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베트남發 한류 열풍 ‘명과 암’
[기자수첩] 베트남發 한류 열풍 ‘명과 암’
  • 박종호 기자
  • 승인 2019.05.3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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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갖는 대중문화로서의 한계
-경제력 갖춘 계층의 포섭에 달려있어
K팝 콘서트에 모인 베트남 팬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베트남의 한류열풍에 대해 종종 양국 간의 ‘상호의존성’이 언급된다. 가령, 한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세 번째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특히 3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쩐다이꽝 베트남 주석과 내년까지 교역규모를 1000억 달러까지 늘리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계획이 달성되면 베트남은 한국의 두 번째 교역국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베트남 입장에서도 한국은 무척 중요하다. 가령 하노이에는 거대한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데, 베트남 전체 수출액 중에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가가치까지 더한다면 실로 엄청난 규모다. 이에 한국 기업들도 줄줄이 베트남에 몰려온다. 하노이의 한국학교는 몰려드는 한국 교민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수십 명을 추첨으로 떨어트리기도 했다. 그러니 베트남의 동아시아인은 일단 한국인으로 간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어는 곧 돈이 된다. 한국어에 능통하면 베트남 현지의 한국 법인에 취직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파트타임 통역 한번으로도 어지간한 대졸자 초임급여를 벌 수 있다는 소리도 있다. 베트남의 명문대에 잇따라 한국어과가 개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 요즘에는 해당 국가의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두고 외국어를 학습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한류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는 식이다.

베트남 내에서의 ‘한류’야 명백히 존재하지만, 산업 전반으로도 활황인지는 의문이다. 유료 K팝 콘서트가 베트남에서 성공했다는 예도 거의 없다. 소위 성공했다는 공연은 모두 무료였다. K팝 팬 대부분이 구매력이 없는 10~20대일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 위 연령층, 부모 세대에서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박항서 열풍에 한창이었던 올해 초 조사에서도 ‘베트남전쟁의 기억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가’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베트남의 유명한 음악감독 꾸옥 쩡은 K팝이 베트남의 문화 수준을 끌어내린다며 가슴을 쳤을 정도다. 부모 세대에게는 오히려 사회주의 분위기를 함께 공유했던 러시아의 대중문화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구소련의 상류층들이 향유했던 이른바 ‘고급문화’에 가깝다. 그래서 베트남 부모들은 아이들이 러시아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것을 장려하면서도 K팝 공연장에 간다고 하면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 일본, 중국 문화는 베트남의 정치인, 전문가, 종교인 등 사회 지도층이 가져와 보급하면서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급 문화로 안착했지만, 한국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이 약한 층이 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라고 분석한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한류가 상류층으로 진입을 시도하지만, 아직은 잠잠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베트남에서 러시아 문화는 고급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을 함께하던 보드카가 고급 주류로 대우 받고 있고, 러시아의 음악과 회화, 문학 등은 최고급 예술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베트남 상류층에서 대접받는 것은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러시아어다. 러시아어가 유창하다면 정관계 고위층과도 쉽게 통할 수 있다. 현 권력실세 응우옌 푸 쫑 서기장, 응우옌 쑤언 푹 총리 등 행정부의 다수가 소련 유학파다. 재계서열 1위 빈그룹을 이끌고 있는 팜 녓 브엉 회장도, 저가항공 비엣젯의 응우옌 티 푸엉 타오 회장 역시 소위 모스크바 ‘물’ 좀 먹은 인텔리 출신이다. 일각에 의하면 베트남을 이끌고 있는 인물 80%가 러시아 유학파라는 말도 있다.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 그는 가장 성공적인 러시아유학파 출신 기업인이기도 하다. (사진=빈그룹) 

과거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의지할 데 한 곳 없이 궁핍했다. 중국과의 사이도 그리 좋지는 못했으니, 소련에 대거 유학생들을 파견하는 방법으로 인재를 육성하고자 했다. 80년대부터는 노동자들도 소련으로 파견되었고, 한동안은 송금경제로 내수경제에 숨통을 트기도 했다. 결국 소련은 붕괴했지만,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류가 10년, 20년 후에도 현지의 이미지로 남으리라는 법은 없다. 초기 문화연구에서 정의하듯 한류가 노동자들의 문화에서 상위문화로 탈바꿈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경제력을 갖춘 이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유관산업의 관계자들이 이 점을 자각하고 있는지,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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