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⑲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⑲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4.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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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리와 어빈이 실종된 지 75년이 지나서 에베레스트 북벽 8,200m 지점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했다.
■콘래드 앵커, 데이비드 로버츠 공저ㅣ출판년도 1999년ㅣ쪽수 191쪽ㅣ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
■콘래드 앵커, 데이비드 로버츠 공저ㅣ출판년도 1999년ㅣ쪽수 191쪽ㅣ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

1924년 6월 8일 오후 12시 반경, 에베레스트 북동릉 8,600m 지점에서 조지 말로리와 샌디 어빈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서 세기적인 미스터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실종되었는가, 아니면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했는가? 세계등산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사라진 연기를 해낸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뛰어난 산악인들이 수없이 실종되었다. 에베레스트는 그 많은 비밀들을 숨기기에 충분히 거대하다. 빙하는 추락하는 모든 물체를 언제라도 얼음 무덤에 감출 수 있다. 단지 그들이 죽기 전에 등정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전설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말로리와 어빈이 실종된 지 75년이 지난 1999년 5월 1일, 미국의 고산등반가 콘래드 앵커는 에베레스트 북벽 8,200m 지점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했다. 다섯 명의 대원과 함께 수색을 하던 앵커에게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흰색 천이 눈에 띄었다. 빛을 흡수하는 대리석 같은 물체에 다가서니, 발이 아래로 향하고 양말이 벗겨진 시신이었다. 옷은 아주 오래된 듯한 섬유 재질로 되어 있고 대부분 찢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석고로 만든 미이라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어빈의 시신인가?”

얼굴은 묻혀 있고 팔은 위로 들려져 있고 손가락은 추락을 제동하려고 애쓴 듯이 바위 부스러기를 꽉 붙들고 있다. 등과 어깨를 보니 무척 힘이 세고 잘 다듬어진 건장한 체격이었다. 허리에는 면으로 짠 로프가 묶여 있는데 추락하면서 바위 모서리에 의해 끊겨진 것 같다. 팔꿈치는 부러졌고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뒤틀려 있다. 오른쪽 엉덩이는 히말라야 영양이 쪼아 먹은 듯 큰 구멍이 나 있고,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동료 대원들과 발굴 작업을 하는데 셔츠 칼라에 ‘G. Mallory’로 표기된 이름표가 붙어 있다.

“왜 어빈이 말로리의 셔츠를 입고 있지?”

그때까지 대원들은 이 시신이 어빈의 것으로 짐작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고산등반가 왕 홍바오가 1975년 북벽을 등반할 때, 캠프6 부근에서 영국 사람인 듯한 시신을 봤다는 증언을 했었다. 그리고 미국의 등산역사가인 톰 홀첼이 1986년, 말로리의 시신을 찾기 위한 등반대를 최초로 구성하면서 실종 당시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즉, 말로리와 같이 등반을 하던 어빈은 지쳐서 포기하고 자신의 산소를 말로리에게 건네고 혼자 하산하다 추락사했다. 단독으로 오르던 말로리는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오다 저체온증이나 탈진으로 롱북 빙하쪽으로 추락사했다는 것이다. 왕 홍바오가 봤다는 그 영국인 시신이 어빈의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8,200m 지점에서 피켈로 바위와 얼음을 파헤쳐야 하는 발굴 작업은 과도한 체력소모를 요구했다. 제이크가 어빈의 이름을 바윗돌에 새기고 있는데, 팔소매에 말로리의 이름이 바느질된 것이 발견되었고 수신인이 말로리로 된 편지를 찾아냈다. 그제야 그들은 말로리의 시신임을 확인했다. 오랫동안 전설로만 전해 들었던 말로리의 시신을 보자 대원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처참했고 시신을 드는 순간 썩은 통나무 들 때 나는 삐거덕 소리가 났다. 캠프 이동간의 상황을 적은 메모와 나이프, 연필, 응고된 박하향 케이크, 바늘과 실, 스완 성냥과 튜브, 말로리의 이니셜이 새겨진 또 다른 손수건, 고도계, 구부러졌지만 안경알이 온전한 고글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시신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 샘플을 채취했다. 오른쪽 팔에서 3.8㎠의 피부를 절개하는데 마치 말안장을 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수집품을 옮기는 작업에 대원들이 주저했다. 누구도 말로리의 머리 가까이에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리의 성스러운 영혼에 혹시나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들은 바위로 방호벽을 쌓아 시신을 묻고 기도문을 외웠다. 앵커는 캔디 바를 올려놓고 좀 더 머물며 불교식으로도 기원했다. 캠프5로 돌아온 대원들은 만족감으로 흥분해 있었고 앵커는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말로리의 처참한 시신이 오히려 그들을 편안하게 해 준 것이다. 말로리와 비슷한 산에 대한 정서와 목표, 열정, 슬픔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고, 인생 또한 비슷한 동기로 진행되는 듯해서 강한 연대감이 작용했다. 1924년 당시의 복장과 장비로 이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말로리의 용기와 대담성이 앵커를 압도했다.

1886년 6월 18일에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말로리는, 1900년대 초 등산 무대에서 가장 유능하고 카리스마적인 존재였다. 그에게 ‘불가능’이란 단어는 그를 흥분시키는 최악의 도전적인 도발이었다. 그의 당돌함과 과감성은 그의 가족들을 놀라게 했지만 수려한 외모와 강인한 의지, 운동으로 단련된 178㎝의 키와 72㎏의 체격은 어떤 사람도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다. 영화와 그림에도 깊게 빠졌고 검정 셔츠에 칼라 넥타이를 즐겨 입었으며 장발을 즐겼다.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에는 밤 10시 야간통행금지 시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호수에서 누드 수영에 열심이었고, 그의 이러한 돌출행동과 외모로 많은 화가들로부터 누드모델 요청이 이어졌다. 알프스에서의 등반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수직의 빙벽에서 자연의 조건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효율적으로 등반을 진행했다. 강한 체력과 유연성, 극도로 절제된 균형 감각으로 뱀춤을 추듯이 부드럽고 리드미컬하게 연결했으며, 자신의 등반기를 <알파인 저널>에 기고하는 등 글재주도 뛰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비평 분야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공립학교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1921년, 영국의 제1차 에베레스트 정찰원정대는 허술한 대원구성과 악천후로 실패했다. 1922년 제2차 원정대는 노스콜을 통과해서 캠프5까지 진출했지만, 강추위와 대원들의 탈진으로 당시 인류의 최고 도달 지점인 8,220m를 기록하고 하산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근로자들을 상대로 역사학을 가르치던 말로리는 1924년, 제3차 원정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원정등반대는 최강의 대원들로 구성되었고 대장이던 찰스 브루스가 열병이 나서 인도로 되돌아가자 테디 노톤이 등반대장으로, 말로리가 클라이밍 리더로 등반을 진행했다. 그러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지 한 달 동안 악천후로 캠프4까지만 전진했고 체력과 사기가 떨어지면서 포터들과의 불협화음도 불거졌다. 그러다가 6월 2일, 여섯 명의 타이거(체력이 뛰어난 고소 포터)와 함께 노톤과 하워드 서머벨은 8,160m 지점에 캠프6 설치에 성공했지만, 서머벨의 기침과 노톤의 설맹으로 8,570m 지점까지 도달하고 하산했다.

말로리는 2차 등정 시도를 준비하고 파트너로 어빈을 지명했다. 원래는 노엘 오델이 파트너였지만 포터들의 말을 이해하고 산소통 조작이 능숙한 어빈이 선택되었다. 화학과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어빈은 보이지 않는 강인함이 있었고, 조용하고 전형적인 신사 스타일이다. 말로리보다 더 건장한 체격에 부지런하고 자신감이 돋보이는 어빈의 존재감은 말로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6월 8일 오후 12시 반경, 오델이 말로리의 등반을 지원하기 위해 캠프6로 향하는데, 북릉상에서 쫓기듯이 서둘러 전진하는 그들을 목격했다.

전날 얘기로는 오전 8시경에 그곳을 통과한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늦어진 걸까. 오델이 캠프6에 도착해서 보니 산소통을 수리했는지 텐트 안이 정신없이 산만했다. 말로리의 건망증이 발동하여 컴퍼스와 플래시를 두고 떠났고, 버너는 조작 실수로 설사면 아래로 떨어뜨린 상태였다. 이틀 후 오델이 다시 캠프6에 올라갔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고 그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에베레스트 8천 미터 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초법적인 신의 영역이어서 언제라도 그의 잔혹성을 드러내 그 속에 묻혀 있는 비밀들을 끝까지 숨길 수 있는 지대다. 인간이 그 영역을 무례하게 침범한 것뿐이다. 오델은 갑자기 두려움과 신들의 무관심에 한기를 느끼며 하산했다. 6월 12일, 전 대원이 베이스캠프에 모여 그들의 실종을 인정했다.

1999년 5월 17일, 자유등반으로 세컨드 스텝을 통과하며 말로리의 75년 전 등반을 재현한 앵커는, 말로리가 등정에 실패했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 아이젠이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나 등정 시에는 착용하지 않았다. 캠프2에서 캠프3까지는 반드시 필요했고 캠프4까지는 권장사항으로, 그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등반대 지침서에도 가죽으로 만든 등산화를 아이젠 끈으로 조이면 혈액순환에 방해가 되어 동상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등반 루트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상황에서 고정 로프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시간과 체력을 많이 소모하게 했다. 고정 로프는 루트를 안내해 주는 길잡이로 눈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북동릉에서 한 번 지나간 흔적은 곧 사라지게 된다.

세 개의 스텝을 오르내리는데 고정 로프는 최대한의 안전을 확보해 준다. 하지만 말로리는 되돌아오는 길을 찾느라 많은 시간과 과도한 체력을 소모했다. 1920년대에 유럽 대륙에서는 확보용으로 피톤을 사용했는데, 영국에서는 등반의 순수성을 고집하며 사용을 회피했다. 말로리의 등반대도 철제 피톤이나 해머, 카라비너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노스콜 아래에서 목제 피톤을 사용한 기록만 보인다. 당시 산소통의 무게는 13㎏으로 지금의 것보다 두 배 이상 무겁고 잦은 고장으로 새는 일이 빈번했다. 산소 공급량도 현재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출발 전 날 버너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물을 먹지 못하여 심한 탈수현상을 초래했고, 어빈은 햇빛으로 인해 심한 화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캠프6에서 산소통을 다급하게 수리한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산소통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또한 말로리가 플래시를 두고 떠났다는 것은 그들이 해가 뜬 후 늦게 출발했다는 반증인데, 그 시간으로는 도저히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다. 27미터의 세컨드 스텝 통과도 의문점이다. 북동릉을 등반하려면 푸석바위로 된 세컨드 스텝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특히 오버행 구간은 5.10의 난이도로 당시 독일에서 최고 수준의 난이도였다. 영국에서는 5.7에서 5.8의 난이도가 최고 수준이었는데, 8,600m 고도에서의 5.10은 그 어려움이 더 했을 것이다. 말로리는 30미터 로프 한 동으로 등반했는데, 이 길이로는 27미터의 세컨드 스텝에서 이중 확보도 볼 수 없었고 하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국의 리버풀에서 증기선을 타고 봄베이까지 와서 기차로 다아지링에 도착한 그들은, 티베트까지 말을 타고 가며 제3의 극점으로 불렸던 미지의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말로리는 어떠했을까. 연락할 무전기도 없고 길을 안내할 고정 로프도 없으며 구조해 줄 대원도 캠프에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로리의 시신 발견이 혹여나 그들의 영혼을 흔들고 신성한 영광을 깨뜨린 것은 아닐까.

■ 글 | 호경필(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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