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 경영승계 위한 도구로

‘서희스타힐스’ 단지 전경. (사진=서희건설)
‘서희스타힐스’ 단지 전경. (사진=서희건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경쟁이 없는 곳엔 혁신이 없다. 시장경제 하에서 자명한 법칙이다. 그러나 이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 중 하나가 국내 건설 시장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내부거래로 혁신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업들은 계열사로부터 수의 계약으로 일감을 받는 동시에 실적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익회복을 위해 내부거래를 늘려왔다. 공정위에서도 부당 내부거래를 잡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아무래도 신통찮은 구석이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내 건설업 경쟁력의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본지는 주요 건설사의 내부거래 비중 실태를 심층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내부거래 핵심인 유성티엔에스

서희건설은 옛 포스코 출신인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1994년 설립한 중견건설사다. 2018년 기준으로 매출 1조1138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도급순위 38억원까지 올라섰다. 명실공히 서희그룹 내 핵심 상장사에 속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서희건설의 최대주주는 유성티엔에스(19.15%)다. 주요사업은 철강제품 제조판매와 휴게소업인데 이 회장 지분 8.68%에 비해 오너 2세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실제 장녀인 은희씨, 차녀 성희씨, 막내 도희씨가 각각 4.35%, 3.53%, 6.01%의 지분을 소유해 사실상 3녀가 실세다. 서희그룹은 이들이 유성티엔에스를 통해 서희건설을 간접 지배하는 구조다. 아울러 3녀 모두 현재 그룹 내 경영에 관여한다.  

잊을 만 하면 언급되는 서희건설의 승계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서희그룹에는 유독 내부거래 비중이 큰 자회사들이 몇 있는데, 서희건설이 앞장서서 유성티엔에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회사들에 일감을 몰아주면 그 과실이 결과적으로는 이 회장 부녀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유독 유성티엔에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유성강업이 대표적이었다. 

유성강업은 2016년까지만 해도 매출이 30억원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업체였다. 그러나 이듬해 서희건설의 지원으로 매출 333억원을 달성했다. 당시 내부거래 비중은 72.67%에 달했다. 2018년에는 내부거래 비중이 무려 86.26%까지 올랐는데 이를 두고서는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않아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연 그럴까. 정부가 중견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고, 때마침 유성강업 못지않게 일감몰아주기 문제로 비판이 거셌던 자회사 애플디아이의 휴게소 식당 운영권이 서희건설로 넘어갔다. 대체로 공정위의 첫 번째 ‘타깃’이 될까 우려한 이 회장의 지시였다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2017년 서희건설과의 내부거래 비중이 무려 93.24%에 달한 애플디아이도 은희씨와 도희씨가 각각 지분 34.43%, 14.75%를 보유해 말 그대로 이 회장의 자(녀)회사에 속한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 아도니스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서희건설 및 유성티엔에스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서희건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 아도니스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서희건설 및 유성티엔에스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서희건설)

◇오너일가의 전환사채 발행 이유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내부거래 실태를 놓고 ‘승계 작업’과 연관짓곤 했다. 3녀가 모두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데다 그룹사 지분도 차지하고 있어서다.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들의 실적이 쌓이면 3녀에게도 추가 지분 획득을 위한 실탄이 쌓이는 식이다. 워낙 이 회장 일가의 지주사 영향력은 절대적이지만 3녀 각자의 영향력은 그렇지 못하니, 오너 2세들의 지배력 강화 측면에서도 내부거래는 늘 그리고 언제나 애용되던 카드다. 
  
최근에는 내부거래 대신 전환사채(CB)가 종종 언급되는 모양이다. 전환사채는 기존 채권처럼 이자와 만기가 정해져있지만, 일정기간 후에 주식으로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오너 일가에게 전환사채는 안정적인 이자수입과 함께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도 유성티엔에스는 사모방식의 전환사채를 자주 발행했다. 지난달 26일에도 14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전환사채 발행의 이유에 대해 사측은 당시 “3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를 갚기 위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 일가는 2년 전에도 연복리 4.5%(만기이자율)의 전환사채 100억 원어치를 인수했는데 내년 7월이 만기다. 이 때까지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 보유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이자수입을 얻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채 권리를 보유한다.

이 회장 일가로서는 안정적인 이자수입으로 현금을 확보하면서, 주가가 오를 경우 시세보다 싼값에 지분을 대량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대로 유성티엔에스 주주 입장에서는 불행이다. 전환권을 행사할 시 주식을 새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신주가 상장된다. 이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비슷한 사건으로는 과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과 3녀 개인회사가 보유한 유성티엔에스의 지분 합계는 48.23%이지만, 전환사채권을 모두 주식으로 바꾸면 62.50%까지 올라간다. 굳이 승계 및 경영권 강화를 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부거래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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