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⑯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⑯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2.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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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엠베르거는 마지막 희망으로 처녀봉 샤르체에 도전했다.
■쿠르트 디엠베르거ㅣ출판년도 1994년ㅣ쪽수 304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쿠르트 디엠베르거ㅣ출판년도 1994년ㅣ쪽수 304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영국의 등산가인 쿠르트 디엠베르거(Kurt Diemberger)는 히말라야에서 특이한 경력을 한동안 유지했었다. 그것은 1970년대 말에 히말라야 8천 미터 자이언트 5개를 등정한 기록이다. 1957년 브로드피크, 1960년 다울라기리, 1970년 대 말에 에베레스트와 마칼루, 가셔브룸2봉을 등정한 것이 그것들이다.

1986년에 8천 미터 자이언트 14개를 인류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4년 당시 낭가파르바트와 마나슬루를 등정해 디엠베르거와 같은 기록을 갖고 있었다. 디엠베르거와 메스너는 세 번째 8천 미터 도전이 될 마칼루 등반을 함께 하기로 했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디엠베르거가 원정대에서 제외되면서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때부터 디엠베르거와 메스너는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디엠베르거가 15개월 동안 3개의 자이언트를 등정하자 산악계는 디엠베르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디엠베르거와 메스너가 같은 원정대에 합류하자, 누가 먼저 자이언트 14개를 완등할지에 산악계의 흥미가 집중되었다. 이때까지 메스너도 자이언트 5개 등정 기록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사실 디엠베르거는 8천 미터 14 자이언트 완등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에 강력하게 등장한 메스너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경쟁심이 유발된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관계가 결정적인 갈등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메스너가 1979년, K2 등반을 나서면서 디엠베르거의 오랜 자일파트너였던 헤르만 워스를 등반대원으로 선발하면서 부터다. 디엠베르거는 자신이 워스보다 등반 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원 선발에서 탈락한 이유가 메스너의 계략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1974년 봄,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개최된 트렌토국제산악영화제에서 메스너는 디엠베르거에게 마칼루 남벽을 같이 해보자고 제의했다. 이 등반에 성공하면 그들은 각각 3개씩의 자이언트 등정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인스브룩에서 ‘4개의 8천 미터’(디엠베르거 2개+메스너 2개)라는 주제로 연속 강연을 하고 오던 참이었다.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은 동시에, 또는 연이어서 마칼루 등정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디엠베르거는 원정대장으로부터 대원 선발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등반 대원 중 일부(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았다)가 디엠베르거의 합류를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누구보다도 마칼루 등반에 애착이 컸던 디엠베르거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이었다. 그는 곧 미련을 떨쳐버리고 게르하트 렌서가 이끄는 로체 원정대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 팀은 시작부터 불운과 난관에 봉착하고 등반 기간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에베레스트에는 스페인 원정대가 먼저 등반허가서를 받아 놓고 있었는데, 그들이 동일한 루트 사용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와 로체 노말 루트는 베이스캠프부터 사우스 콜까지가 동일한 루트다. 그들의 완강한 반대로 네팔 당국은 결국 디엠베르거 팀에게 다른 루트로 변경해서 등반하라고 통보했다.

로체에서 다른 루트라면 남벽인데 그들에게는 그만한 등반 장비도 없었고, 누구도 감히 해보겠다고 대드는 대원도 없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실패한 자살’을 시도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바룬 빙하에서 출발하는 ‘그레이트 리지’를 시도하기로 했다. 이 리지는 두 개의 7천 미터 급 처녀봉인 샤르체 7,502m와 Peak 387,589m, 그리고 로체샬 8,383m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괄목할만한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파이오니아가 된 듯이 흥분했다. 또한 이 등반 라인을 로체와 에베레스트로 연결해서 티베트로 잇는다면, 8천 미터 자이언트 세 개를 동시에 종주하는 역사적인 등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창하게 시작된 그들의 거사는 악천후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그들에게 비협조적이었던 스페인 팀이 등반을 포기했고, 마칼루에 있던 메스너팀도 철수했다. 세 번째 8천 미터 자이언트 등정자는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다.

디엠베르거는 마지막 희망으로 처녀봉 샤르체에 도전했다. 샤르체는 에베레스트 산군의 동쪽에 있는데 무척 위험하고 어려운 대상이었다. 디엠베르거가 여기서 기억나는 것은 끈끈했던 우정과 폭풍, 그리고 고단함뿐이다. 캠프2의 텐트는 기총사격을 받은 듯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캠프3에서는 미친 듯한 돌풍이 모든 것을 날려 버리면서 텐트 폴대를 부셔버렸다.

대원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망가진 캠프를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떠났다. 캠프4에서는 드디어 악마들이 준동해서 엄청난 양의 눈으로 캠프를 통째로 덮어 버렸다. 워스와 나왕텐징 셀파는 캠프5에 있다가 밤사이에 발생한 눈사태로 끔찍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간신히 탈출한 것만 해도 천운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샤르체 베이스캠프에서 맞이하는 히말라야의 밤은 환상 그 자체였으며 마칼루를 배경으로 하는 스카이라인과 번개 불빛, 그 검은 실루엣에 펼쳐지는 숨 막히는 우주의 불꽃쇼, 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던 돌풍과 강추위, 그리고 얼음의 백색 침묵이 연출했던 독특한 겨울을 체험했고, 매일매일 그들에게 적대적인 운명과 힘겨루기도 해야 했다.

디엠베르거는 악천후가 오래 지속되면서 몸살과 탈진으로 고생하다가 6,300미터 지점에 걸쳐 있던 커니스가 무너지면서 머리를 다쳤다. 거기에 오른쪽 폐마저 이상이 생겨 고통스러웠지만 끝내 리지 상에 있는 첫 번째 무명봉에 오르는데 겨우 성공했다. 이번의 격렬했던 등반을 통해서 디엠베르거와 워스, 그리고 나왕텐징 셀파는 4년 후에 마칼루를 동시에 등정할 수 있는 우정을 키워냈다.

■ 글 | 호경필(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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