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아시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에어아시아)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말레이시아에는 국내외로 두 개의 항공사가 유명하다. 하나는 국영항공사인 ‘말레이시아 항공’이며, 다른 하나는 국내 여행객에게도 친숙한 ‘에어아시아’다.

에어아시아의 경우 국내 여행객들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 편이다. 과거 국민 축구선수였던 박지성이 에어아시아의 광고모델로 나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에어아시아의 회장 토니 페르난데스의 부인 역시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계의 해외여행객들에게 더욱 익숙한 이유는, 세계 각국을 닿는 접근성과 저렴한 가격을 꼽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세계 저비용항공사(LCC)의 롤모델로 불리기도 한다. 어느덧 그 위상과 인지도는 국적기 말레이시아 항공을 추월한 지 오래다. 

◆ 국영 항공사의 위기…매각 가능성 높아 

반면 말레이시아 항공의 평판은 그리 좋지 못하다. 세계적인 항공사에 속하는 싱가포르 항공은 물론, 케세이 퍼시픽이나 타이 항공에 비해서 가격 및 서비스 모두에서 평가가 좋지 못하다.

2014년 3월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항공기 한 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고가 결정적이었다. 해당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같은 해 7월에는 MH17편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되는 등 연달아 참사를 겪었다.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은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아울러 최근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가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상승한 연료비도 경영난을 부채질했다. 

2017년 국부펀드 카자나 나시오날 버하드가 손실을 본 17억8000만 달러(약 2조원) 가운데 절반이 말레이시아항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카자나 펀드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말레이시아항공의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등장한 경영 개선책의 핵심은 ‘중단거리 노선에 초점을 맞춰 미국·남미·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폐쇄, 효율화를 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중단거리 노선을 점유하고 있는 에어아시아와의 경쟁이 격화되는 결과만 낳았다. 오히려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던 에어아시아에 족족 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위기 요인은 외국인 경영자 리스크로 꼽히고 있다. 1년 만에 말레이시아항공을 떠난 피터 벨루와 라이언에어 CEO, 그리고 3년 계약 후 2년도 못 채우고 나간 크리스토프 뮬러 에미레이트그룹 CEO의 패착이 경영 악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결국 경영진이 장거리 노선을 폐쇄해 저가항공사와의 경쟁이 과열, 풀 서비스를 제공하던 말레이시아항공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한 100여 항공사로부터 수익을 창출했던 항공정비(MRO) 사업 축소도 경영난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국가의 무분별한 지원이 말레이시아항공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구조적 요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항공이 이제껏 받아온 수차례의 구제금융을 감안하면 존폐에 대한 명확한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말레이시아 선웨이대학 경제학과의 예킴랭 교수는 “과거 여러 차례의 회생 시도가 실패한 것을 고려하면 정부는 폐업을 포함한 과감한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며, “같은 국영 항공사인 에어아시아와의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들고 나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7일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오랜 경영난으로 말레이시아항공의 폐업·매각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마하티르 총리는 지난 1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영 항공사가 문을 닫는 것은 매우 신중한 사안인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사진=연합뉴스)

◆ LCC가 FSC를 잡아먹는다? 

에어아시아의 말레이시아 항공의 합병 여부는 아시아 각국에서도 커다란 화제였다. 이에 최근 에어아시아의 회장 토니 페르난데스는 니케이아시아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 항공을 포함해, 에어아시아의 전통적인 경쟁자들은 한물 간 지 오래다. 그렇기에 우리는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이어, “말레이시아 항공의 구조개혁을 위한 투자에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 잘 나가는 LCC라면 말레이시아를 인수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아무리 잘 나가는 LCC라도 FSC(대형 항공사)를 인수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이다. 이미 FSC는 LCC와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오히려 운항노선이 겹치는 구간에서는 경쟁 우위를 잃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 역시 지난주 “국내 및 해외의 몇몇 기업이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으나, 수익성 우려에 선뜻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예비 후보자들이 저가항공사와의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르난데스 역시 “마하티르 총리는 항공사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점을 우리도 인식하고 있다. 에어아시아를 항공사 그 이상의 테크 기업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국영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에어아시아는 아세안 지역의 투어리즘 테크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다”라며, “그 일환으로 우리는 전통적인 항공사업에 IT기술을 접목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에어아시아는 실제로 매년 100만 말레이시아 링깃(약 2800억 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오히려 FSC와의 경쟁에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몸집 줄이기라지만, 페르난데스는 오히려 LCC에게는 지금이 ‘시련의 계절’이라는 생각이다.

◆ 해답은 IT 신사업에

“우리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경쟁자는 기껏 해봐야 싱가포르 항공이나 말레이시아 항공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그들은 낡았어요. 우리는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합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니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지만, 사실 테크 기업들의 부상이 맘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페르난데스 회장은 ‘게임의 룰’을 바꾸고자 한다.

이에 27일 에어아시아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클라우드를 이용해 항공사의 재무와 회계를 집중화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수개월 내에 싱가포르에 온라인 결제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계획도 세워 놨다. 연내에 해당 서비스를 태국, 인도네시아, 그리고 필리핀에 확장한다는 목표다.

이 서비스는 지난해 초 말레이시아에 먼저 도입됐다. 지금은 약 5만 명의 이용자를 거느리고 있다. 말하자면 ‘모바일 지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정보를 온라인에 저장해 두는 시스템이다. 이용자들로 하여금 애플리케이션에서 실시간으로 모든 금융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5일 레드빗 벤처 행사장에서 스타트업 운영자들을 만나는 모습. (사진=에어아시아)

에어아시아가 작년 해당 서비스를 출시할 즈음, 자회사인 레드빗(RedBeat) 벤처는 “2019년 3월 스타트업을 위한 금융 펀드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펀드의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500개의 스타트업을 든든히 지원할 수 있는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이 기금은 흔히 레드벳 캐피탈로 알려져 있다. 물류, 핀테크, 투어리즘 등 동남아 전역을 대상으로 활약할 스타트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항공업의 규모를 확대하는 대신 신사업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에어아시아. LCC의 모범을 보여준 그들의 향후 목표는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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