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등장하는 좀비들. 지금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이 시기의 좀비 분장은 조잡한 수준이지만 영화가 가져다주는 긴장감과 서스펜서는 오늘날의 어느 호러영화 못지 않다는 평이다. (사진=IMDB)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할리우드에서 좀비는 일찍부터 그 상업성을 인정받은 소재다. 현대 좀비물의 고전인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시작으로 지능이 낮고, 인육을 탐하며, 자유의지를 상실한 좀비는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이래 비평계에서 현대인의 모습 자체와 비교되기도 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경우, 같은 (영문)이름으로 <시체들의 새벽>(1978), <새벽의 저주>(2004)로 잇따라 리메이크되며 만들어질 때마다 엄청난 상업적·비평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좀비 콘텐츠의 핵심은 좀비를 막으려 벽을 세우고 고립을 자처한 사람들이 스스로 붕괴를 맞는 것이다.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AMC의 히트작 <워킹데드>가 이러한 요소를 기가 막히게 살렸다는 평이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연일 갈아치우며 메이저라고 불리기에는 살짝 아쉬웠던 방송사 AMC의 평판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현재 시즌9가 방영 중인데, 그 대단하다던 HBO의 <왕좌의 게임>마저 <워킹데드>에 비교하자면 시청자 수가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이후, 좀비는 좀비처럼 죽지 않고 변형을 거듭하며 영화 안에서 지분을 늘려왔다. 비실거리며 걷는 좀비의 특성은 대니 보일의 <28일후…>(2002)에서부터 빠르게 달리는 좀비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했고, 급기야 인간 감정이 남아 있는 좀비(<나는 전설이다, 2007)>), 웃기는 좀비(<좀비랜드, 2009>), 사랑에 빠진 좀비(<웜 바디스, 2013>)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2013) 역시 빠르고 다이나믹한 액션을 갈구하던 좀비 마니아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평이다. 

한 전문가의 경우,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거나, 웃음을 가져다 주거나, 사랑에 빠지는 좀비역시 인간의 심리적 욕구에 의한 것이라 설명한다. 좀비와 싸우던 인간이 좀비와 공존으로 위협과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은 ‘대립’이 아닌 ‘화해’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류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좀비 콘텐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 그 자체를 은유할 뿐더러, 인간과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과거 국내에서 좀비물은 마이나틱한 소재로 일부에서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6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한국형 좀비'의 가능성을 확보한 덕에, 국내에서도 비로소 좀비 붐이 불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뒤이어 개봉한 <서울역>(2016) 역시 성적은 아쉬웠지만, 좀비물이 가져다주는 서사와 분위기를 애니메이션 영상에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장르적 의미가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창궐>의 경우에도 작품성은 아쉬웠지만, 한국판 좀비물의 지평과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서양에서 온 좀비가 이제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없어서 안 될 킬러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우면서도 더욱 극적인 이야기를 창조하려는 기획자들의 시선이 ‘살아 있는 시체’ 좀비로 향하면서 관련 콘텐츠 제작 역시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극장에서 440만 흥행 성과를 낸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은 일찌감치 다음 연출작으로 좀비물을 택했다. 고등학교 배경의 좀비 드라마 구상을 마친 감독은 이르면 내년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의 새 영화 <반도> 역시 좀비물이다. 강동원이 일찌감치 주연 물망에 올랐다.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가 부산에 모이는 것으로 막을 내린 ‘부산행’ 그 후의 이야기다.
 

넷플릭스에서 1월 공개하는 기대작 '킹덤'.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1월 공개하는 기대작 '킹덤'.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처음 제작한 한국드라마 역시 좀비물이다. 주지훈 주연의 <킹덤>이 내년 1월 25일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190여 국에 동시 공개된다. 6부작으로 완성된 시즌1가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지만 넷플릭스는 일찌감치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그만큼 내부의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가 높다는 의미다. 넷플릭스 역시 <킹덤>을 통해 그간 신통지 않았던 아시아, 특히 한국시장에서의 성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얼마전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지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연 미디어데이에서도 <킹덤>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했다는 반응.

콘텐츠 기획자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가 갖는 특수성, 이들에 맞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간의 사투에 주목하고 있다. 좀비드라마를 기획한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에서 법정물, 수사물, 병원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라며 “좀비물은 이런 세 가지를 합한 것보다 더욱 극단적인 선택에 놓인 인간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크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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