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의원 '자동차 결함 피해자 제보 간담회' 열어 사고 당사자 의견 청취
"현대·기아차가 회사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안전 외면…정부 무능" 질타

▲올해 1월 경북에서 발생한 팔공산 갓바위 싼타페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보배드림

[데일리비즈온 안옥희 기자] 현대자동차의 주력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싼타페의 잇단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무성하다.

싼타페는 지난 2000년 출시돼 100만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모델이지만, 정부 조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급발진 의혹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23일 자동차 업계와 관련 커뮤니티들에 따르면 수많은 싼타페 운전자들이 급발진(자동차가 운전자 제어를 벗어나 가속하는 현상) 사고 우려 탓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두려움을 안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자동차 결함 피해자 제보 간담회’를 열고 차량 결함, 급발진 등으로 인한 피해자들과 만나 사고 당시 상황 등을 청취했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에는 지난해 8월 부산에서 발생한 싼타페 급발진(고압펌프 결함), 지난 1월 팔공산 갓바위 아래 산길에서 발생한 싼타페 급발진(브레이크 결함) 추정 사고 등을 겪은 자동차 결함 사고 등 피해자들과 관계자들이 참석, 사고 경위와 이후 처리 과정 문제점 등을 증언했다.

부산 싼타페 사고, 국과수 “차량결함 확인 불가” 원인규명 뒷짐…운전자 과실 결론

‘부산 싼타페 사고’ 운전자 한 모 씨는 지난해 8월 2일 아내와 딸, 세 살배기와 생후 3개월 된 외손자 등을 태우고 이동하던 중 부산 남구의 한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한 뒤 도로에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를 빠른 속도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한 씨를 제외한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운전자이자 두 아이의 외할아버지인 한 씨는 목숨을 건졌지만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부산지방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와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싼타페 차량을 몰고 가던 운전자 한 씨가 차량 속도가 빨라지자 “아이고, 이거 차가 와이라노”라고 다급하게 외치고 차량 엔진음이 크게 들리면서 차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싼타페가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급발진과 운전자 과실 등 논란이 일었으나 경찰은 운전자 과실로 판단, 한 씨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해 9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감정을 벌여 파손이 심해 엔진 구동에 의한 시스템 검사가 불가능한 점, 제한적인 관능검사와 진단검사에서 작동 이상을 유발한 만한 기계적 특이점이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브레이크 안 듣고 질주”…급발진 의심되는 팔공산 갓바위 싼타페 사고도 원인규명 난항

싼타페 급발진 의심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팔공산 갓바위 싼타페 사고’ 운전자 권 모 씨는 지난 1월 1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팔공산 갓바위로 해맞이를 갔다가 급발진 의심 사고를 당했다. 권 씨는 갓바위 입구 내리막 산길에 세워둔 차에 올라 출발하는 순간 차량에서 굉음이 나면서 앞으로 튀어나갔다며, 브레이크를 아무리 밟아도 듣지 않아 왼쪽 발로 풋브레이크도 밟았지만, 차가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차량은 80m쯤 진행해 길가에 세워둔 승용차와 계곡쪽 소나무를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이 사고로 운전자 권 씨의 차와 들이받힌 승용차 등 3대가 폐차됐고 권 씨와 아내는 갈비뼈 골절 등 부상을 당했다. 당시 차에 설치돼 있던 7개의 에어백이 하나도 터지지 않은 것을 두고 현대차측이 “에어백이 터지지 않은 것은 센서각이 맞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가속페달을 밟아놓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며 급발진 가능성이 아닌 권 씨의 잘못으로 몰아가 논란이 됐다.

하지만, 권 씨는 운전 경력 23년에 단 한 번도 사고를 낸 적 없어 운전자 과실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권 씨가 현대차에 요청해 어렵게 확보한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에는 사고 당시 권 씨가 브레이크를 작동한 게 확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3대의 차량이 폐차될 정도의 정면충돌 사고였는데도 불구하고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고 당시 EDR기록 상 최고속도가 시속 19㎞로 기록돼 있는 것도 의아하다는 게 권 씨의 주장이다.

급발진 원인, 못 찾나 안 찾나…못 믿을 현대차·국과수

이날 간담회에서 부산 싼타페 사고 운전자 한 씨의 유가족측은 “국과수 관계자가 국과수는 결함조사 장비와 기술진이 없는데 현대차는 있다고 했다”며, “마치 의료사고를 당했는데 가해 의사에게 부검을 시키자는 것”과 같다고 주장해 국과수의 분석 역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부산 싼타페 사고를 감정한 국과수가 당시 고압펌프 조사, 엔진구동 시험 등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가능성을 아예 검증하지 않았고, 결함 조사를 현대차에 의존한 것으로 드러나 국과수의 무능함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뉴스타파와 관계 기관 등에 따르면 국과수는 급발진 사고 가능성을 자체적으로 분석할 기술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현대차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급발진 의심 차량 제조사에게 분석을 맡기면 제작 결함으로 인한 사고여도 자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은폐할 가능성이 높아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16일 국회 안전행정위가 발표한 ‘국과수에 의뢰된 자동차 급발진 사고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급발진 의심사고 조사건수는 총 154건으로, 이 중 현대차가 73건(47.4%)으로 나타났다. 이어 기아차가 30건(19.5%)로 나타나 현대·기아차에서 급발진 의심사고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54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 중 급발진으로 판명된 사고는 단 1건도 나오지 않아 국과수가 현대차 결함의혹을 덮어주고 있다는 불신의 눈초리도 있다.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도로교통공단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700건에 이르지만, 차량 결함의 책임으로 차량 제작사에 사고 당사자가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긴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차량 결함 의심사고 관련 소송에서 국과수의 의견이 판결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국과수 분석을 신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앞서 박 의원은 현대·기아차가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 등 제작 결함 관련 담당자들의 신상 내부문건을 만들어 자동차 결함을 무마하는 로비창구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박 의원이 14일 공개한 ‘제작결함 관련 국토부 등 유관부서’ 자료를 보면 2015년 현대·기아차가 국토부 부이사관·서기관·사무관·주무관 등 공무원 7명 및 교통안전공단의 이사와 1·2급 등 직원 8명의 소속·성명·직급·생년월일·학력·연락처가 적혀 있는 내부문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내부문건을 통해 관리가 이뤄졌을 것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리콜 축소와 은폐 및 비용절감 내부문서도 공개했다. 박 의원은 9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해 12월 받은 공익제보를 토대로 현대‧기아차가 총 32건의 차량 결함을 축소하거나 은폐했다고 주장, 차량결함을 리콜 대신 무상교환하거나 축소 리콜해 1933억 원에 이르는 안전문제 비용을 절감했고 관청조사 종결로 8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절감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대·기아차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며, “국토부 등 결함을 규명해야 하는 기관들은 검증인력이 부족하고 장비와 기술력도 없고 해결 의지도 미흡해 자체검증이 불가능하거나 회사에 의존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정부의 무능과 방조, 심지어는 사실상 협조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범정부 차원의 자동차결함TF 구성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한편, 박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현대차의 내수차별과 관련한 질의로 보증기간 연장조치를 이끌어냈으며, 내달에는 경실련·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 등과 ‘자동차결함 리콜 문제’ 관련법을 제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자동차 결함 문제 해결을 위해 이달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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