2분기 전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한 1조8077억원, 영업이익은 27.1% 감소한 1578억원을 기록했다. HDB, Refreshment 매출은 전년 대비 소폭 성장했으나 Beauty 매출이 약 8% 감소하며 전사 매출이 역성장했으며, 원가와 고정비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력 구조 효율화 및 북미 사업 구조조정 관련 비경상 비용 반영 등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2023년 2분기 사업별 실적은 아래와 같다. Beauty 사업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한 78
[데일리비즈온 김성은 기자] 빙그레 ‘닥터캡슐 1000’이 리뉴얼 후 매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빙그레는 ‘닥터캡슐 1000’의 올해 1월에서 6월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5배 매출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닥터캡슐 1000’의 이중캡슐 유산균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캡슐로 감싸 위산과 담즙산으로 유산균이 사멸하는 확률을 줄이고 장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빙그레 관계자는 “분말 비피더스 유산균 대비 닥터캡슐의 캡슐로 감싼 유산균이 1000배 이상 생존율이 높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며 “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빙그레의 ‘닥터캡슐 1000’이 지난해 8월 리뉴얼 이후 올해 대박 행진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올해 1월~4월 ‘닥터캡슐 1000’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0배 증가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닥터캡슐 1000’의 이중캡슐 유산균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캡슐로 감싸서 유산균이 위산에 의해 사멸하지 않고 장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특히 분말 비피더스 유산균 대비 닥터캡슐의 캡슐로 감싼 유산균이 1000배 이상 생존율이 높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아울러 닥터캡슐의 올리고당 성분은 몸 속에
에베레스트가 초등정되었다. 등산가들은 이제 최고봉이라는 높이의 문제에서 해방되었고 등산사의 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최초라는 단어의 마력은 많은 갈등과 모순점을 단숨에 덮어 씌우기도 하고 중독성이 강한 유혹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에베레스트만큼 등산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신비를 간직한 산도 없었다.이제 등산가들은 미래의 새로운 등반 대상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에베레스트 초등정은 히말라야 역사의 진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세계의 산악계에 남
[데일리비즈온 심은혜 기자] 인도 화장품 시장이 뜨고 있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도 이미용용품 산업 시장 규모는 135억 달러에 달하며 매년 4.72% 성장세를 지속해 오는 2022년에는 170억 달러 규모로 성장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Redseer 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인도 이미용용품 시장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으로 성장해 세계 시장 점유율 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지만, 한편으로 공략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인도 발리우드의 영화를 보면 인터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유럽, 북미 등 북반구의 선진국들을 대표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반대급부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 고민은 단지 지지부진한 경제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물 부족 문제다.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개발도상국들 내부에서 식수 고갈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식수를 구하느라 드는 비용이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
미국인 최초로 K2에 오른 짐 윅와이어는 산에서의 고립과 육체의 탈진에서 오는 묘한 희열감과 산에서 얻는 인생의 값진 교훈,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어렵고 위험한 등반을 즐겼다. 하지만 산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체력의 한계, 동료들의 죽음은 짐에게 더 이상 등반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그럼에도 그 악몽의 기억에서 잠시 벗어나면 다시 등반을 계획하는 중독성을 보이고 만다. 짐은 1940년생으로 20세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했고 에베레스트와 K2에 관련된 독서를 많이 했다. 가장 감동을 준 책은 모리스 엘조그의 《안
제2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메스너는 주말마다 은행원인 동생 귄터와 등반을 함께 다녔다. 1968년 여름에 피아트 자동차를 구입한 메스너는 귄터와 함께 등반여행을 하며 토니 히벨러와 아이거 북벽 노스 필라 초등정에 성공했다. 1969년 대학에 입학해서 기계학을 전공하며 심도깊게 공부하고 있는데 티롤 산악계로부터 안데스 등반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안데스 화야시 산군의 예루파하 동벽을 초등하고 돌아온 메스너는 학업을 포기했고 등반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부모도 어렵지 않게 동의했다. 그는 바로 치
에르족은 전체적인 등반능력과 자질면에서 세 명의 샤모니 가이드 출신보다는 못했지만, 어떤 힘에 의해서 대장으로 선발되었다. (당시 프랑스산악회 회장이었던 루시엔 데비는 에르족의 친구) 또한 대원들은 등반이 끝난 후 5년 이전에는 등반에 관련한 어떤 글도 출판하지 못하고 대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서약을 강요당했었다. 1951년에 에르족의 공식 등정보고서가 나왔고 1956년에 라슈날은 《Vertigo Notebooks》을 집필했다.그러나 이 원고가 완성될 즈음에 라슈날이 스키를 타다가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1950년 6월 3일, 모리스 에르족(1919-2012)과 루이 라슈날은 힘겹게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했다. 라슈날은 발이 이상했고 동상에 걸린 것 같았다.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가자고 에르족에게 제의했지만 에르족은 혼자서라도 올라가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정상에 오른 에르족은 등정의 기쁨에 환호했고 프랑스 국기와 산악회 깃발, 기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했다.날이 저물고 폭풍의 조짐이 보였다. 몬순이 시작된 것이다. 라슈날은 조바심이 나서 계속 에르족에게 하산하자고 재촉하다가 지쳤고 그냥 짐을 챙겨서 하산했다. 좀
텐트 문이 모두 열려 있어 안으로 눈이 가득 쌓여 있었고, 장비와 연료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침낭과 식량이 보이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세 명의 대원이 텐트를 새로 세웠는데, 더 이상 아래 캠프로 내려가기에는 체력이 소진되었고 시간도 늦어, 침낭 한 개로 세 명이 최악의 고통스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울프는 캠프7에 그대로 남아 있고 비스너와 파상 라마가 캠프6로 내려갔다.아직도 그들의 등정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캠프6에는 틀림없이 식량과 장비, 셰르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캠프6에도, 그리고 캠프2까지도
1939년 미국의 K2(8,611m) 원정대는 등반 역사상 가장 많은 글과 이야기, 의혹을 남겼다. 세계 초등정을 눈앞에 두고 실패한 이 등반대에서 어떤 일이 왜 벌어졌고 누구에게 잘못이 있었는가 하는 추측과 의혹은 지금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원정대가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겪은 원정대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1939년 7월 19일 오전 9시경, 등반대장인 프릿츠 비스너와 셰르파인 파상 라마는 K2 정상을 향해 7,900미터 지점의 캠프9을 떠났다. 아직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눈과 얼음, 바위지대를 무산소로 오
1924년 6월 8일 오후 12시 반경, 에베레스트 북동릉 8,600m 지점에서 조지 말로리와 샌디 어빈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서 세기적인 미스터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실종되었는가, 아니면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했는가? 세계등산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사라진 연기를 해낸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뛰어난 산악인들이 수없이 실종되었다. 에베레스트는 그 많은 비밀들을 숨기기에 충분히 거대하다. 빙하는 추락하는 모든 물체를 언제라도 얼음 무덤에 감출 수 있다. 단지 그들이
텐징 노르게이는 영국의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를 정찰하기 위해 티베트에 갔었던 1921년보다 몇 년 전, 그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는 아버지의 야크 떼를 몰고 티베트 카마계곡의 높은 초원에서 에베레스트 동벽 기슭까지 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는 온 가족이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서 네팔로 이주했다. 티베트에서 건너온 셰르파들과 함께 에베레스트의 남쪽에서 살았다.다른 셰르파들과 마찬가지로 텐징도 인도의 다아질링으로 가서 유럽 등반대의 일을 찾고 있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의 네팔 왕국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1935년, 그에게
영국의 등산가인 쿠르트 디엠베르거(Kurt Diemberger)는 히말라야에서 특이한 경력을 한동안 유지했었다. 그것은 1970년대 말에 히말라야 8천 미터 자이언트 5개를 등정한 기록이다. 1957년 브로드피크, 1960년 다울라기리, 1970년 대 말에 에베레스트와 마칼루, 가셔브룸2봉을 등정한 것이 그것들이다.1986년에 8천 미터 자이언트 14개를 인류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4년 당시 낭가파르바트와 마나슬루를 등정해 디엠베르거와 같은 기록을 갖고 있었다. 디엠베르거와 메스너는 세 번째 8천 미터 도전이 될
“당신이 열망하는 꿈을 이루면서 산다는 것은 그에 상당한 위험과 어려움 없이는 결코 성취되지 않습니다. 단지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대가를 지불할 필요는 없어집니다. 자유는 내 삶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유는 산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산을 등정하고 무사히 하산해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산 또는 자연을 정복해서, 또는 그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내 안의 약점과 단점들을 이겨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내가 1년 내에 8개의 고산을 등정하겠다는 이 ‘Caravan of Dreams’ 프로젝트는 내 자신의 꿈속에서
스리랑카에서 차 재배를 하던 아버지를 3세 때 여윈 에릭 십튼(1907-1977)은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인도와 유럽을 자주 여행했다. 이때의 영향으로 십튼은 방랑생활을 즐겼고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했다. 십튼이 9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정식교육을 시키려고 런던으로 갔지만 글 공부가 부족했던 그는 읽기와 쓰기가 느렸고 실독증세로 고생했다.실독증은 독서 장애자가 문자를 보고도 발음으로 이어지는 연상작용이 되질 않고 정확하게 듣지를 못하는 것으로, 결국 외국인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영어 강좌를 수강했다. 이 학교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
K2봉은 1954년 7월 31일, 히말라야 8천미터 자이언트 중에서 네 번째로 초등정이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산악회의 꼼빠뇨니와 라체델리는 110년 전인 1909년에 개척된, 지금은 K2봉에서 가장 고전적인 루트가 된 아브루찌 능을 따라서 정상을 향한 길을 열었다. 이 아브루찌 능을 개척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탐험가 아브루찌 공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경이로운 등반과 탐험으로 명성을 떨쳤다.1873년 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한 그는,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1861~1946년)의 손자로 당시 아버지는 스페인 왕이었다.
“타보체(6,564m) 북동벽에 도전하는 행위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일이다. 3분의 2는 미쳐 있어야 하고 3분의 1은 술에 취해 있거나 루트에 대해 전혀 무관심해야 한다.” 1984년, 쏟아지는 대형 낙석사태로 황급히 철수했던 존 로스켈리는 1989년 1월, 제프 로우와 함께 이 불가능의 벽에 다시 도전했다.로우는 요세미티에서 많은 초등에 성공했지만 빙벽과 알파인 거벽등반, 동계 단독등반,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암릉에서 그 명성이 더 알려졌다. 로스켈리와는 등반경력과 체격, 나이가 비슷했지만 인생항로는 많이 달랐다. 로
1980년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를 탐험하던 윌리엄 홀게이트(저자)는 우연히 중앙아시아의 지도에서 아무런 표시없이 백색으로 남아있는 지역을 발견한다. 중국의 신장주와 티벳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고립된 아르카 타그Arka Tagh 산군이 그것이다.아르카 타그는 북쪽으로 신장의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에 티벳의 창탕고원, 동쪽은 차이담의 소금벌판과 늪지대, 서쪽에는 쿤룬고원이 가로막아 난공불락의 성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무인구無人區(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다.UFO가 나타나고 예티Yeti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핵실험도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