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도 아닌 선출직 회장의 지나친 권한 감시 위한 실제의 필요를 고려해봐야

한국 최초로 노조에 의한 주주제안권 행사를 통해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이 어제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논의했으나 결국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이사제 제도 자체를 두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에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KB금융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노조 추천 하승수(49)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노조 추천 선임에 찬성한 측은 지분 0.18%를 보유한 KB금융 노조와  지분 9.68%를 보유한 국민연금 측인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측은 논의 결과 출석 주식 수 대비 찬성률 17.73%로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번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 자체를 두고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노사대립이 심각한 한국 실정에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자체가 현실에 맞지 않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과 스웨덴을 비롯해서 유럽의 신자유주의 국가 다수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미국 내 기업들도 상당수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노동이사제를 사민주의 국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그리고 노동이사제를 하면 무슨 노동자들이 경영을 좌지우지하니 하면서 노동자에게 기업이 넘어가는 것 처럼 과잉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차피 결정은 주식 수로 결정한다. 노동이사제로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노조가 추천하는 이사가 사외이사진으로 한 명 들어가봐야 이사들의 다수결로 정해지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노동자들이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노동이사제로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질 수는 있다. 사실 노동이사제 혹은 미트베슈팀뭉스게제츠의 최대 단점이자 유일한 단점은 의사결정의 속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것이 늦은 것보다 좋다. 그러나 노동이사제 내지 미트베슈팀뭉스게제츠가 의무화된 독일에서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가 매우 늦기는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는 데에서도 세계 선두를 다툰다.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 뿐만아니라 결정된 의사의 수행 속도, 잘못된 의사결정의 예방 등등 전체적인 기업 활동에서의 효율을 좌우하는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와 완전히 거리가 먼 오히려 한 명의 그룹회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는 한국에서 의사결정이 그만큼 빠른 것도 아닌 것을 본다면, 결국 뭐든지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최근 발달된 정보통신네트워크 기술을 탈중앙분권화(DAO) 기술 및 사상과 결합시키면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에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번에 노동이사제가 논의된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회장 한 사람에게 너무 큰 권한이 집중돼 있고 회장 한 사람이 금융그룹 전체의 의사결정을 폐쇄적으로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문제가 돼온 것이다. 이런 경우 노동이사제가 의사결정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개정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회사는 주식 0.1%이상만 보유하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KB금융노조는 지분 0.18%를 보유하고 있어 주주제안권 행사가 가능했고 그것을 이번에 행사한 것이다. KB금융노조가 이번에 주주제안권 행사를 통해 제안한 것은 KB금융지주 사외이사진에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한 사람 꽂아넣기 위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사건인데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게 보장된 권리를 당연히 행사하는 것이다. 

보통 금융지주회사에는 7~8명 내외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데 그 중에서 6명 내외로 회장추천위원회의 위원이 선발된다. KB금융노조가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한 명 만들어내려는 것은 바로 그 회장추천위원회에 한 명이라도 노조추천 사외이사를 넣어보려는 목적 때문이다.

회장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로서 현 금융그룹 회장과 무관한 인사로 두는 것이 원칙이고 회장은 그 사외이사 선발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사실상 회장이 그 선발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심을 많이 받고 있는 형편이다. 제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도 않는다. 이런 왜곡된 구조를 통해 회장의 '셀프연임' 논란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노동이사제는 시도해볼만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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