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진 벽산LTC엔터프라이즈

벽산의 대표브랜드 ‘블루밍’ 사진은 방화동 신마곡벽산블루밍 전경. (사진=벽산)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옛말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기업 총수는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보다 가업 승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수성가한 탓에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전문 경영인보다는 자녀들을 믿는다. 실제로 패션기업을 대표하는 형지, 에스제이, 에스제이듀코, 한세실업, 한세엠케이, 휠라코리아 등을 훑어봐도 2·3세들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거나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서고 있다. 물론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본지는 심층 기획취재를 통해 그 면면을 분석 보도키로 했다. <편집자 주> 

◇ 베일에 가려진 벽산LTC엔터프라이즈

벽산그룹 자회사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경영 승계를 위한 핵심 역할을 하는 창구다. 이곳에는 벽산그룹 창업주인 고 김인득 명예회장의 장손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와 그의 동생인 김찬식 벽산 부사장, 그리고 두 사람의 세 자녀가 2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친족 기업이라 할만하다. 

가족기업의 특성을 잘 드러나는 수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내부거래 비중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33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3개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액은 325억원으로 무려 97.2%에 달한다.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다. 2018년까지 최근 4년간 내부거래 비중도 94%, 96%, 95%, 90%에 달했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가 영위 중인 사업은 건축자재 및 철물 도매업이다.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하거나 수급이 불안정한 품목이 아니다. 아울러 건축자재 도매업은 기존 업체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사업일뿐더러 짧은 업력을 지닌 벽산LTC의 경쟁력이 특출 나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가 없다. 이러한 계열사 간 내거래 정황상 경영권 승계의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본지는 이번 일과 관련한 벽산그룹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커뮤니케이션 역할 담당자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진=벽산)

◇ 자회사가 모회사를 지배하는 속사정

벽산LTC엔터프라이즈는 최근 벽산의 지분을 잇따라 매입하며 최대주주(9.63%)로 등극했다. 구직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벽산LTC엔터프라이즈의 2018년 기준 종업원 수는 6명에 불과하다. 6명이 일하는 자회사가 모회사를 지분으로 지배하는 모양새다. 2대 주주는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2세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8.80%)이다.
 
벽산LTC엔터프라이즈가 향후 벽산그룹의 최대주주 지위 승계에 있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또한 김성식 대표는 현재 벽산의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회사인 벽산LTC엔터프라이즈가 벽산의 최대주주에 등극했다는 소식은 곧 김 대표의 ‘지배력 강화’를 의미한다.

물론 합계 60%의 지분을 보유한 세 자녀인 주리·태인·태현 씨에게도 희소식이다. 이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일부는 아직 미성년자라는 지적이다. 오너 일가가 4세 승계까지 염두에 두고 지분을 배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정부가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를 확대한다면 벽산이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벽산은 현재 중견그룹의 내부거래 규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김상조 정책실장과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악연이 있다. 두 사람은 과거 소액주주운동을 펼칠 당시 (지금은 파산한) 벽산건설의 내부거래를 비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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