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분석 '뜸부기의 일종' 밝혀

'갈 수 없는 섬’에 사는 ‘날지 않는 새’. 이 희한한 스토리가 최근 과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갈 수 없는 섬’은 대서양 한 가운데 있는 케이크 같이 생긴 화산섬이다. 섬 이름 자체가 ‘인억세서블 아일랜드’(Inaccessible Island), 이름 그대로 접근을 거부하는 섬이다.

그렇다면 ‘날지 않는 새’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주 오래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아틀란티스’와 연관된 이름을 붙인다. 아틀란티스는 아주 오래전 바닷물 속으로 침몰했다고 전해지는 미지의 대륙이다.

날지않는 새의 이름도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유래한 아틀란티시아(Atlantisia)이다.

날지 않는 새로 유명한 아틀란티시아 c. Peter Ryan

날지않는 새 ‘아틀란티시아’ 미토콘드리아 분석

아틀란티시아는 바다 한 가운데 갈 수 없는 섬에 고립돼서 살고 있다. 특히 날지 못하는 새 중 가장 작은 새라는 점에서 조류관계자들의 관심을 끈다.

이 새에 ‘아틀란티시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23년 영국 군인인 퍼시 로우(Percy Lowe)이다. 퍼시 로우는 고대 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에다가 트리스탄 섬에서 조류 수집활동을 벌였던 로저스(Rogers)의 이름을 붙여 아틀란티시아 로저시(Atlanrisia rogersi)라는 이름을 붙였다.

퍼시 로우는 이 새가 아주 독특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상상의 날개를 편 그는 “이 새가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닷속으로 꺼지기 전에 걸어서 이 섬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아틀란티스 대륙이 없어진 다음에도 그대로 살아 남았다는 전설같은 동화를 지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후세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 오레곤대학교(University of Oregon) 생태진화연구소(Institute of Ecology and Evolution)의 박사후과정 연구원인 마틴 스터반더(Martin Stervander)는 이에 대해 “아틀란티시아라는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터반더 연구팀은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전설과 달리 이 새는 남미에 사는 새의 친척”이라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전분석기법인 미토콘드리아 및 핵 DNA 분석 방법을 이용해 이 새가 남미에 서식하고 있는 점박이 뜸부기인 ‘포르자나’(Porzana)에 속한다고 밝혔다.

스터반더는 아틀란티시아가 포르자나와 분리된 것은 150만년 전으로, 아틀란티시아가 인억세서블 아일랜드로 흘러 들어온 다음부터라고 ‘분자계통학 및 진화’ (Molecular Phylogenetics and Evolution) 저널에 발표했다.

유전적으로 분석하면 이 새는 미주지역에서 발견되는 검은 뜸부기와 갈라파고스 뜸부기와 유사했다. 이들도 역시 비행능력이 크게 줄어든 새이다.

갈 수 없는 섬은 초원으로 덮여 있어 먹잇감이 풍부하다.  ⓒNASA
갈 수 없는 섬은 초원으로 덮여 있어 먹잇감이 풍부하다.  ⓒNASA

이 새가 갈 수 없는 섬에 도착했을 때 먹고 살기에 너무나 풍족한 조건이 조성되어 있었다. 초원이 깔려있는 좋은 환경에다가 벌레 열매 씨 등 먹을 것도 너무나 풍족했다.

때문에 이 새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생존하기 위해 번거롭게 날개짓을 하면서 힘들이지 않아도 됐다. 가뜩이나 잘 날지 않는 뜸부기과에 속한 이 새는 결국 날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선택에 의해 날지않는 새로 변신했다.

갈 수 없는 섬에는 현재 약 5,000마리의 아틀란티시아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혹시라도 쥐나 다른 동물이 이 섬에 들어오면 멸종 가능한 숫자이다.

특정한 섬에서 번성하던 ‘날지 않는 새’들이 외부의 침략으로 쉽게 멸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의 멸종 원인은 바로 사람이다.

뜸부기는 국제자연보존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적색 리스트에 올라있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날지 않는 새 중 가장 작은 이 새는 지구상에서 갈 수 없는 섬에만 산다.

이는 갈 수 없는 섬이 새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날지 않는 새를 비롯해서 북바위뛰기펭귄 (northern rockhopper penguins), 슴새, 알바트로스 등이 산다.

갈 수 없는 섬은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3,600km,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8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약 3백만년 전에서 6백만년 전에 폭발한 화산섬이다.

 

갈수없는 섬의 위치 ⓒ 위키피디아
갈수없는 섬의 위치 ⓒ 위키피디아

갈 수 없는 섬은 멀리서 보면 마치 케이크 같이 생겼다. 섬 전체가 절벽인데 갑자기 바닷물 한 가운데 우뚝 평평하게 솟아 있다.

갈 수 없는 섬은 5개 섬으로 이뤄진 트리스탄 군도(群島)에 속한다. 이 중 트리스탄에만 사람들이 산다. 트리스탄에 도착하려면 아프리카 남아공이나 아르헨티나 또는 브라질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논스톱으로 가도 8일이 걸린다.

화물선이나 어선이나 연구용 선박 등을 얻어타야 하는 복잡한 여정이다. 몇 개의 게스트 하우스와 정부(영국령이다)건물이 있는 트리스탄 섬 주민은 모두 250명이다. 관광객들은 섬에서 자지 않고 선박에서 지내면서 섬에 내릴 때는 작은 딩기선이나 헬리콥터를 이용해야 한다.

1년에 한 두 번 1주일 정도 방문 가능

사람이 사는 트리스탄 섬에 가기도 이렇게 힘드니 갈 수 없는 섬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다음, 트리스탄 섬에서 45km떨어진 갈 수 없는 섬까지는 오로지 작은 보트로만 이동한다. 헬리콥터가 있어도 내릴 장소가 없어서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힘들여 도착한다고 해도 그 작은 해안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10분 정도 오가는 것으로 갈 수 없는 섬 여행을 마쳐야 한다. 긴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이고 그 짧은 방문을 위해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왼쪽이 트리스탄 섬, 오른쪽 끝이 갈수없는 섬이다. ⓒ위키피디아
왼쪽이 트리스탄 섬, 오른쪽 끝이 갈수없는 섬이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갈 수 없는 섬은 오랫동안 꿈과 전설의 대상이었다. 특히 1952년 에릭 로젠탈(Eric Rosenthal)의 ‘Shelter From the Spray’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는 1871년 독일의 구스타브, 프레데릭 스톨텐호프(Stoltenhoff) 형제가 바닷표범 가죽을 팔아 돈을 벌겠다면서 갈 수 없는 섬에 2년 정도 살았던 이야기다.

날지 않는 새에 아틀란티시아라는 전설(傳說)적인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분석해 날지 않는 새의 기원이 밝혀졌지만, 그 신비가 해체되는 것만큼 인간의 상상력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해보니 떡방아 찧는 토끼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 만큼이나 실망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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