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눈 멀어 내부통제·리스크 관리 허술 '구멍'…'제2의 모뉴엘 사태' 재현 우려

[데일리비즈온 안옥희 기자] 동양생명이 6000억원대에 달하는 육류담보사기대출에 휘말려 고공행진하던 실적에 제동이 걸렸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동양생명은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2.2% 증가한 2240억원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으나, 3803억원의 육류담보 대출잔액 때문에 지난해 4분기 실적이 곤두박질 칠 것으로 보인다.

동양생명이 보유한 육류담보대출 관련 총 대출잔액은 작년 말 기준으로 3803억원으로 추정되며, 연체금액은 2837억원으로 전체 대출잔액의 75%에 이른다. 이는 지금까지 확인된 금융권 육류담보대출 취급 잔액인 6000억원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며, 동양생명의 지난 2015년 당기순이익인 1510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NH투자증권과 대신증권은 동양생명의 지난해 4분기 당기순손실 규모를 각각 962억원과 507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증권사들 역시 실적 예상치를 대폭 낮추면서 올해 성장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육류담보대출은 소고기 등 냉동보관 중인 수입 육류를 담보로 이뤄지는 대출로  '미트론'(Meat loan)으로도 불린다. 육류 유통업자가 수입 고기를 창고업자에게 맡기면 창고업자가 담보확인증을 발급, 유통업자가 이를 토대로 대출을 받는 구조다. 담보 특성상 대출 기간은 3개월 안팎으로 짧고 금리는 연 8% 수준으로 높다.

일부 유통업자가 같은 담보를 두고 여러 금융사에 중복 대출을 받으면서 동양생명을 비롯한 20개 금융사가 총 6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육류담보대출을 중개하는 전문 브로커에 의해 금융사들이 놀아난 결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과거 허술한 금융시스템을 노린 초대형 금융사건인 모뉴엘과 KT ENS 사건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모뉴엘과 KT ENS의 경우 담보 역할을 하는 육류에 대한 금융권의 심사체계가 부실해 피해를 키웠다. 이번 사기대출 사건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금융사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채 단기 실적을 위해 허술한 담보를 토대로 관행에 따라 대출을 실행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우려를 더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동양생명이 고수익에 눈이 멀어 등기가 없는 리스크 상품인 육류담보대출을 감행한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국내 생명보험사 5위 수준인 동양생명의 피해 규모가 유독 큰 것을 두고 동양생명의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에 구멍이 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양생명은 한 육류 유통회사의 대출금 연체액이 급속히 불어난 것을 두고 경위를 파악한 결과 하나의 담보물을 두고 여러 금융사가 대출해준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자진 신고한 상태다.

동양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 금융사들이 구성한 채권단협의회에서는 동양생명이 이 같은 중복대출을 사전에 파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연체된 금액 2837억 원 중 1~3개월 연체액이 2543억 원에 달해 적어도 1개월 전부터는 연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금융사고를 인지 또는 발견한 즉시 금융사가 금융당국에 보고해야하지만, 동양생명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금감원이 지난달 27일부터 관련 조사에 나섰으나 동양생명은 다음날인 28일에서야 연체 사실을 공시했다. 늑장 보고를 둘러싸고 주주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피해사실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한편, 이번 대규모 육류담보사기대출 사태 파장으로 금융권이 휘청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피해 규모가 3803억원으로 가장 큰 동양생명을 비롯해 2금융권의 육류담보대출 취급액이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육류담보대출 잔액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사는 HK저축은행 354억원, 효성캐피탈 268억원, 한화저축은행 178억원, 신한캐피탈 170억원 등이다.

금융당국이 육류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저축은행·캐피탈사 등을 대상으로 대출규모와 실태 파악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이번 전수조사로 사기 금액이 조 단위로 불어날 가능성도 있어 관련 논란이 보험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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