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장소 기억하는 원리

연구 관련 그림. (사진=KIST)
연구 관련 그림. (사진=KIST)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낯선 도시를 처음 가면 길을 잃지 않도록 신경을 쓰다가도 익숙해지면 길을 헤매지 않는다. 이 과정을 학습해 공간 기억이 생기는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2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이 대학 뇌과학운영단 세바스쳔 로열 박사팀이 해마 속 과립세포가 이끼세포 등 다양한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장소를 학습하게 되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뇌의 영역 중 해마는 주변 환경과 자신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며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능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이 기관은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 질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손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간 세포의 활동을 통해 위치를 인지할 수 있는 장소 세포 발견 이후 뇌의 위치추적 메커니즘이 점차 규명되었으며 공간의 탐색과 기억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기억하게 되는 장소 세포가 어떻게 생성되면서 변화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던 실정이다.

연구팀은 해마의 장소 정보 입력이 시작되는 부위로 알려진 치아이랑의 뇌 세포를 관찰하여 새로운 환경을 학습하면서 장소 세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훈련장치인 트레드밀에서 실험용 생쥐를 27일 동안 훈련하며 치아이랑을 구성하는 뇌세포인 이끼세포와 과립세포의 변화를 관찰했다.

이들이 장소를 기억하는 여러 특성을 갖고 있는 과립세포를 관찰해보니 새로운 공간에 놓였을 때 과립세포 내에 존재하는 장소세포는 사물의 위치 정보를 나타내거나 일정한 간격의 거리의 정보를 나타냈다는 설명이다.

차츰 공간에 익숙해지고 학습된 후에는 사물의 위치 정보와 거리 정보를 나타내는 세포들은 소멸되고 특정 장소를 나타내는 장소세포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학습에 따른 점진적 세포 활동의 변화를 신경망 모델중 하나인 경쟁학습 모델을 통해 재현했다. 이끼세포도 과립세포와 상호작용을 통해 장소 기억에 관여함을 밝혔다.

이끼세포 자신은 공간 학습에 따른 큰 변화는 없었지만 이끼세포의 활동이 과립세포가 사물 위치 정보에서 공간의 위치기억으로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해마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크게 공헌함으로써 인공지능 기반의 신경공학에 기여할 뿐 아니라 기억 상실, 알츠하이머, 인지장애와 같은 해마의 손상과 관련된 뇌질환을 이해하고 치료 예방하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 관련 그림. (사진=IBS)
연구 관련 그림. (사진=IBS)

한편, 공간 기억 능력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 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연구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엔 수술 없이 머리에 빛을 비추는 방법만으로 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올해 1월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사회성연구단 허원도 초빙연구위원, 신희섭 단장, 이상규 연구위원 연구팀은 빛으로 뇌세포 속 칼슘 농도를 조절함으로써 공간 기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2015년 9월 학술지에 발표한 세포에 빛을 비춰 세포 내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옵토스팀원’(OptoSTIM1)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옵토스팀원은 쥐 머리에 청색 빛을 쬐어줘 세포의 칼슘 통로를 열도록 해 세포 내로 칼슘을 유입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빛으로 광수용체 단백질 여러 개가 결합하면서 칼슘 통로를 열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려면 빛을 뇌 조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생체 내에 광섬유를 삽입해야 하는데 이는 생체 조직 손상은 물론 면역 체계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가운데 연구팀은 광수용체 단백질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빛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 광섬유가 필요 없는 ‘몬스팀원’(monSTIM1)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기술을 이용해 살아있는 쥐 뇌세포의 칼슘 농도를 높인 뒤 기억력 실험을 거쳤다.

실험 결과 몬스팀원 기술을 적용한 실험군 쥐는 대조군 쥐에 비해 공포감 때문에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모습이 관찰됐다. 수술 없이 살아있는 쥐 머리에 손전등 강도의 빛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뇌세포 내 칼슘 농도가 올라가고 공간 기억 능력이 향상된 결과를 가져왔다.

연구팀 관계자는 “뇌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빛만으로 비침습적으로 뇌세포 속 칼슘 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