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난사의 시발점된 필리핀 다크웹
-다크웹으로 테러리스트 간 연결성 강화
-혐오범죄 조장하는 통로로 입지 다져

다크웹. (사진=Hacker Noon)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인터넷에는 우리가 검색엔진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공개된 콘텐츠와 정보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이 존재한다. 웹메일에서부터 결제나 인증을 거쳐야 볼 수 있는 웹페이지, 그리고 기관의 서버에 있는 정보들과 P2P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보통은 일상적인 용도를 목적으로 존재한다.

반면 다크웹은 일반적인 검색엔진을 통해 찾거나 접근할 수 없는 특정 웹사이트들을 지칭한다. VPN(가상사설망)처럼 콘텐츠와 정보 제공자, 이용자 사이 통신내용을 감청할 수 없다. 다중 프록시(기술적으로는 'P2P 인터넷 릴레이 채널'이라 한다)를 통하여 서로의 IP주소가 은닉되어 있다. 특정 암호화 툴을 사용해 사이트 전체가 암호화 되어있다고 보아도 좋다. 이를 보려면 해당 암호화툴을 복호화 할 수 있는 커스텀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한다. 

다크웹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기혼남녀들이 바람 피울 상대를 찾는 서비스였던 애슐리 매디슨(Ashely Madison) 때문이다. 2015년 8월 이 사이트가 해킹을 당한 후 약 10기가의 개인정보가 다크웹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최근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발생한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단주의자의 총기 난사 사건 역시 미국인이 필리핀에서 운영하는 다크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알려진 백인 우월주의자 패트릭 크루시어스는 극우 웹사이트로 유명한 ‘에잇챈(8 Chan)’에 특정인종 혐오가 담긴 선언문을 게시했다. 그는 “히스패닉의 침략”에 대해 경고하는 한편, 같은 생각을 하는 형제들에게 이 게시물을 널리 퍼뜨리라고 독려했다. 이 사이트에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이슬람 사원 총격 사건과 관련된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총격 사건으로 이슬람교도 51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다친 바 있다.

이에 따라 ‘에잇챈’ 등 필리핀에 기반을 둔 다크웹에 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마약과 불법 동영상, 개인정보 등이 거래되는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뉴욕타임즈 역시 “에잇챈이 최근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극우 테러리즘의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다크웹을 사실상 방치하는 필리핀 정부

필리핀 사법당국은 엘파소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극우성향의 웹사이트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 거래뿐 아니라 증오 발언을 온라인에 퍼뜨리는 다크웹의 허브로 부상한 필리핀에서 사법당국의 조사가 과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필리핀 당국에 따르면 마약 거래와 성매매, 가짜 신분증, 심지어 폭발물 판매에 연루된 범죄조직들이 모두 필리핀에 기반을 둔 다크웹에서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 요원들은 다크웹 상의 마약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 당국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다크웹에서의 불법 행위 근절이나 증오 발언과 거짓 정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됐는지 분명치 않다.

엘파소 총기난사 당시의 모습. (사진=BBC)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통치하에서 온라인 증오 발언은 필리핀에서 일상이 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반대 진영에 대해 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종종 죽음이나 성폭력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필리핀의 현실은 ‘에잇챈’의 성격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악명 높은 이 웹사이트는 신나치주의자들과 전 세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으로, 뉴욕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프레드릭 브레넌이 2013년에 설립됐다.

그는 당시 극우파들이 애용하던 웹사이트 ‘포챈(4chan)의 대안으로 이 플랫폼을 구축했다, 포챈은 2014년 운영자인 크리스토퍼 폴이 선동적이고 극단주의적인 발언에 엄격한 제재를 가하자 많은 가입자를 잃은 바 있다. 이에 브레넌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포챈의 대안”이라고 홍보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하지만 그는 자금난을 겪으면서 투자자를 찾아야 했고 2018년 말 짐 왓킨스와 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필리핀에 기반을 둔 퇴역군인이자 필리핀에서 테크분야에 종사하는 스타트업 사업가였다. 두 사람은 마닐라에서 동업을 시작했고 이 웹사이트는 곧 극우 플랫폼의 대표 격으로 급부상했다.

현재 브레넌과 왓킨스는 결국 웹사이트 운영에 대한 의견차로 결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엘파소 총기 난사 사건 발생 후 브레넌은 ’에잇챈‘의 폐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넌은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엘파소 총격범의 선언문은 의심의 여지없이 용의자가 게시한 글”이라고 주장했다. 에잇챈이 혐오범죄를 조장하는 사이트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에이챈과 같은 수단을 통해 모방 테러가 증가하고, 극우 백인우월주의 테러범 간의 연결성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북미, 호주 등에서 발생한 약 350건의 백인우월주의 테러 공격과 2018년 미국 내 사건에 대한 예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극우 백인우월주의 테러의 범인 3분의 1이 다른 테러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저서 ‘극단주의’의 저자인 J.M 버거는 “백인 우월주의 테러는 기존에 조직적 연결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테러범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혹은 지리적 한계와 상관없이 동시다발적인 테러 공격이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에잇챈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왓킨스는 에잇챈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간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장문의 성명을 통해 “우리는 혐오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현재 FBI 요원의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장문의 성명을 통해 해명했다. 그는 “일부 언론인들의 비난과 달리 우리는 불법적인 발언을 보호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당국은 현재 해당 웹사이트와 관리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메나르도 구에바라 필리핀 법무장관은 7일 ’에잇챈‘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이민당국에 따르면, 2017년 7월 1일에 입국한 브레넌은 비자를 발급받아 현재까지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왓킨스 역시 현재 필리핀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 그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도 현지 언론은 필리핀 당국이 사건 조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에잇챈의 설립자 왓킨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도, 이들 외에 논란이 될만한 극우 인사들이 최근 부쩍 필리핀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일부는 심지어 환대를 받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최대 신나치주의 웹사이트 더 데일리 스토머의 발행인 앤드류 앙린도 일정 기간 필리핀 다바오 시에 본사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바오 시는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의 차녀가 시장을 맡고 있는 지역이며,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과도 같은 지역이다. 그는 과거 두테르테 대통령을 만나 논란이 된 두테르테의 마약 전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왜 필리핀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극우 인사들이 필리핀에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전 세계 다크웹의 허브로 부상하는 흐름에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케이티 하바스 공공정책 담당 이사는 지난해 “필리핀은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기화된 ‘최초의 지역(patient zero’’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하바스 이사는 “(두테르테의 대선 승리) 한 달 뒤 브렉시트(Brexit) 소식이 전해졌고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도 두테르테 당선이 시작이었다”고 주장했다.

나다니엘 글리셔 페이스북 사이버보안정책실장은 페이스북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리셔 실장은 버즈피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짜 계정, 스팸, 다른 형태의 어뷰징을 잡아내기 위한 인력과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며 페이스북이 “올해 필리핀에서 두 건의 테러작전을 미리 포착하고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필리핀의 댓글부대가 전 세계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조짐도 드러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러시아의 선거개입 스캔들을 조사했던 기술전문가 카밀 프랑수아 역시 “필리핀 역시 (정치적우경화와 혐오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필리핀에 기반을 둔 댓글부대와 역정보 전술이 곧 전 세계적으로 복제될 수 있다”며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다크웹을 통한 정보확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필리핀에서 익명의 접속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개발되고 최근 비밀 검색 엔진까지 급속히 보급되고 있어 유사 업체들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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