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통 파스타를 고수하는 파스타 청교도인들
-“볼로네제 파스타 우리 음식 아니야”

볼로네제 파스타 (사진=인스타그램)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이탈리아인들의 파스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올해 초 볼로냐 시장 버지니오 메롤라이는 런던에 방문했는데, 볼로네제 파스타를 볼로냐의 특산품이라고 묘사한 표지판 광고를 보고는 무척 화가 났다. “이 ‘듣보잡’ 파스타는 뭐냐”며 광고판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바 있는데, 이 일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인애플이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에 질색팔색하는 현지인들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정통 파스타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파스타 청교도인’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그들은 왜 명백히 ‘볼로냐의 것’이라는 뜻을 지닌 볼로네제 파스타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일까? 볼로냐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안토니오 카를루치오는 2016년 그의 저서에서 “볼로네제 파스타는 애초에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볼로냐에는 또 볼로네제 파스타를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볼로네제 파스타의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요리 전문가들은 볼로네제 파스타가 볼로냐와 딱히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역사학자들은 볼로냐 서쪽의 이몰라라는 도시에 주목하는 모양이다. 볼로네제 파스타의 핵심 재료가 바로 라구소스인데, 18세기 문헌에 따르면 이 라구소스의 고향이 바로 이몰라에서 유래한다는 근거에서다.
 
역사학자들은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당시, 프랑스 병사들은 오늘날 볼로네제의 원류가 된 고기스튜를 지니고 다녔다”고 말한다. 그 스튜의 이름이 바로 라구(ragoût)였다. 맛을 돋우거나 식욕을 더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라구티(ragoûter)에서 유래했다. 당시 부유한 이탈리아인들은 곧 이 고기소스에 매료되었다.

시판 중인 라구 소스 통조림 (사진=신세계몰)

이탈리아에서 기록에 남은 첫 번째 ‘볼로네제 소스’는 이몰라의 요리사 알베르토 알비시가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별 영향이 없었던지, 50년대 중반 기자였던 아우렐리아노 바사니와 지안카를로 로베르시가 흑후추와 양파, 토마토와 고기소스를 섞어 오늘날의 형태에 가까운 볼로네제 소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볼로네제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오히려 영국과 미국의 미식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하고 복역하고 돌아온 미국과 영국의 군인들은 당시 먹던 통조림 볼로네제의 맛을 본국으로 전파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할이 컸다. 미국의 고기 값은 당시 이탈리아보다 훨씬 쌌고, 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또 고향에서 먹던 파스타에 고기를 듬뿍 넣어서 먹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사를 통해 “그것이 오늘날 먹는 볼로네제의 형태가 되기도 했고, 또 미트볼 스파게티 같은 ‘정통 미국식’ 요리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볼로네제 파스타가 일종의 ‘외식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징표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서민들의 한 끼 식사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만찬 파티에도 종종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아직까지 지나치게 열정적인 ‘꼰대’ 이탈리아인들이 볼로네제를 인정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이 요리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본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볼로네제 파스타는 마치 입양된 아이와도 같이 영국과 미국의 저녁 식탁에 새롭게 동화되었다. 그러니 볼로네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파스타의 기원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모양이다. 단지 그 음식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