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승계·실용주의·젠틀맨·4차산업

오프라인 시무식 관행을 깨고 디지털 신년사를 하고 있는 구광모 회장. (사진=LG)
오프라인 시무식 관행을 깨고 디지털 신년사를 하고 있는 구광모 회장. (사진=LG)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대기업 임원의 경영 행보는 가지각색이다. 이들의 방식은 사회의 귀감이 될 때도 있지만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심지어 오너리스크로 이어져 기업의 존망을 위협하기도 한다. 실적에 따라 자리유지가 결정되는 전문경영인부터 일명 ‘철밥통’을 가진 오너경영인까지 임원의 움직임이 곧 경제의 흐름이다. 이에 본지는 키워드를 주제로 각 임원의 경영 행보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내 3대(삼성·SK·LG) 기업 오너 중 가장 젊은 총수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취임 2년 만에 그룹의 분위기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40대 초반의 젊은 오너가 그룹의 분위기도 젊고 실용적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는 것이다.

◇장자승계=구 회장은 1978년 서울 출생이다. 고 구본무 전 회장의 후임을 맡은 구 회장의 생부는 구본무 전 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구 회장은 2004년 구본무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이는 LG그룹의 ‘장자 승계’ 가풍에 따른 것이었다. 구 전 회장은 1994년 고등학생이던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딸만 둘이다. LG는 가족 간 경영권을 두고 갈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자가 그룹의 회장직을 이어가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외 가족 구성원은 계열을 분리해 독립하는 것이다. 유교적 가풍을 갖고 있는 것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LG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이같은 유지를 이어오고 있다. 구 창업회장은 1947년 락희화학공업(LG화학의 모태), 1950년 금성(LG전자의 전신)을 만들어 그룹의 기반을 세웠다. 구 창업회장이 1969년 별세한 이후 장남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1970년 2대 회장직에 올랐다. 구 명예회장은 70세를 맞은 1995년 세대 교체를 선언하며 장남인 고 구본무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3대 구본무 전 회장이 2018년 5월 별세한 뒤 그 해 6월 양자인 4대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것이다. 구 회장 취임 이후 구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 구본준 부회장은 고문으로 자리하며 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몰아줬다. LG의 이러한 장자 승계를 두고 줄곧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다른 기업들과 다르게 안정적인 그룹 운영의 비결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반면 요즘 시대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LG그룹은 가풍에 따라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LG그룹은 가풍에 따라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실용주의=이처럼 보수적인 가풍에 따라 회장에 오른 구 회장이지만 경영 방식만큼은 누구보다 혁신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기본적인 성향도 유연함을 지녔고 학업을 외국에서 수행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했다. 잠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MBA 과정에 들어갔다가 도중에 중단하고 스타트업에서 1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후 LG전자에 다시 들어왔다.

구 회장은 회장을 맡기 이전에 LG전자에서 여러 사업부문을 두루 거쳤다. 생산현장 경험도 있다. 상무로 승진한 이후 경영전략과 B2B사업본부 근무 등을 통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4대 회장에 오른 구 회장은 취임 이후 현재까지 실용주의 경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취임한 직후 “회장 대신 대표로 불러달라”는 말을 한 것도 화제가 됐다. 돈 안 되는 사업을 정리하면서 미래 기술에 집중 투자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실행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부와 협력도 마다 않는다. 아울러 순혈주의 노선을 깨고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의 3M 출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구 회장이 첫 번째로 들인 첫 외부 경영인이다. 아울러 LG생활건강에서는 34세 심미진 상무의 파격 승진 소식도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 모두 능력 위주 인사의 실용적인 경영 방식이다.

특히 올해 이 회사가 시무식을 없애고 온라인으로 신년사를 대체했다는 소식도 주목됐다. 구 회장은 올해 초 ‘LG 2020 새해 편지’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전 세계 25만 명의 임직원에게 전달했다. 과거 일부 직원 수 백 명이 강당에 모여 시무식을 하던 것을 과감히 탈피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시무식을 진행한 것이다.

사장단과 이야기하는 구광모 회장(오른쪽).
임원들과 이야기하는 구광모 회장(오른쪽).

◇젠틀맨=구 회장은 이른 나이에 큰 기업의 오너를 맡았는데도 누구보다 소탈하다는 평을 듣는다. 과거부터 재벌가 자제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도 모를 정도로 겸손한 성품을 지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LG 직원들에 따르면 구 회장은 과거 상무 시절 트윈타워 지하 직원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도 하고 야구장도 같이 가는 등 소탈한 모습을 줄곧 보였다. 젠틀한 성품으로 고객을 우선시하며 직원들에게 고객 만족을 강조한다.

4월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 LG유플러스 콜센터에 찾아갔던 구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고객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가장 먼저 전달되는 곳”이라면서 방문 취지를 말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당시 콜센터를 찾은 대기업 오너의 모습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객가치를 그만큼 중요시한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구 대표는 소통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후문이다. 임원에게 뿐만 아니라 부장급에게도 직접 연락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소탈한 소통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알려졌다. 기존의 관행을 깨는 실용적이고 소탈한 경영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구광모 회장이 현장경영을 하는 모습.
구광모 회장이 현장경영을 하는 모습.

◇4차산업=구 회장이 실용주의 경영방식을 보여주면서 4차산업 시대에 딱 맞는 경영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구 회장은 성장이 더딘 사업은 접고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등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2018년 6월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첫 번째로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4차산업 기술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회사 차원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과 인공지능(AI) 등 핵심 사업전략을 짚어봤다.

구 회장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면서 "사이언스파크만의 과감한 도전의 문화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LG사이언스파크는 총체적으로 회사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곳으로 개방형 연구공간도 있어 스타트업 사업도 지원한다.

LG전자는 앞서 연료전지 사업 청산 및 수처리 사업을 매각했다. LG화학은 LCD(액정표시장치) 편광판 사업을 정리했다. LG유플러스도 전자결제 사업을 스타트업에 매각했다. 전자결제 사업은 이익을 내던 분야였지만 비핵심 사업으로 판단된 것이다. 대신 5G, IoT, AI 등 미래 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취임 첫해인 2018년 7월 LG전자의 로보스타 경영권을 인수했다. 두달 뒤인 9월엔 LG화학이 미국 자동차 접착제 회사 유니실을 인수했다. 지난해 2월엔 LG유플러스가 CJ헬로비전을 인수했다. 이후 LG화학이 미국 듀폰 솔루블 OLED 기술을 인수했고 LG생활건강도 미국 화장품 회사 뉴에이본을 인수했다. 인수 목록을 살펴보면 미래 기술과 접목되는 분야다.

아울러 AI에 집중투자를 하고 인재 채용도 적극적이다. LG는 2018년 캐나다 토론토대학과 ‘AI 협력’을 맺고 ‘2020 CVPR’에서 아마존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64년만에 정기공채를 없애기도 했다. 대신 상시 선발체계로 미래 인재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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