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성교육이란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사진=Ⓒpixbay 이미지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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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후조 논설위원]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교육 대상으로서 인성(人性․personality)은 자신만의 생활스타일로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독특한 심리 및 행동 양식을 말한다. 인성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의 방법을 특색지우는 일련의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인성은 사람의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그 무엇이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의 독특한 행동을 결정한다. 일상용어로 보면 인성은 상대적으로 내적 특성이다. 교육에서 내적 특성을 바꿀 수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은 여러 겹이다. 가장 겉은 표정, 몸짓, 행동, 동작, 기능이고, 그 아래는 데이터, 정보, 지식이며, 그 안은 감정, 정서, 태도이고, 그 속은 신념, 가치관, 판단력, 창의력, 지혜 등이며, 맨 안쪽 깊은 곳은 기질, 특질, 본성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은 결국 가장 바깥쪽의 행동과 기능, 그 다음 겉인 지식을 갈고 닦아서 그 안에 있는 모난 감정이나 기질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변경가능한 겉을 다스려서 결국 안을 제어하려는 노력이고, 아주 깊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교사로부터 인격적 감화를 기대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사람에게 기술과 지식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더 안 쪽, 가장 안쪽을 건드리는 것을 인성교육이라고 할 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 자기가 믿는 종교의 지도자, 가장 친한 친구, 상담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전문상담사 정도일 뿐이다. 사람의 가장 깊은 인성을 건드려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된다.

교사들에게 인성교육을 하라고 하면 먼저 자신을 겸손히 들여다볼 때 불가능함을 여길 것이다. 나도 스스로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는데 누구를 감화한다는 말인가? 교사의 역할이 그랬다면 아마도 그들은 교·사대를 가지 않고, 신의 권위를 빌려서 사람을 감화시키는 신학교에 갔을 것이다.

모든 학생들을 위한 대중교육은 유효수단이 있어야 가능한데, 인성교육은 막연하다. 가령 어떤 학생이 학교폭력을 일으키거나 교권 침해 등으로 학부모가 학교에 불려왔을 때, 대뜸 댁의 아이가 인성이 고약해서 그러니 인성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해야 교육을 하는 셈이 된다.

훈육하는 교사들치고 인성을 직접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그렇게 했다간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왜 정책당국자들은 교사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하라고 강조․강요할까?

필자가 보기에 여론 등에 떠밀려 고상한 말로 정책을 만들고 법을 만든 것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법에도 전반부는 개인이고 후반부는 사회적 관계를 드러낸다. 흔히 인성이 발현되면 사회성이다.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모임에 따라 좋은 일도 일어나지만,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온갖 안전사고, 갈등과 싸움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 혼자 있거나 속으로 생각하면 인성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작용하는 것은 사실상 사회성이고, 대인관계이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교사는 학생의 사회성과 대인관계의 서투름을 당사자나 그 보호자들에게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즉 먼저 겉으로 드러난 사회성 교육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는 셈이다.

학교와 같은 사회적 공공기관에서는 여러 사람이 부딪히므로 그 규칙이나 상벌 혹은 이해득실이 분명해야 학생들은 상호규범을 지키게 된다. 그 이전에 학생들은 사회성을 길러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도록 수업에서도 협동학습 등을 통해 꾸준히 훈련될 필요가 있다. 과거 남녀노소가 어울렸던 대가족에서는 이것이 일상적으로 가능했었다.

그러나 현재 핵가족 아래에서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부도 시켜야 하지만 사회성과 대인관계를 훈련시키는 곳이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남에게 나를 투사시켜보는 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언어적 폭력의 경우에도 남의 아픔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역지감지易地感之다. TV프로그램에 가족간의 화해를 위해 여행을 권고하듯이, 산행이나 트래킹 등으로 어려움을 함께 겪어보게 하는 역지체지易地體之도 좋은 방법이다. 요컨대 직접적으로 하기 어려운 인성교육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회성교육을 먼저 함으로써 비로소 교사들은 학생을 교육할 수단을 갖고, 교육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영향력을 갖게 된다.

필자 :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과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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