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⑳-2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⑳-2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5.14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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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악회(AAC) 에서는 사고 원인을 밝히기로
- K2조사보고서가 잘못된 것, 비스너를 종신 명예회원으로 추대.
사진= 히말라야 k2정상 이미지컷, 높이는 8,611 metres 이다 / 사진출처 Wikipedia
사진= 히말라야 k2정상 이미지컷, 높이는 8,611 metres 이다 / 사진출처 Wikipedia

텐트 문이 모두 열려 있어 안으로 눈이 가득 쌓여 있었고, 장비와 연료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침낭과 식량이 보이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세 명의 대원이 텐트를 새로 세웠는데, 더 이상 아래 캠프로 내려가기에는 체력이 소진되었고 시간도 늦어, 침낭 한 개로 세 명이 최악의 고통스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울프는 캠프7에 그대로 남아 있고 비스너와 파상 라마가 캠프6로 내려갔다.

아직도 그들의 등정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캠프6에는 틀림없이 식량과 장비, 셰르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캠프6에도, 그리고 캠프2까지도 모조리 철수된 상태였다. 그들은 너무 탈진해서 텐트를 둘둘 말아 덮고 잠을 청해 봤지만, 며칠간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얼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한동안 내려가니 빙하지대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베이스캠프에 있던 이튼 크롬웰이 이들을 발견했다. 비스너는 크롬웰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공격조가 모두 죽은 줄 알았다”고 답한다. 잠시 후 나타난 두란스는 셰르파들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두란스와 세 명의 셰르파는 캠프7에 남아 있는 울프를 지원하기 위해 7월 26일에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비스너는 이틀간 쉬면서 체력을 회복했고 다시 등정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란스는 고소 때문에 캠프4까지만 갔다가 하산하고, 대신 셰르파 두 명을 캠프7으로 올려 보냈다.

베이스캠프에서 회복하려던 비스너는 자신의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고 두란스마저 돌아오자 등정을 포기하고, 이제 캠프7에 있는 울프만 내려오면 등반을 종료하는 걸로 결정했다. 비스너가 울프의 구조를 위해 준비하자 셰르파인 파상 키쿨리가 만류하며 나섰고, 하루에 캠프6까지 올라가는 충성심을 발휘했다.

7월 30일, 네 명의 셰르파로 구성된 구조대가 캠프7에 도착했지만 울프는 이미 심각한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무전기가 없는 원정대여서 베이스캠프에서는 상부 캠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비스너는 8월 3일, 두 명의 셰르파와 함께 구조에 나섰지만 캠프2까지만 도달하고 다시 내려왔다.

8월 5일, 아직도 네 명의 대원이 상부 캠프에 있는데 엄청난 폭풍이 몰아쳤고, 30㎝ 두께의 눈이 쌓였고 희망의 끈은 보이지 않았다. 8월 7일, 원정대는 철수를 선언했고 고소 캠프에 있던 울프와 셰르파 세 명의 흔적은 그후 발견되지 않았다.

비스너는 귀국 후 심한 무릎 관절염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K2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분석했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비스너가 등반을 한창 진행시키던 7월 중순에,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무기력했고 패배주의와 냉소만이 흘렀었다.

셀던과 크랜머, 크롬웰에게 등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로지 집에 갈 궁리에만 전념했다. 결국 셀던과 크랜머는 아무런 보고없이 베이스캠프를 떠나 귀국했다. 석연치 않았던 두란스의 행적도 추적했다. 두란스는 공격조가 등반을 계속 진행하는 도중에 체력 저하로 두 명의 셰르파를 캠프6에 남기고 혼자 캠프2로 내려왔다.

그때 캠프7에 올라갔던 텐드롭이 공격조 세 명이 눈사태로 모두 죽었으니 하산하자고 재촉하자, 그는 어떤 확인도 하지 않고 보급품을 눈 위에 던져놓고 침낭만을 갖고 하산해서 캠프를 철수시켰다. 텐드롭이 짐을 수송하기가 힘들어서 거짓 ‘눈사태 이야기’를 꾸며 낸 것이다. 또한 하부의 캠프들이 파손된 이유도 살펴봤다.

비스너가 하부 캠프로 내려올 당시 너무 지쳐서 주의깊게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메모가 있었는데, 등정을 예상했던 두란스가 7월 18일에 남긴 것이다. 즉, “등정을 축하하고 철수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메모였다. 두란스는 정상 공격조가 하산할 때 침낭을 갖고 내려올 거라고 잘못 생각했고 무리하게 철수를 서둘렀다.

아마도 베이스캠프의 음울했던 분위기와 정상 공격조에 선발되지 못한 대원들의 불만과 지루함, 연락 수단이 없는 관계로 만들어지는 무수한 억측과 상상들이 이들을 조급하게 만든 것이다.

미국산악회American Alpine Club에서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해서 사고 원인을 밝히기로 했다. 고산등반에서의 위기관리와 리더십에 대한 조사 결론이 나왔다. 등반대장인 비스너의 대원 관리에 문제가 있었고 비스너가 두란스를 공격조에서 뺀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셰르파들만 중간 캠프에 남긴 두란스의 판단이 지적되었고, 울프 혼자서 고소 캠프에 남게 된 상황도 지적이 되었다. 이 모든 결과의 책임이 비스너에게 쏠리게 되었다. 미국산악회의 이런 결정에는 비스너가 독일인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치가 않았다.

1930년대의 분위기는 아이거 북벽 초등 경쟁에서 보듯이 영국과 독일의 첨예한 대결 구도였다. 정치적으로는 전쟁과 히틀러의 등장으로 미국인들에게 독일보다는 영국에 좀 더 동정심이 가게 만들었고, 이런 맹목적인 국수주의와 애국심이 그들의 진상 조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스너는 1941년 미국산악회에서 자진 탈퇴했다. 하지만 1966년, 미국산악회에서는 그들의 K2 조사보고서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했고 비스너를 종신 명예회원으로 추대했다.

그는 1939년 당시, K2 정상을 200여 미터 남겨두고 돌아선 것에 대한 심정을 회고했다. “당시 나의 체력과 컨디션은 최고였고 날씨도 달빛도 더없이 좋았었다. 나는 셰르파인 파상 라마와 연결된 로프를 풀고 단독으로 충분히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파상 라마는 나의 친구였고 매우 신중했으며 사려 깊은 대원이었다. 그는 나에게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나는 그런 친구와 연결된 로프를 풀 수가 없었다.”

■ 글 | 호경필(전 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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