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비즈온 박홍준 기자] 재벌 기업들은 우리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위기 의식 아래 올해는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최순실게이트’를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촛불시위에서도 경제민주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데 따라 재벌 기업들도 이제부터는 고질적인 적폐인 정경유착을 철폐하고 경제민주화에 부응한 대변화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재벌 그룹들의 신년사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경쟁', '고객', '노력'은 후순위 추진과제로 밀렸다.

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올해 국내 10대 그룹 신년사에 노출된 키워드 빈도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변화와 성장이 핵심 키워드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키워드는 ▲ 변화(41회) ▲ 성장(39회)이었으며, ▲ 경쟁(27회) ▲ 세계·글로벌(22회) ▲ 사회(20회)가 뒤를 이었다. 이들 5대 키워드에 다음으로는 ▲ 환경(20회) ▲ 혁신(19회) ▲ 고객(18회) ▲ 기반(17회) ▲ 미래(17회)등이 언급돼  '톱10' 키워드에 올랐다.

올해 키워드에서는 예년과 달리 지난 2015년 1등 키워드였던 '경쟁'은 지난해 2위, 올해는 3위로 떨어졌다. '고객'과 '노력'도 키워드 순위가 하락했다. '고객'은 2015년 2위였던 것이 지난해 7위, 올해는 8위로, 같은 기간 '노력'은 7위, 5위, 14위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현대차가 '강화, SK는 '변화', LG는 '사업', 롯데는 '성장'을 각각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으나, 삼성합병문제로 특검의 강력한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은 올해도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난 2015년에도 삼성은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일 현재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GS와 한진은 신년사 전문 대신 보도자료를 인용했다.

주요 재벌 그룹들은 트럼프 당선에 따른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 사드 후폭풍에 따른 중국의 규제 강화와 중국경제 침체, 세계 경제의 장기부진과 국내적으로 취약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부담, 높은 실업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성장 엔진이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해 가치지향적 경영목표보다는 변화와 성장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EO스코어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더해 국내외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데 따른 기업들의 '중심 잡기'로 해석했다. 또 '세계(글로벌)'와 '환경'도 2015~2016년에 비해 많이 언급돼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경영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룹별 키워드를 보면 현대차그룹의 경우  '강화', '경쟁', '세계'가 키워드 상위 1~3위를 차지했는 이들 키워드는 작년과 같으나 ‘세계’가 최근 2년 연속 1등에서 올해는 3등으로 쳐졌다. 그동안 글로벌화로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부상한 현대차는 이제는 경쟁력을 갖춘만큼 보다 시장을 넓혀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변화'를 가장 강조했다. 최근 2년 간 3~4위를 차지했던 '위기'란 용어가 사리진 반면 '혁신', '경영'이 3~5위의 키워드에 올랐다.

LG그룹은 '사업(사업구조)'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5위에 처음 등장한 '변화'가 올해는 3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검찰 수사에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은 가운데 ‘형제의 난’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롯데그룹은 2년 연속 '성장', '변화', '경영'이 1~3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5년 핵심 키워드였던 '고객'은 지난해 7위로 내려간데 이어 올해는 순위에서 아예 빠진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고강도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인 포스코는 '기반', '경쟁'이 핵심 키워드였다. 2015년에는 '경영', '성과', 지난해에는 '구조', '수익'이 가장 많이 언급됐지만, 올해는 구조조정 이후의 실제적 행동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GS그룹의 핵심 키워드는 '실행'과 '변화'였다. 또한,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DNA가 올해는 8위로 처음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3번밖에 언급되지 않았던 '성장'이 올해는 무려 11번이나 언급되며, 1등 키워드로 올라섰다. 반면 지난해 11번 언급됐던 '경쟁'은 올해에는 5번에 그치며 9위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