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⑱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⑱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9.03.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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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의 K2(8,611m) 봉은 ‘산 중의 산’으로 위엄을 지녔다.
-그들은 두 번의 추락과 산소의 고갈로 위기를 맞지만 카라코람의 환상적인 산군이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로베르토 만토바니, 쿠르트 디엠베르거 공저ㅣ출판년도 1997년ㅣ쪽수 146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로베르토 만토바니, 쿠르트 디엠베르거 공저ㅣ출판년도 1997년ㅣ쪽수 146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카라코람의 K2(8,611m) 봉은 고도로 따지면 최고 높이가 아니지만, 등반루트의 난이도와 예측불가의 악천후로 아직까지 ‘산 중의 산’으로 위엄을 지키고 있다. 1953년 여름, 찰스 휴스턴이 이끄는 미국의 K2 등반대는 등반이 실패로 끝나자 무척 지친 상태로 파키스탄의 스카르두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 꿈과 희망을 가득 채운 이탈리아의 아르디토 데시오 교수와 리카르도 캐신이 나타났다.

이들은 다음해에 있을 K2 등반에 대비해서 빙하 정찰과 루트 정보 수집, 입산 허가서를 받기 위해 분주했다. 데시오는 카라코람 지역 산군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이곳의 계곡과 빙하들을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탐사했다. 데시오는 이런 경력으로 이탈리아의 원정등반에 10여 차례 참가하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기간을 빼고는 줄곧 카라코람에 몰두해 왔다.

데시오는 K2가 정면에 펼쳐지는 콩코르디아 빙하에서 마치 바람의 포효와 인간의 야망으로부터 도전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K2의 당당하고 우뚝 솟은 자태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데시오와 캐신은 고드윈 오스틴 빙하와 아브루찌 리지를 정찰하고 돌아왔지만 정보 부족과 불확실성으로 불안했다.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입산허가서가 발급되자 데시오는 올림픽위원회와 이탈리아산악회의 재정 협찬을 섭외하고 대원 구성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1953년 11월, 이탈리아산악회 중앙위원회에서는 K2 등반 추진위원장에 데시오를, 등반대장으로 캐신을 지명했다. 그러나 캐신은 ‘등반대에는 한 사람의 대장만이 필요하다’며 대원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후 많은 논란과 토의를 거치며 등반 준비가 속도를 냈다. 대원 구성이 끝나자 데시오는 대원들과 “원정대의 등반이 끝나면 3년간 대장의 지시에 따라 등반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침묵을 지켜야하고 등반 중에는 명령과 규율, 행동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고 나서 신체검사와 체력 검증이 있었는데, 의외로 캐신이 기준에 미달하고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클라이머로 명성이 자자했던 캐신이었지만 논란의 여지없이 바로 대원선발에서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데시오 대장의 계략으로 밝혀졌다. 캐신의 명성에 눌려 자신의 명성이 흐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원정 준비를 하는 내내 저널리스트나 기자, 산악인들은 지질학자인 자신보다는 알피니스트인 캐신과의 인터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1954년 3월 30일, 데시오 대장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등반 재정을 확보했고 400개의 박스에 포장된 장비와 식량이 선적되면서 K2 초등정의 대장정을 열게 되었다. 라왈핀디에서 스카르두로 향하면서 데시오는 DC3 경비행기를 전세 내서 K2 정찰에 이용했다. 당시 이 항공정찰 아이디어는 획기적이고 소중한 경험으로 데시오의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5월 13일, 700명까지 늘어났던 포터들과 강행군을 하면서 콩코르디아에 도착했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우호적인 조건이 전혀 없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척박한 지역에서 어렵게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아브루찌 리지로 향한 루트 개척에 집중했고 6,308m 지점에 캠프3 설치에 성공했다. 캠프2와 베이스캠프 사이에는 윈치(권양기)가 설치되어서 많은 짐을 이동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휴식 없이 루트 작업을 강행하면서 6월 14일, 6,500m 지점에 있는 하우스 침니 출발점에 도달했다. 이틀 후, 캠프4가 건설되었고 고정 로프가 설치되었다.

이 고정 로프는 대원들이 캠프 사이를 이동할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있고, 강풍으로 인한 시계 제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등반이 마리오 푸조가 목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어수선해졌다. 독감에 걸린 것이다. 워낙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의 산악 가이드 출신 이였기에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캠프2에 있던 그는 결국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기관지폐렴으로 사망한다. 당시에는 고소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종종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 루트 개척 작업을 재개했고 두 번째 윈치가 록밴드에 설치되어 캠프5로 짐을 수송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도를 높일수록 고소가 행동에 제동을 걸지만 7월 18일, 미국 팀이 캠프8을 설치했던 지점에 캠프7을 구축했다. 정상 등정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고소 포터와 대원들은 각 캠프마다 장비와 식량 등을 저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이후 등반 루트의 난이도 때문에 등반 속도가 주춤해졌다.

7월 28일 7,700m 지점에 있는 거대한 빙벽 아래에 캠프8을 설치하고, 아칠레 콤파뇨니와 리노 라체델리가 8,150m 지점에 캠프9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산소통 정비를 위해 아래 캠프로 내려갔던 보내티 일행은, 중간에 지쳐서 캠프 8에 남아있고 보내티와 마디 셀파만 캠프9를 향해 계속 전진했다. 그러나 위에 있던 콤파뇨니와 라체델리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보내티와 마디가 얼음 구덩이를 파고 비박을 감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콤파뇨니는 이들이 텐트나 비박 장비가 없어 바로 하산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보내티는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 <My Mountains>에서 당시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7월 29일 저녁, 캠프8에서는 정교한 등정 계획이 세워졌는데 캠프9을 원래의 위치보다 100m 아래에 만들기로 했다. 산소통이 19㎏이나 되는 등 장비 수송이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콤파뇨니와 라체델리는 더 높은 곳에 캠프를 건설했고 루트도 왼쪽으로 한참 벗어난 곳으로 진행시켰다. 그래서 우리와 그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앞선 대원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으며, 마디가 심각한 공포 증세로 인해 심리적으로 자제를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의 하산은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우리는 얼음 사면을 파서 임시 피난처를 만들었고 절대 침묵의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래 캠프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를 모르는 콤파뇨니와 라체델리는, 다음날 첫 새벽에 눈이 살짝 덮인 왼쪽 사면으로 정상을 향한 선을 긋는다. 오후 4시가 되자 호흡이 불규칙해졌고 고열이 그들의 머리와 발을 조여 왔고, 다리의 힘을 무력화시켜 서 있기조차 곤란한 지경으로 만들었다. 산소가 떨어진 것이다.

그들은 두 번의 추락과 산소의 고갈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고도를 높이는 단순 작업만 반복할 뿐이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걷혔고 카라코람의 환상적인 산군이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지평선 끝까지 만년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고 오후 6시, 그들의 고통스런 몸짓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었다.

■ 글 | 호경필(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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