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산다.

But fools die for lack of understanding.

아프리카에서 최근에 가장 비극적인 일을 겪었던 곳 중 하나는 르완다이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동족상잔이 벌어졌다. 투치 족과 후투 족 사이의 대량학살이다. 인종청소라고 할 만한 genocide 의 참혹한 학살이다.

(다음백과 : ‘제노사이드’라는 말은 원래 '인종', '민족', '종족'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해'를 뜻하는 라틴어 'cide'에서 유래했으며, 1933~45년 유럽에서 대규모 집단을 의도적으로 죽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것을 설명할 법적 개념이 필요해 만든 말이다.)

대량학살이 1994년에 벌어지자 죽음을 피해 수십 만~수백만 명이 르완다 이웃 자이르(지금의 콩고), 모잠비크 등으로 피난해서 난민촌에서 살았다.

이들은 1996년 자이르의 내부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난민촌 마저 위태로워지자 다시 수십만명이 르완다로 돌아왔다.

필자는 난민들이 돌아올 때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길거리에는 먼 길을 걸어서 고향으로 고향으로 이고지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귀향도중 사망하자, 즉석에서 장례를 치루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린 아이를 안고 너무나 힘들어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에 가지고 있던간식을 건넸다.

동족상잔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단순한 갈등을 넘어 대량학살로 이어진 배경에는 낮은 교육수준과 상대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및 오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c. Pixabay
알면 불안하지 않다. ⓒ Pixabay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르완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의 중요한 원인은 모르는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를 때 불안하다. 요즘같이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 같고, 나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고, 나는 점점 더 가난해질 것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면 괜히 위축되거나 소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미래전망에 속아 넘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본질적으로 과학기술은 새로운 창조와 성장의 근본이다. 역사와 문명이 발전하는 큰 힘이 지금은 과학기술이 담당하고 있다. 세계적인 모든 기업이 과학기술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만 봐도 지금은 과학기술시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알 수 없는 발전의 시대를 맞이해야하는가?

모든 새로운 것에는 반드시 위험성과 부작용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위험성과 부작용이 결코 대세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서 이 위험성을 0.001%로 혹은 0.5%로 보기도 하고 1%, 5%, 10%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위험성을 51%라고 부풀린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서 은근히 조종하려는 태도이다.

이 위험성이 만약 80%가 넘는다고 과장하는 의견은 너무나 객관성을 잃었으므로 무시하는게 좋을 것이다.

탐험가들이 아주 멋있는 풍경으로 안내하는 좋은 소풍길을 열었다. 그런데 길을 잃으면 낭떠러지로 갈 위험이 있었다. 낭떠러지로 연결된 통로에는 안내판을 세우고, 넘어가지 못하도록 펜스를 치면 된다.

미래는 안전하다.
불안한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정도의 불안은 항상 있어왔음을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