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㉓-2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㉓-2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6.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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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족은 인터뷰에서 ‘안나푸르나는 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사진= 안나푸르나 /픽사베이
사진= 안나푸르나 /픽사베이

에르족은 전체적인 등반능력과 자질면에서 세 명의 샤모니 가이드 출신보다는 못했지만, 어떤 힘에 의해서 대장으로 선발되었다. (당시 프랑스산악회 회장이었던 루시엔 데비는 에르족의 친구) 또한 대원들은 등반이 끝난 후 5년 이전에는 등반에 관련한 어떤 글도 출판하지 못하고 대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서약을 강요당했었다. 1951년에 에르족의 공식 등정보고서가 나왔고 1956년에 라슈날은 《Vertigo Notebooks》을 집필했다.

그러나 이 원고가 완성될 즈음에 라슈날이 스키를 타다가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미완성 원고가 에르족에게 넘어가면서 등반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비난을 담은 내용들은 삭제되었으며, 전체 원고의 75퍼센트가 수정되거나 멋대로 편집되었다. 에르족은 등반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 했다.

에르족의 영웅만들기에서 라슈날은 철저히 배제되었는데, 에르족이 단독으로 등정하고 자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 정도였다. 그는 샤모니 가이드 출신 대원들의 도움으로 등정에 성공한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라슈날의 집필을 도와줬던 필립 코르누는 에르족이 “사람들은 위대한 꿈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원한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자”고 제안한 사실을 증언했다.

또한 1961년에 출판된 테레이의 자서전 《Conquistadors of the Useless》의 육필 원고가 발견되면서 대필작가(로저 니미에르)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원고 역시 자서전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났다. 이브스 발루가 쓴 레뷔파의 전기 《Une Vie pour la Montagne》에서는 등정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에르족은 “등정 사진을 보면 내 뒤로 눈이 경사져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설 수가 없었다.

사실 그것은 커니스(눈처마)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에르족의 《Annapurna》에는 등정한 날 격렬한 바람이 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등정사진을 자세히 보면 깃발이 바람없는 날, 바람에 날리는 흉내내듯 팽팽히 붙들려 있었다. <vertical> 잡지의 편집장인 장-미셀 아셀린은, 레뷔파 생존시 인터뷰에서 “그들이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레뷔파의 표정은 매우 이상야릇했다”고 전했다.

등반사진을 처음 인화했던 <montagne> 잡지에 따르면, 에르족이 찍은 라슈날의 등정사진이 한 장 있었다고 한다. 그 사진에서 라슈날은 바위에 기대 앉은 채로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는데, 에르족은 라슈날이 죽기 전까지 이 사진을 감추고 있었고 지금도 공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레뷔파는 그의 전기에서 “몽블랑에서 장갑을 잃어버린 것은 어리석다고 하고, 히말라야에서 장갑을 잃어버린 것을 국민의 영웅이라고 한다. 에르족이 장갑대신 깃발을 잃어버렸다면 더 없이 좋았을 텐데, 사람들은 영웅의 신화를 동상 걸린 손가락과 발가락에서 찾으려고 한다”며 비난했다.

1998년 에르족은 《L'Autre Annapurna》를 출판했는데 초등정 보고서였던 《Annapurna》와의 차이점에 대해 “《Annapurna》는 소설이다. 철저하게 소설로 쓴 작품이다. 그래서 천 오백만 권이 팔린 것이다. 높이로 쌓는다면 안나푸르나를 12번 넘었을 것이다. 각각의 책은 나름대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Annapurna》는 등반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이고 《L'Autre Annapurna》는 나 자신의 주관적이고 현재 내가 느끼는 모험심에 대한 것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 그는 “6월 5일에 크레바스에 빠져서 신발을 찾으려고 눈을 맨손으로 파는 바람에 동상에 걸렸다”고 말을 바꿨다. 장갑을 잃었지만 그때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대원들의 불만과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눈을 파헤치는 바람에 동상에 걸렸다는 것이다.

에르족은 왜 대원들 간의 불화와 갈등, 고통과 어려움을 숨기려고 했을까? 저자인 데이비드 로버츠는 뒤늦게 발견된 원고와 일기, 친구와 가족의 증언, 신문자료 등을 통해 3년동안 에르족의 비도덕적인 사실들을 밝혀냈지만, 1950년 안나푸르나의 사실과 진실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캠프5에서 동상에 걸린 라슈날을 위해 자기의 신발을 바꿔 신게 하고 두 차례의 등정 기회를 포기한 테레이와, 정상 부근에서 혼자 가겠다는 에르족의 하산을 돕기 위해 돌아서지 않고 함께 따라가며 희생정신의 정수를 보여준 라슈날을 실제 등정자라고 평가했다.

1999년 에르족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안나푸르나는 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새로 나온 책의 영문판 책명은 《Born Twice》다. 당신들은 내 손을 보며 내가 무엇을 잃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손을 보며 내가 무엇을 얻게 되었나를 느낄 수가 있다.”

글ㅣ호경필(전 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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