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구조조정이어 불법 임금삭감 방치·대형조선소에만 정부지원 쏠린 탓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조선소 하청업체 직원들이 구조조정 중단과 고용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사진=포커스뉴스)

[데일리비즈온 안옥희 기자] 중소형조선소와 대형조선소의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조선업종 근로자는 1년 전에 비해 4만3000여명이 감소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체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조선업종 침체 장기화와 구조조정 여파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 등 생존 위기에 내몰려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대책위)는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불법 변경을 통한 임금삭감을 방치하지 말고 강력한 현장 감독을 실시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업체들이 지난해 6월부터 연간 550%던 상여금을 400%로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하는 법적 요건을 지키지 않고 불법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업체들은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해야하는 절차를 무시하는 등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이 같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업규칙을 변경, 하청노동자 100명의 상여금을 15% 삭감했다면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도 사용자측이 연간 2억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대책위는 주장했다.

이에 대책위 이승호 집행위원장 등 10명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지난해 8월 사내 하청업체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노동부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같은 해 12월 하청업체에 50만원 벌금에 약식 기소했다. 대책위는 “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고작 벌금 50만원이라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하청업체 사장이 어디 있겠냐”며,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이 노동 현장의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거제·통영·고성 지역에서만 1만5000명 이상의 하청노동자가 실직했고 이 여파로 인해 체불임금액은 1년 전보다 9.95% 증가한 1조4286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정부 지원정책이 대형조선소에 쏠리면서 중소형조선소들의 경영위기는 더욱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동조선해양은 수출입은행이 수주 가이드라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적자 수주 물량 증가 가능성을 방치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선박수주 활동을 접었다. 수출입은행이 1% 이상 수익이 나지 않는 수주는 하지 않도록 하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함에 따라 성동조선해양은 세계 대형조선소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일자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한국수출입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채권단의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가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받았으나 별다른 대책 없이 인적 구조조정만 감행될 뿐 여전히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금속노조 경남지부 성동조선해양지회는 11일 확대 간부를 시작으로 주채권 은행인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 본점을 기점으로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회는 이날 결의대회를 열고 “자율협약을 진행하면서 정규직 절반 이상이 길거리로 내몰렸다”며, 수출입은행에 인력 구조조정 중단과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 완화를 요구했다.

지회는 “자금 유동성과 물량 확보를 위한 경영 정상화에 사용해야 할 지원 자금을 채권단이 인력감축에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미 하청업체의 폐업과 도산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임금 체불과 실직에 직면한 상황에서 지난 한달 사이 1000여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실직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인적 구조조정만 감행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채권단은 현 시황을 똑바로 보고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며, “현 기준을 계속 고집한다면 중형조선소에 신조 수주는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며, 결국 중형조선소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