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강행에 시민단체·노동계·학생 등 저지시위
-입법회는 친중파가 장악...법안 저지 쉽지 않아

홍콩에서 2019년 6월 9일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가 열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100만 명의 홍콩 시민을 거리로 나서게 했던 '범죄인인도법안' 심의가 다시금 시작된다. 법안 저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다시 한 번 격렬한 충돌이 예상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12일 오전 11시부터 범죄인인도법안 2차 심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홍콩 입법회의 법안 표결은 통상 3차 심의를 거 후 이뤄지지만, 이날 홍콩 입법회가 2차와 3차 심의를 한꺼번에 처리하고 표결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날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유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법안 추진은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에 홍콩 재야단체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12일에 시위를 이어가겠다”며 “의원들이 만나 이 법안을 논의할 때마다 우리는 입법회 밖에서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범민주파 의원 24명도 공동성명을 내고 “캐리 람 행정장관은 어느 전임 행정장관보다 더 민의를 무시하고 있다”며 “범죄인인도법안을 즉각 철회하거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콩 각계에서도 12일 입법회 밖에서 법안 저지시위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홍콩 노동운동단체들과 환경단체, 예술계, 사회복지사총공회 등은 파업을 벌이고 저지시위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홍콩이공대학 학생회 등도 학생들에게 동맹휴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홍콩 내 100여 개 기업과 점포 등도 12일 하루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저지시위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태국산 제품 판매 체인점을 운영하는 람 씨는 “모두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는 기업인으로서 휴점을 통해 사회적 불의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겠다”며 “영업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시민은 이날 밤부터 입법회 밖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며 12일까지 저지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홍콩 버스 노동조합은 12일 시내에서 서행 운전을 하며 법안 반대 의사를 나타낼 계획이며, 홍콩 교사 수천 명도 법안 저지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시민들의 법안 저지 운동이 일어났다. 한 누리꾼은 5만 명이 모여 입법회 건물을 포위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한 홍콩 시민이 페이스북에 올린 “12일 입법회 건물 밖에서 소풍을 즐기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소풍을 떠나자”라는 글에는 1만여 명의 누리꾼들이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캐리람 행정장관은 “학교, 기업, 노동조합 등은 과격한 행동을 지지하기 전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홍콩의 도움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법안 통과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 정부가 표결을 강행할 경우 이를 저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홍콩 입법회 의석은 총 70석으로 지역구 의석 35석, 직능대표 의석 35석으로 구성된다. 직능대표 의석은 ‘건제파’(建制派)로도 불리는 친중파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으며, 지역구 의석도 친중파 18석, 범민주파 16석으로 친중파가 우위다. 나머지 1석은 공석으로 남아있다.

SCMP는 "지난 2003년 7월 1일 50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거리시위를 벌여 국가보안법 추진을 무산시켰지만, 지금은 홍콩 정부와 친중파 의원들의 결속이 강해 법안 처리가 저지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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