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사각지대 놓인 택배노동자

19일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 참석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19일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 참석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추석 황금연휴는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연휴였다. 8일 배송업무를 하던 택배 노동자 김 모씨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특수고용직의 불합리한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고, 산업재해 제외 신청 대필 논란은 더욱 충격을 줬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2일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숨진 김 모 씨는 CJ대한통운 택배를 배송하다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기자회견에서 “아들은 사고 전 하루 평균 16시간씩 일을 했고, 퇴근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밤 9~10시를 넘겼다”며 울분을 토했다.

김 씨와 같이 쓰러져 숨진 택배 노동자만 올해 8명에 달한다. 이 중 업계 1위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들은 5명. 더욱이 김 씨 유족은 아들이 숨을 거두고도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전달해야 할 택배를 못 받은 고객들의 전화를 받기 위해 아들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CJ대한통운 본사도, 대리점도 김 씨가 미처 배송하지 못한 연유를 알리지 않았다.

김 씨의 억울함은 또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일을 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 씨의 유족은 정작 산업재해 보상도 못 받고 있다. 9월 관계부처의 김 씨의 ‘산재보험 제외 신청서’가 접수됐다는 것. 노조에 따르면 보통 대리점 소장들에 의해 강제로 작성된다고 한다. 김 씨도 강요와 대필에 의한 것이라면 갑을 계약 관계를 철저히 악용한 사례다.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의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가 회계법인이 대필했고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고인이 일했던 대리점을 현장조사한 결과다. 이로 인해 고인 등 동료 8명에 대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무효로 할 계획이다. 정부는 김 씨가 숨지고 나서야 실태조사를 했고 이로 인해 규명됐다.

김 씨의 사망 원인으로 추석 연휴 과도한 업무량이 꼽히고 있다. 이미 노동자들은 이로 인한 과로사를 우려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이에 정부와 택배업계는 이를 방지하고자 택배 분류작업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행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행될 가능성도 두고봐야 알 일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이 소속된 대리점에선 2명의 일용직과 3명의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전담하고 있었다. 숨진 김 씨도 분류작업을 담당했던 택배 노동자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은 전담 분류 작업에 단 한 푼의 지원도 없었고 택배노동자들이 한 달에 40만원 씩 본인들의 돈을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사고는 이미 우려됐는데 미리 방지할 수 있던 대책을 세우지 않은 CJ대한통운 본사에도 비난의 촉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본사 소속 정규직이 아닌 특수고용직의 죽음 앞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사측의 행태는 꼼수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그간 택배 노동자들의 각종 사고나 죽음 앞에 특수 고용직 노동자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는 대처로 일관해 온 본사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제 2의 김 씨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과로로 추정되는 택배 노동자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