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은 교과목과 창의적 체험활동의 종합점수 등을 더해서 만들어진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 협조, 협동하는 능력이다.

무안군은  ‘2019학년도 수능시험 대비 학습전략 및 입시설명회’를 개최했다.
무안군은 ‘2019학년도 수능시험 대비 학습전략 및 입시설명회’를 개최했다.

[홍후조 논설위원] 흔히 사람들은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역으로 자기의 능력과 성공을 과장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자기자녀의 일이라면 이런 과장은 더욱 심해진다. 학교의 종업식이나 졸업식 이후에 우수한 성적을 낸 부모들은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한다. 가령 선망하는 모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경우 다른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그 대학을 다닌다는 티를 꼭 내고 만다.

“우리 아이가 전교 1등을 해서 내가 한 턱 쏘는 거야!” 간혹 엄마들 모임에서 듣는 말이다. 동창들 동기들 모임에서도 이런 자랑은 계속된다. 심지어 수년간 다니면서 어느 한 학기에 가장 잘 한 것을 가지고 늘 1등을 한 것처럼 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꼴을 보기 싫어 TV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퍼진 적도 있었다. 급변하는 경쟁사회에서 다들 달리는데 걷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에 지친 어떤 이들은 아예 역으로 천천히 걷고 느리게 사는 법을 설파하기도 한다.

전교 1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학교에서 전교 1등은 모든 교과목과 창의적 체험활동의 종합점수 등을 더해서 만들어진다. 제 자랑으로 듣지 않길 바라지만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 음악, 체육을 그다지 잘하지 못했는데에도 선생님들은 내게 ‘수’를 주셨다.

지금으로 보면 1등에게 성적 몰아주기인 셈이다. 전교 1등을 만들어 내는 시험도 많은 경우 선다형, 선택형, 객관식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을 따졌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구나 시험시간이 정해져 있어 순발력speed을 고려한 것이다. 수능 수학의 경우 100분 안에 30문제를 누가 정확히 푸느냐의 경주인 것이다. 선별을 위해 수학적 사고능력과는 동떨어진 것을 측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른 후 혹은 졸업 시에 종종 듣는 말이 누가 전교 1등이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도 ‘전교 1등은 없다!’ 초등학교는 6개 학년이, 중·고교는 각각 3개 학년이 있고, 각각 그 배우는 바가 다르므로, 학년 1등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전교, 전체 학년을 통틀어 전교 1등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과장하여 전교 1등을 만들어낸다. 없는 1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이는 자신 혹은 자기 반 학생, 혹은 자기 자녀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일 뿐이고, 다른 많은 학생들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아무리 일상적 관용구지만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사실 1등과 2등, 2등과 3등 사이는 그렇게 현격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여 등수를 내는 것은 교육적으로 그렇게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다른 사람의 잘 못함, 실수가 있어야 나의 잘함이 드러나는 면이 많다. 얼마 전에 서울 모여고에서 시험지 유출 의혹과 전교 등수가 조작되었다는 민원도 이런 과열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전인적 능력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잘 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뒷전이고, 종합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잘 하는 총점을 따진다. 그러니까 좋은 등수를 위해 사교육에 기대기도 하고,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을 끝까지 해내는 인내심 기르기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를 두루 잘 하는 무한경쟁도 줄여야 한다.

모든 과목을 두루 다 잘하는 것은 초등 수준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고교 수준 이상에서는 그래서는 열정과 노력을 낭비가 초래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는 소질과 적성의 발견에서도 소용된다. 자신이 관심이 가는 분야에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쏟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이제 전교 1등을 학년 1등이라는 말로 겸손히 내릴 때가 되었다. 나아가 학년 1등이 있더라도, 각 분야에서 잘 하는 1등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각 분야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제일 잘 하도록 격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디서나 일정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그 경쟁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쟁이어야 할 것이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 협조, 협동하는 능력이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잘 해온 것은 간주관적인 상징체계(애국심, 평화 등)로써 사람들을 협조하게 하여서 갈등과 문제를 풀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로 종합점수로써 전교 1등, 학년 1등을 찾지 말고, 교육에서는 각자 잘 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도록 학생들을 격려해주자. 우리는 각자 다 다르니까!

필자 :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과정학회장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