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스핀

양자역학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스핀이라는 말에 솔깃한 사람은 ‘낚인’ 독자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사물의 원인을 따지기 좋아하고, 원인이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리기를 좋아하고, 어떤 규격에 맞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래서 어찌어찌하여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 개념을 겨우 이해한(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강영 교수는 다음 단계로 ‘스핀’을 알아야 한다면서 손짓한다. 이런 유혹에 홀깃해서 집어드는 책이 ‘스핀’(SPIN)이다.

이 책은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중 한 명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가 정립한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를 주로 설명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친절하면서도 엄청나게 불친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친절한 것은 파울리의 할아버지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집안내력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마치 전기 서적같이 느껴진다.

이강영 지음 / 계단 값 22,000원

 

파울리의 부인 이야기도 비교적 자세히 나오고, 파울리의 한국인 제자였지만,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미쳐 자기 잠재력을 펼치지 못한 진영선 박사 (1927~1966)도 소개하고 있다.

파울리의 집안 내력뿐만이 아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해서 양자역학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 당시의 서구 물리학자들을 거의 망라할 정도로 자세히 아주 촘촘하게 설명한다. 양자역학의 계보를 짤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학문적 업적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양자역학의 핵심인 ‘배타원리’ 탄생 배경 설명 

그렇지만. 이런 세심한 친절함은 정작 배타원리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카이스트 물리학 석박사 출신으로 경상대학교 물리학교수를 하고 있는 이강영 박사는 파울리에 대해서도, 그가 정립해서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한 배타원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배타원리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걸쳐야하는 전자의 스핀에 대해서도 자기 수준에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설명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내 책을 읽으려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해’라고 하듯이 어려운 물리학 용어와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죽 설명을 해 댄다.

그러므로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보통 독자들에겐 스핀이란 전자가 빙글빙글 돈다는 것이고, 배타원리라는 것은 한 원자 안의 전자는 같은 상태일 수 없다는 아주 초보적인 설명 이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이 책은 매우 불친절하다.

사실 일반 독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왜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지, 혹은 왜 전자는 같은 상태일 수 없는지 그런 기본 개념을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같은 친절함과 불친절함의 이중적인 공존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깊이 있는 설명과 폭넓은 탐구는 매우 본받을만하다. 그 많은 물리학자들의 과학세계를 이정도로 폭넓게 그러면서도 과학적 업적을 놓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저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을 정도이다.

그 설명하는 방식은 거대한 서사시나 큰 미술관의 한쪽 벽을 다 채울 만큼 큰 풍경화를 생각나게 하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물리학 전공자들에게 이 책은 굉장히 훌륭한 필독서가 될 수 있다. 물리학을 전공할 이유가 없고, 과학을 할 이유도 없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당시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나 업적을 주마간산처럼 훑고 지나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기도 하다. 이강영 박사는 그 많은 물리학자들을 촘촘하게 설명하면서도 어느 한 두 사람을 특별히 높게 평가하거나, 좀 더 우수한 과학자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배타원리에 대한 책이므로 파울리를 설명하는 분량이 많기는 하다. 그래도 무심하게 파울 리가 이러저러한 성과를 냈고,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무심하게 설명할 뿐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백과사전식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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