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영업비밀이 아니라며 공개했는데 법원은 영업비밀로 보고 비공개 판결 '논란'
정치권 등서 '영업비밀' 국제적기준 마련 주장…삼성은 여전히 재발방지대책에 '소극적'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 모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회원들의 모습 ⓒ포커스뉴스

[데일리비즈온 박홍준 기자]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많은 근로자들이 숨져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실태에 대한 정부조사보고서는 영업비밀인가, 아닌가? 이 보고서에는 삼성의 잘못을 지적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삼성의 주장대로 과연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는 지에 대해 여러 갈래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의견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법원은 이 정부 보고서를 삼성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작성한 고용노동부는 이미 안전보건진단 종합보고서를 국회에 제출,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지난 15일 반도체 노동자등이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2013년 삼성전자 기흥·화성공장의 안전보건 상태를 진단한 정부의 종합진단보고서를 공개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영업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진단총평을 제외하고는 비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는 고용부 장관이 산안전보건법에 따라 진단 명령을 내린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이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점검한 후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기록한 문서다.

김 판사는 보고서에 담긴 △생산공정 흐름도와 역할 △생산라인 배치도 △노동자 수 △장비·설비·시설의 종류와 개수, 사양, 작동방법 등 상세내용과 배치 현황 △사용되는 물질의 종류와 투입량 등을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로 판단했다.

이어 “이들은 삼성전자가 대외비로 분류하거나 오랜 기간 연구와 개발해 최적화한 정보”라며 “비록 그 내용이 파편적, 단편적이라 하더라도 경쟁업체들이 (공개된) 정보를 재구성하거나 종합해 삼성전자의 생산설비와 체계, 공정 등에 관한 여러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 보고서를 영업비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이미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제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보고서 내용은 삼성의 작업장 안전보건상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김 판사가 영업비밀로 봐야한다고 판결한 경영·영업상비밀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에 담긴 삼성의 허술한 안전관리를 지적한 내용 중에는 “급성중독 사망사고가 발생한 물질에 대한 성분 정보를 영업비밀로 분류해 관리하는 것은 부적절함”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물질유해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미흡했던 것으로 사료됨” “외부점검, 안전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발굴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문제점 축소를 지향하는 왜곡된 문화가 상당히 강함” 등이 포함돼 있다.

결국 법원은 삼성의 안전보건상 잘못을 지적한 보고서를 영업비밀로 보고 비공개를 판결한데 대해 고용노동부는 영업비밀로 보기는 어렵다고 국회에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는 형국이다.

삼성은 안전보건상 잘못 공개 막는데 '필사적'

법원 판결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공동 주최로 지난해 말에 열린 ‘끝나지 않은 삼성 직업병 계속되는 위험은폐, 과연 영업비밀인가’ 토론회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정 중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 거부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어려워, 영업비밀에 대한 국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 의원은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내용에는 보호구 지급여부, 국소배기장치 등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기업이 알면 안 되는 핵심 영업기밀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화학물질과 앞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공개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올해 8월 AP가 ‘삼성의 영업 비밀’ 기사를 통해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과 정부의 정보 은폐를 비판했다”며, “삼성전자는 즉각 모든 화학물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협조했고 계속 그럴 것이라고 해명했고 고용노동부도 법령에 맞게 해왔다고 반박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지난 9년의 산재인정 투쟁은 삼성 영업비밀과의 싸움이었다”며, “삼성은 소소한 것까지 감추려했고 고용부는 그런 삼성을 적극 지원했으며, 삼성전자와 고용부의 반박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고용부의 반도체‧LCD 공장 위험 은폐 사례로 삼성반도체·LCD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보고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가스 및 화학물질 누출 감지 시스템 기록 등을 꼽았다.

안전실태를 영업비밀이라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삼성은 여전히 투명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돈문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는 지난달 6일 삼성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 10주년 기자회견에서 "삼성이 2월 28일 발표한 경영쇄신안엔 직업병 피해 사과, 노동자 건강권, (직업병) 예방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 박영수 특검팀이 활동을 마친 지난달 28일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 등의 경영쇄신안을 발표했지만, 여기엔 삼성 직업병 관련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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