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사진=sbs)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홍콩의 자금이 싱가포르로 탈출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범죄인 인도법안'(이하 송환법) 반대 시위로 홍콩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송환법으로 인해 촉발된 시위는 친중파로 알려진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주장으로 옮겨붙은 상황이다. 이에 홍콩과 비즈니스와 금융 허브의 측면에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던 싱가포르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른바, 금융자산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은 싱가포르를 홍콩의 대안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6월 초부터 홍콩에서 일어난 대규모 송환법 반대 시위는 시위와 정치적 표현을 엄격히 규제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대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22주년이 되는 날인 7월 1일에는 입법회 청사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핵심 금융센터로서의 홍콩의 지위에 대해 의문을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재까지 홍콩을 빠져나간 자본의 규모를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다.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다양한 정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리처드 해리스(Richard Harris) 포트쉘터인베스트먼트 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실질적으로 신뢰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라면서 “송환법 문제를 떠나서 이제 사람들은 홍콩 정부가 투자자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송환법을 둘러싼 논란 속에 홍콩 정부가 사실상 ‘레임덕’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꼬집는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만약 중국 송환법이 제정되면 다국적 기업들이 홍콩 탈출을 감행해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클레멘스 푼(Clemence Poon) 홍콩침례대학 교수는 앞으로 홍콩의 시위가 확대될지 여부를 떠나 이번 사태로 홍콩의 부자들이 ‘탈출구’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돈 많은 사람들은 시위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중국과 홍콩 정부 때문에 홍콩을 떠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이먼 영 홍콩대 로스쿨 교수 역시 로이터통신에 “일부 홍콩 주민들이 자산을 해외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 자산운용사들이 홍콩 대신 싱가포르에서 사무실을 여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다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 내 부동산 브로커들이 홍콩 소재 펀드 매니저, 개인 투자자, 자산운용사 등으로부터 받는 투자 문의가 늘고 있고, 실제로 이들 투자자들의 싱가포르 방문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치 위험이 고조되자 홍콩 부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미국 달러 표시 보험 상품에 가입하고 있다. 스타트업 보험회사인 싱가포르 라이프(Singapore Life)는 최근 맞춤형 보험 계약을 원하는 홍콩인들의 요구가 20~30% 정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해리스 CEO는 “고액 투자자들이 돈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다”면서 “곧 본격적으로 그런 얘기가 들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싱가포르 정부는 분명 매우 안정적이고, 싱가포르 은행들의 자산건전성도 뛰어나고, 그들은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라고 싱가포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다는 분석도
  
아직까지 싱가포르 관리들은 싱가포르로 유입되는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인지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중앙은행격인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라비 메논(Ravi Menon)  총재는 지난달 말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사업이나 자금이 대규모로 이전되고 있다는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홍콩이 싱가포르나 도쿄 등 라이벌보다 중국 본토와의 근접성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인 ‘킹 앤 우드’의 수석 파트너 인 로널드 아큘리는 “다른 금융 허브는 홍콩의 위상을 넘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홍콩, 싱가포르, 도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도쿄는 영어권이 아니다. 따라서 싱가포르와 홍콩이 남는다. 이중 중국 본토에 더 가까운 홍콩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싱가포르가 홍콩의 정치환경으로 인해, 자본유출의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 역시 “이 같은 혼란이 지속되면 홍콩의 자본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며 “홍콩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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