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⑰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⑰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3.1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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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징 노르게이는 외쳤다 “감사합니다, 초모랑마의 神이시여!”
■에드 더글러스ㅣ출판년도 2003년ㅣ쪽수 320쪽ㅣ출판사 내셔널지오그래픽
■에드 더글러스ㅣ출판년도 2003년ㅣ쪽수 320쪽ㅣ출판사 내셔널지오그래픽

텐징 노르게이는 영국의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를 정찰하기 위해 티베트에 갔었던 1921년보다 몇 년 전, 그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는 아버지의 야크 떼를 몰고 티베트 카마계곡의 높은 초원에서 에베레스트 동벽 기슭까지 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는 온 가족이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서 네팔로 이주했다. 티베트에서 건너온 셰르파들과 함께 에베레스트의 남쪽에서 살았다.

다른 셰르파들과 마찬가지로 텐징도 인도의 다아질링으로 가서 유럽 등반대의 일을 찾고 있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의 네팔 왕국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1935년, 그에게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그의 사부인 앙타르케이의 도움으로 에베레스트 북쪽으로 가는 영국 원정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원정대의 대장은 당대 최고의 등산가인 에릭 십튼이었는데 텐징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리는 100명의 셰르파 지원자 중 다아질링에서부터 등반에 참가할 15명을 선발했다. 앙타르케이를 포함해서 파상, 쿠상 등 셰르파의 대부분이 늙었다. 하지만 19세의 웃기 잘하고 순박한 신참내기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텐징 노르게이였다.”

노르게이라는 이름은 ‘운이 좋은 아이’라는 뜻이다. 그의 순진무구하고 티 없는 웃음은 십튼 대장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1935년 등반에서 셰르파로 뛰어난 역량을 보인 텐징은 에베레스트 북쪽에서 등반이 계속 이어졌던 영국 원정대의 단골 셰르파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을 위해 짐을 나르는 일은 임시직이어서 보장받지 못하는 경력이고 불안한 직장이었다.

셰르파로 고용되지 않아 실직 상태가 오래 가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거기에 텐징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그의 첫 번째 부인의 죽음이었다. 유모를 구하기 전까지 자신이 두 딸을 키워야 했다. 텐징의 셰르파 경력은 40대까지 이어졌다. 그는 자수성가한 뛰어난 등반가로 변해 있었고, 초등정 기록도 몇 개 보유했다.

텐징은 1952년, 네팔 왕국이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첫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입산 허가를 받은 스위스 원정대로부터 셰르파의 우두머리인 ‘사다’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감격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텐징은 사다로서 셰르파들을 이끌면서 일을 잘 분담하여 지시했다.

셰르파들은 난잡하고 혼란스럽게 얽히고설킨 쿰부 빙하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것은 물론, 모든 캠프로 장비와 보급품을 옮겨야 하는 포터의 역할도 맡았다. 빙하지대를 지나면 1,200미터에 달하는 로체 빙벽이 그들을 냉정하게 가로막았다. 그곳을 통과하면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었고 삭막하고 적대적인 환경뿐인 사우스콜이 나타났다.

그곳은 해발 8천 미터가 넘는 죽음의 지대로 제네바에서 온 레이몽 람베르와 텐징이 등정 시도를 위해 떠났던 마지막 캠프가 있었다. 그들은 동료 대원과 셰르파의 도움으로 8,310미터 지점에 비박용 텐트 한 동을 쳤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등반에 맥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텐징의 강인한 체력과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동료 셰르파들이 고소 캠프까지 충분한 장비와 식량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텐징과 람베르는 스토브나 침낭도 없이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달리 할 일이 없게 되었다. 텐징은 양초로 눈을 녹여 소량의 물을 만들어 보지만 갈증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소름끼치는 밤이 지나 아침이 돌아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산소통이 고장 났고 희박한 공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결국 세계 최고봉의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후퇴하고 만다.

텐징은 그해 가을, 스위스의 두 번째 원정대에도 참가해서 에베레스트에 돌아왔지만, 끝내 동계 시즌의 칼바람을 뚫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그는 그때 너무 지쳐 있었지만 많은 것을 깨달았다. 神이 살고 있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가 이제는 단순한 직업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궁극적으로 올라가야 할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건강이 우려되었지만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대에도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5월,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은 해발 8,424미터의 경사진 레지에 비스듬하게 친 작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 텐트는 아직까지 어떤 사람도 밟아보지 못한 고도에 세워졌다. 새벽 4시, 마르고 키가 큰 힐러리가 스토브에 불을 켰다. 그는 밤새 얼어붙은 등산화를 파란 불빛 위에서 말리고 있었다.

키가 작은 텐징은 등산화를 신은 채로 침낭 속에서 잤기 때문에 이 성가신 일이 면제되었다. 텐트 환기통으로 밖을 내다보니 파랗게 안개가 깔린 계곡이 보였다. 5천 미터 아래에 있는 탕보체의 사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가늘게 굽이쳤다. 그들은 神이 자신들을 돕고 있고 초모랑마도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다.

5월 29일 아침 6시 30분, 텐징과 힐러리는 로프를 연결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의 마지막 경사에 있는 아찔한 급사면에 스텝을 만들며 남봉의 눈 더미로 올라갔다. 남봉에는 9시에 도착했다. 3일 전에 톰 보딜런과 찰스 에반스가 이 지점까지 진출했었는데, 등반을 계속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그들은 그대로 하산했었다.

이번에는 텐징과 힐러리에게 여러 가지 좋은 조건들이 힘을 실어주었다. 스위스 팀의 실패한 원인을 분석할 수 있었고, 텐징에게 영향을 받은 셰르파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주었다. 셰르파들은 각 캠프마다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채워 두었고, 산소통의 기능이 잘 작동되도록 조정해 놓았다. 그들이 할 일은 돌발 변수에 대비하는 것뿐이다.

‘힐러리 스텝’을 넘어서자 평탄하고 지루한 길이 정상까지 이어졌다. 오전 11시 30분, 드디어 두 사람은 가장 높은 눈 위에 나타났다. 텐징은 영국과 인도, 네팔, UN의 깃발을 묶은 피켈을 높이 쳐들며 인상적인 포즈를 취했다.(텐징의 카메라 조작이 서툴러서 힐러리가 사진 촬영을 하는 바람에 초등정 사진은 텐징 것만 나온다.)

그리고 딸 니마가 준 파랗고 빨간 연필, 약간의 사탕, 피켈에서 떼어낸 국기들을 눈 위에 내려놓았다. 힐러리는 존 헌트 대장이 건네준 작은 십자가를 눈에 묻었다. 힐러리가 앵글로 색슨족의 전형적인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텐징은 힐러리의 목을 팔로 감싸 안았다. 텐징이 세계 최고봉을 초등정하면서 처음으로 나눈 대화는 나지막한 속삭임이었다. “감사합니다, 초모랑마의 神이시여!”

글ㅣ호경필(에코로바 커뮤니티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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