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물거품 된 ‘개미들의 노력’

유럽을 덮친 코로나19 위기.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유럽연합(EU)의 재정정책은 ‘아껴서 잘 살자’는 철학을 갖고 있는 독일 소수와 ‘지금은 써야할 때’로 대표하는 남유럽 다수 국가의 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협은 ‘개미’냐 ‘베짱이’냐를 둘러싼 모든 논란을 무력화시켰다. EU는 이제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근면성실하게 미래를 대비한 개미가 옳았던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본래 재정정책이란 써야 할 타이밍에 쓰는 것이 어쩌면 아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써야 할 타이밍을 파악하고 쓰자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많은 단계에서의 ‘현명한 결정’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EU는 회원국들에게 ‘개미’는 곧 절대선이요 ‘베짱이’는 절대악이라는 관념을 공공연하게 투사해왔다. 물론 이 와중에 협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2000년대 내내 독일 등 북방 국가들은 아끼고 또 아껴가며 부유해진 반면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등은 만성적인 적자나 좀비 기업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베짱이들은 개미들에게 구걸했고, 개미들은 지출에 대한 엄격한 규칙과 경제 개혁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한 흐름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베짱이들이라고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국가채무를 GDP의 60%로 제한하는 법률에 반대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극우 정당이 득세를 부리고 있다. 영국의 뒤를 따라 EU를 탈퇴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엄격한 재정통제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해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특별 지출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힘을 얻는 추세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은 아예 개미들에게 돈을 더 쓰라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여유 있는 소비를 바라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코로나19는 이들의 바람을 태풍으로 바꾸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파탄은 개미와 베짱이를 가리지 않는다. 엄격한 지출규정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에 스페인은 GDP의 3%에 달하는 경기부양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GDP의 2%에 달하는 추가경정안을 내놓았다. 심지어 ‘개미의 여왕’ 독일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GDP의 4%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들고 나왔다. 156억 유로(약 256조원)에 달하는 채권 발행계획까지 세웠다. 저명한 경제학자 클라우스 비스테센은 한 술 더 떠 “추거 지출규모가 왜 이렇게 작느냐”며 호통을 쳤고, 이는 베짱이들의 설움을 대변했다.

개미들은 ‘그래도 그 동안 아껴 살았으니 이 정도로 선방했다’며 자위하기도 한다. 올라프 숄즈 독일 재무장관이 대표적이다. 최근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네덜란드 당국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개미나 베짱이나 알고 보니 자금조달능력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지만, 차입비용만 놓고 보자면 네덜란드와 큰 차이가 없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상황에 대해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너무 강력해 각 국가들의 노력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10년간 열심히 아껴 약 300억 유로의 흑자를 냈지만 지금 당국은 약 900억 유로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개미가 베짱이들보다 나았다고 자위하는 일은 이코노미스트의 표현대로 진흙탕 속에서 그나마 내 얼굴이 가장 깨끗하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베짱이들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재정규율’을 개미들이 앞장서서 깨야하는 상황이니, 어떻게 코로나19 사태가 무사히 진정된다 해도 EU 회원국들은 새로운 질서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개미와 베짱이 모두 그들이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실에서는 개미의 선택이 베짱이의 선택보다 항상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진 유럽을 기대하기 전에 코로나19의 여파가 너무 강력하다는 점이 맘에 걸린다. 그들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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