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칼럼니스트(전 주시안총영사)
이강국 칼럼니스트(전 주시안총영사)

美 봉쇄정책과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 ①에 이어

◇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항해 중국은 자국의 방대한 내수시장과 일대일로 연선 국가들을 아우르면서 새로운 블록을 형성하여 맞서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구사하고 경제적 상호성이 높은 한국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첫째, 중국 정부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중국몽’ 달성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아편전쟁 이전에 중국이 차지하고 있었던 세계 GDP 비율은 30%가 넘었는데, 이러한 수준에 이르는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로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각종 정책도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대일로 정책」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자국기업과 인력 중심의 패키지형 진출을 추진함으로써 프로젝트 기회를 이용하여 실리를 챙기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나라들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차관 제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인해 ‘빚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은 ‘채무장부 외교’라고 하는데, 거액의 인프라 건설 자금을 빌려준 뒤 이를 지렛대로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군사적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이다. 99년 운영권을 넘겨 사실상 중국 관할로 넘어간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는 ‘빚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홍콩사태에서 보고 있듯이 앞으로 중국은 더욱 더 국제규범이나 상식보다는 철저히 자국의 정치적 이해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는 행태를 보일 것이다. 지금 중국은 덩샤오핑식 개혁개방 정책이 작동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중국 시장 개척노력을 계속하면서도 기술력을 키우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둘째, 미중 갈등 심화는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 언론에 미중갈등이 한국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논조가 대부분이고 중국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독일의 한 싱크탱크는 중국의 기술 굴기로 한국이 장기적으로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즉,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고 어떤 분야에서는 이미 앞서고 있으며 몇 년 내에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은 방법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LC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덤핑하다시피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무기력하게 밀려나는 형국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중국의 기술 굴기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한국에게 기회가 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굴기 지연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득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5G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제사회에서 막힘으로써 삼성 통신장비가 캐나다 등에서 약진하고 영국 등 여타 시장을 노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 미국이 전 세계 21개국 38개 화웨이 계열사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면서,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장비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회사와 거래를 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언론에서는 화웨이의 팔다리를 꽁꽁 묶어놓겠다는 조치로 평가했다. 국내언론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규제 적용 가능성 크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것도 꼭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화웨이는 삼성으로부터 반도체를 구매하는 고객이지만, 휴대폰, 통신장비에서는 강력한 경쟁자다. 미국이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통신장비이기 때문에 화웨이가 제재를 받아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삼성이 반사적 이익을 얻게 된다. 미중경쟁의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하지 말고 돌파구를 마련하고 기회를 창출해 나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언론과 전문가, 나아가 정부가 제대로 된 인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정부가 기업의 일이라고 하면서 방관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영국에서 보듯이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는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국은 정부내에 이러한 문제를 결정하는 메카니즘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고 국가 보안, 국민 개인정보 보호 등 여러 가지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계속해서 한국의 일부 통신업체의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문제를 제기하고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당초 해당 업체도 국제적인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부도 관련 업체와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을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새겨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넷째, EPN 구축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고 글로벌 밸류체인 전환 움직임에 뒤쳐서는 안 된다. 제1강대국인 미국으로서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제2 강대국인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물샐틈없는’ 봉쇄정책을 취하려 할 것이다.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이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듯이 대중국 봉쇄정책은 정권 향배에 관계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 핵심이 EPN이 될 것이며, 일본, 유럽, 호주, 대만 등이 EPN에 가세하면서 반도체 동맹 등 다양한 형태의 산업동맹을 추진하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표준화 작업을 선도하려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많은 부분은 중간재이고, 중국이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수출하고 있는 구조인데, EPN이 가시화되면 중국의 미국 등에 대한 수출이 타격을 보게 되고 한국은 수출이 줄어들고 경제적 입지가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 전환 움직임에서 뒤쳐지면 한국은 설자리가 없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제적인 판세를 제대로 읽어야 하며,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하면 확보할 수 있는 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기업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지를 냉정하게 생각하고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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