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e Lee의 「평판과 전략」

▲ 조두순 사건을 다룬 영화 '소원'의 한 장면

2020년 조두순의 징역 12년 만기 출소를 3년 앞두고 "우리나라 형사정책이 불합리하다", "형벌이 너무 가볍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형량을 강화하는 법안 개정운동도 벌어지고 있는데, 법체계와 형사정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잘못된 주장들, 잘못된 입법시도다. 

대다수 언론들도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구조 내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중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수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제외하고 미국과만 형량을 비교하는 기사를 자주 내고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보도다. 

▲ 법체계와 형사정책 시스템이 서로 완전히 다른 미국과 한국의 형량을 단순 비교하고 있는 언론의 사례

한국의 형량과 영미법계 국가들의 형량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형량이 낮다고 하면 안된다. 영미 쪽은 형사정책 구파 계열 국가이고 유럽대륙 쪽은 형사정책 신파 계열 국가다. 이 둘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한국은 대륙법계 (그중 독일법계) 국가이므로 영미쪽과 비교하면 안되고 대륙법계, 즉 독일 등 유럽 쪽과 비교해야 한다.

영미법계의 형사정책 구파는 범죄인을 엄중히 처벌하면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입장이고 대륙법계의 형사정책 신파는 범죄인을 관대하게 처벌하면서 대신에 교화와 보안처분 등으로 사회를 보호하려는 입장이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형벌과 비교하면 한국의 형벌은 오히려 무거운 편이다. (참조 : 독일 등의 형법 한글 번역판 http://bit.ly/2mkELNY ) 독일과 비교하면 살인등 강력범죄에 대한 형벌이 한국은 독일보다 약간 무거운 편이고, 유럽 전체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은 형벌이 매우 무거운 편이다. 

한국의 형벌은 충분히 무거운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는 한국의 형사정책 현실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조두순 사건에 대한 형사 처리가 바람직하다는 말도 더더욱 아니다. 2020년에 출소하게 될 조두순을 보면서 나 역시 우리 나라의 형사정책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두순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과 17범이라는 과거의 범죄 경력 때문에 부당하게 엄한 처벌을 받았다고 오히려 사법제도를 원망하는 조두순을 보자면 그의 행위 책임과 별개로 행위자 위험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자 위험성에 따른 재범 등의 위험에 대해 보안처분이 이뤄져야 한다.  

독일에는 보안감호(Sicherungsverwahrung) 제도가 있다. 처음 보안감호 제도를 도입할 때 이중처벌 문제, 요건과 집행에서의 문제가 많았지만 독일은 보안감호 요건과 집행을 정밀하고 분명하게 보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보안감호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형벌만 독일의 형벌체계를 가져오면서 보안처분은 가져오지 못했다. 독일의 보안감호와 유사한 제도인 보호감호제도가 있었으나 전두환 정권 때 남용되어 잠깐 실시되다가 현재는 폐지됐다. 조두순 같은 경우 행위 책임과 별개로 행위자 위험성이 다분하므로 보안감호로 조두순을 감시하고 사회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시켜야 하는데 그 부문에서 구멍이 난 상태다.

대륙계 국가의 형사정책은 형벌과 보안처분과 교도정책의 협업 시스템이 잘 돼 있다. 한국의 문제는 이러한 교도정책, 보안처분 등 형사정책 전반에서 형사정책 신파의 협업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서 형벌만 신파 형사정책 국가의 형벌만을 그대로 가져온 데서 발생한다.

조두순 사건을 겪은 우리 사회가 개정해야 할 것은 가벼운 형량을 무거운 형량으로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하고 부실한 보안처분을 탄탄하고 촘촘한 보안처분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무거운 형량으로 개정할 것이면 법체계를 몽땅 영미법체계로 바꾸든지 해야 한다.

ps.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한 결과 내려지는 형벌 감경 처분이 부당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법체계와 형사정책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잘못된 주장이다. 대륙법계 신파 형사정책 국가에서는 원래 그렇다. 문제는 음주범죄자에 대한 보안처분이 부실한 것이다.

▲ 칼럼니스트 Jake Lee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 편집장, JTBC 콘텐츠허브 뉴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박사과정에서 평판과 전략, 정책을 연구 중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