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영업익에도 출연 약속 기금 1000만원 ‘인색’
-건설사 선정·분담액 기준…대한건설협회 “잘 모른다”
-건설협회 원동력 상실?…대형사 뒤에 숨어 차일피일

지난 2015년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동부건설 이순병 대표이사(사진 우측)가 최삼규 대한건설협회장(사진 좌측)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지난 2015년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동부건설 이순병 대표이사(사진 우측)가 최삼규 대한건설협회장(사진 좌측)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지난 2015년 입찰담합 행위로 관급 공사 입찰제한 제재를 받은 건설업계가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여론은 좋지 않았다. 4대강 사업과 호남고속철 사업 등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대규모 사업에서 담합이 적발돼 제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악화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건설업계는 국민에게 약속했다. 사죄의 의미로 74개 건설사가 기금을 출연해 사회에 공헌하기로 한 것. 약속된 금액은 2000억원을 웃도는 수준.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약속된 사회공헌기금의 극히 일부분만 출연됐으며 그마저도 극소수의 건설사만 납부했다. 무관심과 책임 회피 속에서 잊히고 있는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의 실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출연 약속 미이행에도 ‘당당’

[데일리비즈온 손성은 기자] 지난 5년간 건설업계의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 출연이 신통치 않다.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은 건설업계가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 과정에서 일부 건설사는 당당하게 미출연 태도를 보였다. 이들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일리비즈온>이 추적해 봤다. 

굴지의 대형 선박업체인 H사는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 25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이 회사는 기금 출연을 묻는 질문에 “저희는 4대강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이 통상적으로 4대강 입찰담합 건설사 사회공헌기금이라고 불리는 데 따른 면피성 답변이었다. 기금 출연 약속은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관급공사 입찰담합 행위에 따른 것으로 4대강 사업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공능력평가 20위권에 24억원의 기금을 출연키로 한 S건설사는 기금 출연 여부에 대한 질문에 “저희는 기금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회신했다. 약 5년간 기금을 출연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또 다른 건설사도 마친가지다. 시공능력평가 30위권의 D건설사는 분담하기로 한 출연금 10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서민 입장에선 큰돈이지만 매년 수백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건설사 입장에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다. 매년 200만원씩 납부했으면 진작 마무리됐을 액수다. 이 건설사는 미출연 이유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이 밖에도 2015년 당시 건설업계 자정 결의의 중량감을 고려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일부 건설사의 경우 자신들이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 출연 대상인지, 얼마를 출연키로 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유관단체 임직원들이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 앞에서 대한건설협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건설유관단체 임직원들이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 앞에서 대한건설협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 건설협회, 선정 기준 모르쇠

이들의 약속을 관리, 감독할 협회도 전혀 대책 방안이 전무하다. 현재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은 전적으로 건설사의 자의에 따라 출연되고 있다. 즉, 건설사가 기금을 출연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하거나 출연 현황을 관리, 감독할 방법이 없다는 것. 매년 해당 이슈가 국정감사에서 다뤄져도 변화가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을 출연키로 한 건설사와 출연금 분담이 어떠한 기준으로 설정됐는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 기금 출연 약속의 배경과 시공능력평가 순위를 고려하면 일정 부분 유추가 가능하지만 이를 명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기관은 없다.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은 문제의 출연금을 납부 받아 운영한다. 재단은 지난 2015년 당시 건설업계의 2000억원의 출연금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됐다. 실제 기금을 받아 운용하는 재단은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을 내기로 한 건설사와 분담금 설정이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설정됐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은 납부된 기금을 실제로 운용할 뿐으로 어떤 기준으로 건설사와 분담금이 선정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 “재단 설립 당시 대한건설협회 직원들이 파견돼 1~2년간 설립과 업무에 참여한 뒤 다시 복귀해 대한건설협회가 자세한 내용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건설협회 입장은 재단과 엇갈렸다. 현재 재단 설립 당시 파견됐다 복귀한 직원들은 모두 퇴사한 상태라 당시 어떠한 기준으로 출연 건설사와 분담액을 설정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현재 출연 건설사 명단과 과거의 명단은 달라진 상황”이라며 “과거 건설사 선정 등에 참여했던 임직원이 모두 퇴사해 당시 어떤 기준으로 건설사를 선정하고 분담액을 설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5년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며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등 대형건설사 대표들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2015년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며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등 대형건설사 대표들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 2000억원 ‘먹튀’ 가능성 농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건설사의 경우 고의적으로 출연금을 납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단순 추론에 불과할 수 있지만, 출연금 약속 이행을 강제할 방안이 없고 당시 구심점 역할을 했던 대한건설협회는 건설사 선정과 분담액 설정이 어떠한 기준으로 이뤄졌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약속 이행 촉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건설사의 출연 약속 미이행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한건설협회를 지목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당시 특별사면 당시 기금 출연 약속은 대한건설협회 주도로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이를 주장한 대한건설협회 임원이 박근혜 정부 사람인데 탄핵 정국 등의 여파로 제대로 활동을 못 하면서 원동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건설사 입장에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기금을 납부한 건설사의 절대다수는 건설업계 상위 대형 건설사다. 이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건설사는 타 건설사들이 기금을 출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을 출연하면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산업사회공헌기금 자체가 업계에서 쉬쉬하며 그냥 잊히길 바라는 사안으로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서 “2015년 당시 일부 건설사의 경우에는 왜 우리가 출연금을 내야 하느냐는 목소리를 내는 등 갈등 상황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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