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인문학의 길에서 묻다』 홍보책자, ‘외모지상주의’ 왜곡 강조해 편견조장 우려도

『화장품 인문학의 길에서 묻다』 표지

[데일리비즈온 홍미은 기자] (재)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지난 25일 발행한 『화장품 인문학의 길에서 묻다』의 일부 내용이 여성을 비하하고 일부 사회적 편견으로 남아있는 ‘외모지상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열거해 외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왜곡시켰다는 지적을 받아 문제가 되고 있다.

연구원은 화장품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는 취지아래 보건복지부로부터 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약 500부를 발행했다. 연구원은 이 책을 화장품 업계 관계자와 지역 도서관 등에 배부해 활용토록 할 예정이다.

책은 △인간의 감각과 화장품 △에피소드로 본 화장품 역사의 흐름 △심리의 길에서 본 화장품 △예술의 길에서 화장품을 만나다 △미래의 길에서 화장품을 이야기한다 △광고와의 동행 등 6가지 주제로 구성돼 화장의 역사와 역할 등을 조명했다.

그러나 연구원이 이 책을 펴내면서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발간한 탓인지 여성 비하적인 표현 등 보편타당성이나 상식선을 벗어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논란을 빚고 있다.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비하 발언으로 비칠 수 있는 일부 내용이다. 주로 대학교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방적인 주장만을 늘어놓았다는 지적이다. 일부 내용을 살펴보자.

“화장의 대인적인 목표는 자신이 사회적 규범을 잘 따르고, 아름다움을 가꿔야하는 여성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적응하는 사회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77P)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을 아니 한 상태에서 친구를 만났을 경우일지라도 쇼핑을 해야 하거나 사람이 많은 시내로 외출을 해야 한다면 친구의 제안을 꺼리거나 그 제안을 수용하기 위해 황급히 화장을 시작할 것이다.”(79P)

“화장을 통한 변신은 다르다. 마치 자신의 단점들을 화장품을 이용하여 살짝 덮어놓은 것과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아침에 공들여 변신한 외모가 다시 돌아올까 봐 두렵다. 마치 첫선을 보러 간 자리에서 감추고 싶은 과거를 들킨 여성의 마음과 같다.” (83P)

이날 열린 ‘글로벌 화장품 시장 동향 분석 세미나’에서 연구원이 나눠준 책을 받아본 일부 참가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참가자는 “화장이 무슨 사회적인 예의이자 의무인 양 적어 놨다”며 “아무리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모든 여성이 화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보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른 참가자는 “외모지상주의와 여성비하가 인문학이냐”라며 “일부 잘못된 사회적 편견들을 그대로 옮겨 놨다. 이런 거 하려고 돈을 투자했다는 건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한 여성 참가자는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말이냐”며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고정관념으로 아름다움 어쩌고 하는지 모르겠다. 전문가들 보라고 낸 책 맞냐”고 되물었다.

외모에 대한 평가 기준을 제시한 부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책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회적인 고정관념에 의해 규정되고 정의되며 평가하는 사람도 동료, 부모, 친구 등 주변의 사회 구성원들”(78P)이라며 여성들이 이런 평가를 인식해 외모를 가꾼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 어린아이도 외모로 지능까지 판단 받는다고 적었다.

“신체적 매력이란 사회적 합의에 의하여 정의되며 사회에서 이상화된 기준에 적합한 외모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82P)

“보편적으로 여성들은 항상 자신의 얼굴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하여 보다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반면 신체 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비관적이며,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83P)

“키가 작은 사람들에 비해 키가 큰 사람의 경우 더 매력적이고 신분이 높게 평가되고 좀 더 설득력이 있다.”(84P)

“선천적으로 매력적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매력적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교제에 있어 망설임이 없겠지만, 다이어트나 성형에 의해 매력적으로 신체를 관리한 경우에는 미래에도 매력적일 것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제를 망설일 수도 있다.”(85P)

“전문적으로 아기를 돌보는 사람들까지도 아기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한다. 매력적인 어린이가 매력 없는 어린이보다 더 높은 지능과 더 큰 잠재력을 갖는 것으로 인식한다.”(86P)

책을 읽은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의 역사, 화장품 기술 발전 등을 담은 내용은 도움이 됐다. 시도는 좋았다”면서도 “여성에 대한 일부 왜곡된 발언은 역시 거슬린다”며 “앞으로 도서관에 비치된다면 화장품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볼 수도 있는데 편견을 조장할까 봐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 연구원 내부에서조차 “시간이 부족했다”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다” 등 아쉬움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내용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서둘러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화장품 인문학의 길에서 묻다』는 맞춤법 등 문법상 오류가 여기저기 자주 눈에 띄는 등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일부 그런 시각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도 “세미나 일정에 맞춰 (바쁘게) 준비하다 보니 인쇄하기 전에 면밀하게 내용을 다 검토하지 못했다”며 “그런 내용이 논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내부적으로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덕중 원장은 지난 25일 오산 연구원 소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집필진 구성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머리를 맞대고 멋진 아이템을 잡았는데 다 채워 넣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연구원이 독자적으로 책을 낸 것은 처음”이라며 “책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데 만족한다. 이런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책을 발간한 것 보다는 무슨 내용을 담았느냐가 더욱 중요한데 김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관계자는 “발간됐다는 얘긴 들었지만, 아직 책을 보진 못했다”며 “연말에 몰아서 사업 결과보고를 받는다”고 밝혔다. 책 내용을 검토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 사업 외에도 화장품 관련 사업이 연간 80억 규모다. 그렇다 보니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