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기록적인 폭염 지속
- 낮은 에어컨 보급률에 시민들 고스란히 폭염 노출
- 폭염 인한 소비 전력량 증가, 탄소배출권 가격 폭등에도 영향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올해 여름 유럽의 폭염이 심상치 않다. 유럽 상당수 지역에서는 기존의 최고기온 기록이 잇따라 경신되며 그야말로 ‘찜통’ 더위가 지속됐다. 

◆ 기록적인 폭염, 유럽 전역에서 문제 발생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은 7월 25일 섭씨 38.5도를 기록하며 2003년 이후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 벨기에도 지난 200년 이래로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유로스타 열차는 폭염으로 인해 멈춰서 600여명의 승객이 폭염 속에 대기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39.2도의 기록적인 온도가 측정됐고, 프랑스 일부 지역은 지난 6월 28일 무려 45.9도를 기록해 프랑스 기상 당국이 적색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등 국가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발생하며 폭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러한 폭염이 앞으로도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현실이다.

7월 25일 유럽 최고 기온 지도(사진=BBC 뉴스 캡쳐)
7월 25일 유럽 최고 기온 지도(사진=BBC 뉴스 캡쳐)

유럽의 이러한 폭염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확인된 사망자만 3만5000여 명에 이른 최악의 폭염 이래로 유럽은 지속해서 심각한 폭염에 시달려왔다. 이에 유럽인들의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 올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생태계 복원을 주창하는 정당이 선전했다. 폭염이 직접적인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유럽인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응을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자 영국 보건당국 NHS를 포함해 각국 관계처는 폭염 예방 요령 등을 담은 영상이나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존의 예방 대책만으로는 폭염 예방이 어렵다며 폭염 예방 차원으로서 에어컨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 낮은 에어컨 보급률, 폭염으로 수요 증가

실제로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미국이나 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낮다. 블룸버그(bloomberg)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가정 에어컨 보급률은 90%를 상회하지만 영국은 3%에 불과하다. 세계에너지기구(IEA)의 통계에 따르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인구가 5억 명을 넘고 미국에 맞먹는 경제 규모를 가진 EU이지만, EU에 설치된 에어컨의 비중은 전 세계 기준으로 단 6%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가 10분의 1 규모인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4%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낮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전세계 지역별 에어컨 설치 비중 (사진=세계에너지기구(IEA))
전세계 지역별 에어컨 설치 비중 (사진=세계에너지기구(IEA))

가정 내 에어컨 보급률 이외에 다른 지표에서도 유럽의 에어컨 보급이 굉장히 미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U는 빌딩의 에너지 소비 중 냉방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8.5%, 일본은 9.5% 정도다. 에어컨의 보급과 사용에 있어 지리적, 문화적 요소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폭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유럽에서 더 이상 에어컨 보급의 미비가 문화차이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 지하철 및 공공시설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시민들이 폭염 피해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된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내에서도 이미 움직임이 시작됐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에어컨 판매가 증가했다. 독일에서는 주민들끼리 냉방시설이 설치된 건물 지도를 공유하는 일도 발생했다. 베를린의 한 에어컨 설치 업자는 몰려드는 주문을 견디다 못해 전화서비스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냉방기구 설치 비중이 낮은 유럽 내에서의 이런 동향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여겨진다. 기후변화로 향후 기록적 열기가 더 잦아지고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의 에어컨 수요가 20년 내에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다만 에어컨의 설치가 유럽인들이 중시하고 있는 환경 문제와 모순되는 점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폭염기간만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여름 기온이 낮고, 에너지 소비 증가에 따른 배출가스 증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유럽인들도 많다는 설명이다.

◆ 폭염으로 소비 전력, 탄소배출량도 크게 늘어

프랑스 파리 외부 온도계가 42.5도를 기록한 모습(사진=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시내 외부 온도계가 42.5도를 기록했다.

전력 사용도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여름철 냉방으로 인한 전력 사용이 문제가 되듯, 유럽 내에서도 같은 이슈가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재생 에너지 설비에 각국이 힘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한여름의 냉방으로 인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당장 올해 폭염이 지속돼 전력 소비량이 늘면서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시행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시작되었다. 매년 각국 정부와 개별 기업에 탄소 배출량을 할당하고, 만약 할당량보다 많은 탄소 배출이 발생하면, 거래시장에서 그만큼의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폭염이 심각해지자 에너지 사용이 자연스럽게 증가했고, 이에 따라 거래량이 늘어 가격도 치솟았다는 설명이다.

지난 11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9월물 탄소 배출권 가격은 t당 28.51유로(약 3만 8700원)로, 올해 초(7.78유로)에 비해 세 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2006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30유로)에 근접한 수준이다. 2012년 이후 배출권 가격은 7년 동안 t당 10유로를 밑돌았던 만큼, 올해 폭염의 심각성이 가시화되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관해서 제프 버먼 S&P 글로벌에너지부문 이사는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가정용·산업용 전력 수요가 모두 증가했다”며 “전력 사용량이 늘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져 에너지 업체의 배출권 수요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폭염이 심각해지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유럽 내 냉방기구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냉방기구의 사용이 환경 문제 극복이라는 폭염의 근본적 대책에 모순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폭염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와, 냉방기구 사용으로 인한 전력량 및 탄소 배출량 증가 문제를 균형 있게 풀어나가야 한다는데 관계자들의 입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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