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원연구소(WRI), ‘물부족 현상 재앙적’
-인도 아대륙, 빙하 40%손실 피할 수 없어
-지하수 오염 문제는 더욱 심각

물부족 문제는 남반구 국가들의 공통 고민이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유럽, 북미 등 북반구의 선진국들을 대표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반대급부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 고민은 단지 지지부진한 경제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물 부족 문제다.

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개발도상국들 내부에서 식수 고갈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식수를 구하느라 드는 비용이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는 위 같은 위기감을 방증한다. 이 연구소는 인도, 이란, 보츠와나 등 17개 국가들이 현재 모든 수자원을 거의 대부분 사용해 극심한 물부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브라질의 상파울루, 인도의 첸나이,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등의 대도시들이 최근 극심한 물부족에 직면했으며, 케이프타운은 지난해 모든 댐이 말라붙는 '데이 제로’(Day Zero) 위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WRI의 베치 오토 연구원은 “앞으로는 이러한 데이 제로의 위험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세계 곳곳이 이러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물 위기가 심각할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용수(用水) 공급 사업의 민영화 움직임 역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 변화, 엉터리 정책, 정치적 무관심이 합쳐져 한 국가를 재앙적 물 위기로 몰고간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TO)는 도시지역에서 안전한 식수를 얻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향후 5년 동안 약 1410억 달러(약 17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WRI 연구는 부적절한 물과 위생으로 인한 전체 경제적 손실을 연간 2,600억 달러(약 315조 원)로 추산했다. 

◆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는’ 인도
  
사람들이 파이프로 끌어온 식수를 구할 수 없을 때 지하수를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환경 피해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나온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자면, 인도 아(亞)대륙에 강물을 공급하는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는 가운데 지하수도 급속히 고갈되고 있다. 인도 아대륙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등이 위치해 있다. 

몬순은 여전히 아대륙 최대 수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물이 남아돌 정도로 풍부했던 시절은 진작에 끝난 지 오래다. 몬순은 빙하, 지표관개, 지하수를 포함해 인간의 주거지에 물을 공급해준다. 인도는 아직도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몬순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인도는 아직까지도 인구 대다수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도 경제는 흔히들 ‘몬순 경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 (사진=연합뉴스)

국제물관리연구소의 아디티 무커지는 “아무리 좋게 봐도 물이 끔찍할 정도로 부족하다”라고 주장했다. 무커지는 연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힌두쿠시-히말라야 산지 일대의 빙하 크기가 조만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신속한 조치가 취해진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세계 기온이 오르는 걸 1.5도로 막을 수 있어도 2100년까지 이 지역 빙하의 3분의 1이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온이 2.7도 오르면 빙하의 절반이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전 세계 온난화가 진행됨으로써 기온이 6도 오른다면 빙하의 3분의 2가 녹아서 없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 중국,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등은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에 거주하는 2억5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빙하 강물에 의존해 사는 16억 5,000만 명의 삶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무커지의 전망이다. 그는 “가장 긍정적으로 예상해도, 전 세계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만 올라간다고 해도 빙하의 36%가 사라질 것이다”라면서 “수류(水流)가 받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 결과 인더스강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의 탄소 배출량 감소 목표를 달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상 빙하 손실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커지는 기후 변화 자료와 수천 편의 보고서를 갖고 연구했지만, 정보위성 사진을 갖고 실시한 또 다른 연구 역시 빙하 손실 수준이 이미 심각한 상태임을 확인시켜줬다. 과학잡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에 실린 연구 보고서는 아대륙에서 매년 83억 톤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고 추산했다. 기후 변화 때문에 2000년부터 2016년 사이 매년 손실되는 빙하 양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히말라야 빙하는 남아시아 인구 밀집 지역에 해빙수(解氷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 빙하보다 지하수가 문제다

지하수에 관한 전망은 더욱 심각하다. 많은 국가에서 지하수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가령 멕시코시티는 지하수가 급속히 고갈돼 도시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는 지하수 의존도가 너무 높아 지금은 수백 m 지하의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한 다공질 삼투성 지층)의 물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실정이다.

뉴델리에서 남아시아 수원을 연구하는 히만슈 타카르는 “모든 물 연구 결과가 아대륙에서 지하수가 최대 물 공급원임을 확인해주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부가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엉터리 정책들만 잇따라 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하수 개발이 아닌 댐과 수로 등의 지표관개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최악의 물난리에 직면한 데다 남서 몬순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다. 지난 6월 인도 북부 라자스탄주의 도시 추루가 낮 최고 섭씨 50.6도까지 올라가면서 관측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수도 뉴델리는 46도를 넘겼으며 히말라야산맥이 있는 히마찰프라데시주까지 44.9도를 기록했다. 폭염에다 가뭄까지 겹치면서 물이 부족해 빨래는커녕 씻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의 한 마을은 주민 2300명 중 90%가 물을 찾아 피난을 떠났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인도 현지 언론은 "인도는 역대 최악의 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일어난 물 위기로 바닥을 드러낸 댐의 모습 (사진=Times of India)

국립 싱크탱크 니티아요그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까지 뉴델리·벵갈루루 등 인도 대도시 21곳에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해 약 1억명이 식수 부족을 겪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식수 부족이 지속된다면 2030년까지 인구의 40%가 식수를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발간한 상수도 관리 종합지수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20만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죽고 있다.

이에 나렌드라 모디 2기 정부는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수자원부와 식수부를 통합해 수력(水力)부를 만들었다. 지난 선거 기간 여당인 인도인민당은 “2024년까지 모든 가정에 식수를 공급해 국가의 물 문제를 종식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물 절약을 강조하고 물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 말고는 아직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천하태평이다. 지난 6월 26일 열린 상원 물 위기 대처방안 논의 때는 대부분의 위원들이 불참하기도 했다. 여당 소속의 한 의원은 “방법이 없는데 어찌하겠느냐”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 6월 연방정부의 싱크탱크인 니티 아요그(Niti Ayog)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년까지 인도 도시 21곳에 물이 부족할 전망이다. 그보다 훨씬 전인 2009년에 이미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북인도의 지하수가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애나 미트린(Diana Mitlin) 맨체스터 대학 교수는 “물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며 “데이터를 살펴보면, 파이프가 있더라도 물이 없고, 물이 있어도 일주일에 3일, 그것도 3시간 정도씩으로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물 공급 부족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수 처리 시설 부족 내지 결여로 오염된 물이 파이프로 유입되는 광경도 목격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무커지 역시 미트린 교수의 우려를 뒷받침했다. 그는 “인도의 물 위기는 더 이상 아직 폭발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아니고, 이미 폭발해서 도시 빈민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끔찍한 피해를 준 시한폭탄이다”라고 주장했다. 걱정스러운 사실은, 전 세계 정책당국자들이 안전한 음용수(飮用水) 이용 수준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WRI 보고서는 지적했다. (계속)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