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의사결정 오너경영 '스톱'…문재인 재벌개혁에 어떻게 대응할까?
총수부재 여파에도 1분기 실적 순항…장기전략및 투자계획에 차질 예상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포커스뉴스

[데일리비즈온 박홍준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져 병상에 누운지 11일로 만 3년이 된다. 그 후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서둘렀다. 사업을 재편하고 일부 계열사를 공개해 천문학적인 상장차익을 거둬 지배구조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편법승계논란도 불거졌다.

‘이재용 체제’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일부 추진 과제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출범했다. 그러나 승계작업 막바지 단계에서 편법승계를 서두르다 탈이 났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게이트’에서 뇌물공여혐의로 현재 철창신세다. 삼성이 오너공백으로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에서 총수의 부재는 중대한 경영사항을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해 실기로 인한 경영차질을 수반한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해 4차 산업혁명 등 중요한 전환기에 대비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오너의 감옥행으로 원칙이 흔들리는 가운데 여기서 발생하는 경영 혼선으로 인해 몇 년이 지나면 삼성의 경영상태가 훨씬 나빠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지난 2014년 5월 10일 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및 심근경색 증상으로 쓰러진 후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한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사업재편에 뉴삼성 만들기 추진

2014년 6월 삼성에버랜드의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꿨고, 삼성테크윈·삼성토탈과 삼성정밀화학 등 비주력 계열사를 각각 한화와 롯데에 매각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같은해 11월 삼성SDS가 상장했고 12월엔 제일모직이 증시에 입성했다.

이듬해 7월에는 재산상의 피해를 우려한 많은 삼성물산 소액주주와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비율 논란이 치열했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는데 성공했다. 2개월 후인 그해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법인이 출범했다.

삼성은 당시 시너지효과가 크다는 점을 내세워 두 계열사를 합병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속내는 이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강화하자는데 있었다. 이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최대한 크게 하면서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최대한 낮추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지난 3년간 '뉴삼성' 만들기에도 주력해왔다. 특히 각종 인수합병(M&A)과 계열사 상장 등으로 사업구조를 빠른 속도로 개편했다.이 부회장의 ‘뉴삼성’ 만들기는 숨가쁜 사업조정에 이어 올해 3월에는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작업을 완료해 자동차 부품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그는 대대적 조직문화 개선도 추진했다. 지난해 3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어 '창의와 자발'을 강조하면서 같은 해 10월에는 자신이 등기이사에 올라 책임경영에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무노조경영, 제왕적 지배구조 ,직업병 문제 등 사내 민주화를 위한 조직문화개선에서는 어떠한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편법승계 서두르다 '최순실게이트'가 발목

이 부회장은 지주회사체제만 구축하면 경영권을 철통같이 지켜낼 수 있는 토대를 구축, 승계작업을 완료하는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최순실게이트’에서 뇌물공여혐의로  철창행이 되면서 ‘이재용의 삼성’만들기가 완성단계에서 탈이 났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으려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433억원 어치의 뇌물거래를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삼성은 검토하던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4월 27일 뒤집었고,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요긴하게 쓰일수 있는 40조원 어치 이상의 자사주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래전략실도 2월 말 전격 해체됐다.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팀장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가신들이 나간 게 3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사실상 총수 부재인 상황이 6개월 가량 지속되면서 지난해의 '하만'이나 미국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 인수와 같은 굵직한 M&A 소식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장단 인사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이 회장의 3년 와병, 이 부회장의 6개월 부재에도 다행히 삼성의 실적은 순항중이다. 그동안 삼성이 쌓아온 경쟁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 9조8984억원, 매출 50조55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8.3%, 1.5%씩 증가한 실적이다. 특히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10조1636억원) 이후 최대치여서 역대 2번째로 높은 실적을 달성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삼성은 이제 이건희 회장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지워지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3D낸드(반도체)와 OLED 사업은 이건희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사업이다. 초기에 적자도 나고 내부적으로 구박받은 사업인데 아버지가 밀어준 사업을 이재용 부회장이 그대로 유지한 게 좋은 실적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삼성의 총재부재 여파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경영원칙이 자주 흔들린다는 지적을 받아 바람직한 재벌상을 정립하는 변화를 추진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에 확고한 원칙도 없이 대응했다가 정부와 의 갈등과 마찰로 대표재벌의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전환 계획도 뒤집고,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는 등 삼성전자는 원칙 없는 경영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든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자신의 저서에서 “삼성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한 것의 결과는 몇 년 후 나올 것이다.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으면서 삼성은 강점이던 소유경영인 중심의 빠른 경영도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이재용이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공백 여파가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향후 2~3년 후 중장기 프로그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기에 한국의 대표재벌이자 전자업체인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나서지 못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면 삼성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총수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대외신인도에 있어서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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