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변화에 따라 뇌 속 수면 회로 바뀌는 원리 규명
-초파리 모델 활용, 열대야 수면장애 해소할 단서 찾아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과 우울증 유발하는 수면장애

기온 변화에 따라 뇌 속 수면 회로가 바뀌는 원리가 규명됐다. (사진=픽사베이)
기온 변화에 따라 뇌 속 수면 회로가 바뀌는 원리가 규명됐다. (사진=셔터스톡)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이면 낮에도 잠이 오는 현상인 춘곤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온이 더 올라가는 여름에는 해가 지는 밤에도 무더위로 인해 잠이 들기 어렵다. 결국 수면장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국내 연구진이 수면장애를 해소할 단서를 발견했다. 기온 변화에 따라 뇌 속 수면 회로가 바뀌는 원리다.  

너무 밝거나 습한 환경, 시끄러운 공간, 건강하지 못한 신체 조건 등에선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기온도 수면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임정훈 교수팀은 초파리 모델을 활용해 ‘기온에 따라 수면 패턴이 변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를 사용해 신호를 주고받는 수면조절 신경세포들 간의 ‘연접 부위(시냅스)’가 기온이 높아지면 사라져 수면 패턴이 달라진다.

보통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은 낮 동안 나른하고 밤에는 잠을 못 이루는 ‘열대야 수면 패턴’을 보인다. 초파리도 이와 비슷하게 무더운 환경에서 낮 동안 적게 활동하고 밤에는 잠을 못 이룬다. 연구팀은 이 현상의 신경생리학적 원리를 찾고자 형질전환 초파리를 무더운 여름과 흡사한 환경에서 배양하며 수면 패턴을 관찰했다.

기온 변화에 의한 ‘가바(GABA) 생성 신경세포’과 ‘수면촉진 신경세포(dFSB)’ 간의 시냅스 가소성 (사진=UNIST)
기온 변화에 의한 ‘가바(GABA) 생성 신경세포’과 ‘수면촉진 신경세포(dFSB)’ 간의 시냅스 가소성 (사진=UNIST)

◇숙면에 대한 놀랍고 새로운 발견

실험에 사용한 초파리는 ‘셰이커(Shake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종류다.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뇌 속에서 칼륨 이온(K⁺)이 지나는 통로를 만드는데, 만약 이 단백질이 결핍되면 신경세포를 과도하게 활성화해 수면을 억제한다. 따라서 다른 초파리에 비해 적게 자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종류의 초파리를 무더운 환경에서 배양한 결과 수면 억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수면촉진 신경세포다발’과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 사이의 연결고리가 사라져서임을 밝혔다. 셰이커 유전자 돌연변이는 가바 신호전달 과정을 과도하게 활성화해 수면을 억제한다. 그런데 기온이 높아지면 ‘가바를 생산하는 신경세포’와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가 사라진다. 가바를 전달해서 수면을 억제하기 어려워 더 잘 자게 된다는 것이다.

또 살아있는 초파리 뇌의 칼슘 이온(Ca²⁺) 이미징 기법을 이용해 ‘수면촉진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신호가 기온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낮은 기온(21℃)에서 가바가, 높은 기온(29℃)에서는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수면촉진 신경세포의 활성을 제어하는 게 관찰됐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임정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온’이라는 환경요인이 수면촉진 신경세포의 가소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끄는지, 또 어떻게 수면이라는 복합적인 행동으로 구현되는지 신경 유전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춘곤증이나 여름철 열대야 현상 등으로 인한 수면 패턴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로 인한 수면장애를 해소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숙면을 취하면 건강해진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수면 시간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사진=픽사베이)
숙면을 취하면 건강해진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수면 시간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사진=픽사베이)

◇기온에 따라 수면 패턴 변화는 원리 

수면장애는 잠과 관련된 모든 장애를 말한다. 잠을 자야하는 밤에 충분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잠을 많이 잤어도 낮에 정신이 맑지 못한 경우가 해당된다. 불면증이 수면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충분한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활동 시간인 낮에 피로에 시달리고 집중력이 저하돼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질병 위험도 높아진다. 고혈압 위험은 2배로 증가하면서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이 악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수면장애는 또 당뇨병 등 성인병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열대야처럼 높은 기온에서 수면장애를 겪는 이유는 이는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잠이 들 수 있는 기온(20℃)을 넘어서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기온이 높은 환경에서 체온을 낮추기 위한 신체 환경이 조성되고 이 때문에 혈관이 확장되면서 심장 박동수가 빨라져 수면에 들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국내 환자는 2016년 49만4915명, 2017년 51만5326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또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18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22분이었고 한국인은 이보다 40분이나 짧은 7시간 41분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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