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정크 DNA

새로운 지식은 항상 놀라움을 준다. 과학은 항상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과학은 놀라움을 주는 것 같다.

생물학 분야에서 최근 각광을 받는 분야 중 하나는 후성유전학이다. 이 분야에서 관심을 끄는 영국인 저자인 네사 캐리(Nessa Carey)가 낸 책 ‘정크 DNA’는 제목 만큼이나 주장하는 논리가 간단하다. 원제 역시 JUNK DNA이다.

‘정크’라는 유쾌하지 않은 이름을 달았지만, 오래동안 아무 일도 못하는 쓰레기같은 DNA이라고 과소평가 받았던 이 DNA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무려 98%나 된다.

정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은 유전자의 이 부분은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학자들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면서 빈둥빈둥 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성유전학은 정크가 사실은 매우 다양한 일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정크로 생각했던 DNA의 영역이 인간의 정상적인 발전과 생식과 건강에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사 캐리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값 18,000원

유전자 발현 조절, RNA 암호화, 세포분열, 유전잘환 및 노화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생명현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복잡성과 특징을 푸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정크 DNA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별명이 쓰레기에서 금광이나 로또로 바뀌었다.

영국독자에게 익숙한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는 Where there’s muck, there’s brass라는 표현이다. muck은 배설물 똥 흙이라는 뜻이고 brass는 놋쇠를 말한다. 흙이나 오물 속에 값나가는 놋쇠가 있다는 뜻이다. 네사 캐리는 영국인에게 익숙한 이 표현을 이렇게 바꿨다.

Where there’s junk, there’s life.

인간의 수명을 나타내는 척도인 텔로미어는 짧아질수록 수명도 줄어들기 때문에 수명시계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비만과 흡연 중 어느 것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더 짧아지게 악영향을 미칠까?

1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백혈구의 텔로미어 길이를 분석해보니 흡연자의 텔로미어가 더 짧았다. 1년 피울 때 마다 짧아지는 속도가 18% 늘었다. 매일 한 갑씩 40년을 피우면 7년 반 짧아진다는 계산이다. 60세 이상 사망률 조사에서도 역시 텔로미어 길이가 가장 짧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흡연 보다 비만이 건강에 더 해로워

그렇다면 비만은?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비만이나 과체중으로 매년 300만명이 사망한다. 심장병이나 당뇨병 암 등이 비만과 관계가 깊다.

담배가 텔로미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논문은 비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조사했다. 비만이 더 해로웠다. 수명으로 따지면 거의 9년에 가까웠다.

사람 세포는 약 50개 조 이상인데 50개 조의 출발점은 단 하나의 세포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8이 되고 이런 과정이 50개 조에 이를때까지 진행된다.

이런 세포분열할 때 세포는 자신이 가진 것과 정확하게 똑같은 것을 복제하지만, 유일한 예외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하는 것이다.

한 세포에 들어있는 DNA를 꺼내 한 줄로 이으면 길이는 2m가 되는데, 이것이 지름이 0.01mm인 세포핵에 들어간 것은 말하자면 에베레스트 산 높이만한 줄을 골프공 크기의 캡슐에 넣은 것과 비슷하니 얼마나 가는 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후성유전학의 중요한 부분을 조금씩 다루다 보니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준다. 최근 후성유전학에서 중요하게 부각하는 현상은 DNA메틸화이다. 수십 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문제를 탐구하는 메커니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두 생물체가 유전적으로 동일하면서도 겉모습이 다른 중요한 이유는 메틸화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수 십억 년 전 가장 먼 생명의 조상 세포에 작은 생명체가 침입했다. 크기가 세포 4개 보다 큰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4개 세포짜리 생명체와 작은 침입자들은 싸우지 않고 타협을 해서 서로 이익을 얻었다.

우리 세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작은 생명체의 이름은 미토콘드리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기 역할을 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유용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얻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4개 세포짜리로 계속 남아있었을 것이다.

인간을 비롯해서 포유류는 암컷과 수컷이 없으면 생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녀생식이 없다. 오직 정자만이 난자 속으로 뚫고 들어가 자시의 DNA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생명현상은 정말 알아갈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항상 더 알게 될 때 마다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나온다.

“당신은 후성유전학이 만든 걸작품”

그래서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정부나 어떤 기관에서 과장해서 발표할때도 겸손하다. 2000년 인간유전체 서열의 첫 번째 초안이 완성되고 이 초안의 서열을 처음 기술한 논문이 그 다음 해 나왔을 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신이 생명을 창조한 그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약 3조원(27억달러)가 들어간 프로젝트이다 보니, 생색을 내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네사 캐리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주장들을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전학의 역사는 수 없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고, 생명의 기원을 알아나는데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갔다는 표현이 오늘도 미디어와 보도자료에는 차고 넘친다. ‘에누리해서 들으라’는 말은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할 것이다.

유전받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유전받은 것 이상으로 후천적인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네사 캐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들린다.

‘여러분과 나는 후성유전학이 빚어낸 걸작이다.’

조상 탓 환경 탓만 하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 핑계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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