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규제의 첫 번째 타깃될까?

한라그룹 주력사인 만도 경기도 판교 사옥 전경. (사진=만도)
한라그룹 주력사인 만도 경기도 판교 사옥 전경. (사진=만도)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경쟁이 없는 곳엔 혁신이 없다. 시장경제 하에서 자명한 법칙이다. 그러나 이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 중 하나가 국내 건설 시장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내부거래로 혁신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업들은 계열사로부터 수의 계약으로 일감을 받는 동시에 실적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익회복을 위해 내부거래를 늘려왔다. 공정위에서도 부당 내부거래를 잡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아무래도 신통찮은 구석이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내 건설업 경쟁력의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본지는 주요 건설사의 내부거래 비중 실태를 심층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 ‘김상조 효과’에 직격탄 맞은 한라그룹

한라그룹 건설부문인 한라는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의하면 한라의 2018년과 2017년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33.4%, 38.3%를 기록했다. 이는 SK건설과 태영건설과 함께 내부거래 비중이 30%대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한라그룹은 아직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은 아니다. 현재 지분율은 23.56%에 불과하다. 현행법은 오너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지분 50%을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를 규제대상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향후가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기존 내부거래 비중이 30%에서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오너그룹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018년 당시 “향후 중견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겠다”며 강도높은 규제를 암시했다. 

이후 지난해 말 한라그룹 주력사인 한라개발은 전격 매각됐다. 한라개발이 한라그룹에 편입된 2012년 이후 고속성장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고속성장 바탕에는 수상한 내부거래가 보인다. 지난해 한라개발은 전체 내부거래의 60%를 지배회사인 한라와 그룹 계열사인 만도로부터 지원받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공정위의 압박(?)을 간파한 한라그룹이 미리 알짜 자회사를 판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한라 측은 “한라개발 매각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매각됐다”며 “당시 공정위로부터 계열사 제외 통지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한라 로고. (사진=한라)
한라 로고. (사진=한라)

◇ 오너 중심으로 운영되는 그룹사의 전형

한라그룹은 오너 중심으로 운영되는 건설그룹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라그룹 건설부분은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사 체제를 공고히 한다.  정 회장은 그룹사 꼭대기에 위치한 한라홀딩스의 지분 23.38%을 보유하고 있다. 한라홀딩스의 한라에 대한 지배력은 더 막강하다. 한라홀딩스가 16.88%, 정몽원 회장이 18.17%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라대학교 학교법인인 배달학원이 2.38%, 부인과 자녀들, 친인척이 0.4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범현대가인 KCC도 10.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워낙 막대하다보니 한라 역시도 정 회장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타깃은 한라가 아닌 한라가 절반 이상의 지분율을 보유한 한라개발로 쏠렸다. 한라의 든든한 지원 아래 한라개발은 2012년 이래 유례없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모회사인 한라 뿐 아니라 관계사인 만도와의 일감을 쏟아부은 결과다. 한라그룹의 전 계열사 및 자회사가 달라붙은 결과 한라개발은 5년 사이에 매출 40억 대에서 200억 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흔히 그룹사에서 건설사에 일감을 몰아줘 크기를 키우는 경우는 다반사다. 하지만 한라의 경우 건설사 및 그룹 내 계열사들이 총동원되어 그룹 내 부동산을 관리하는 기업에 실적을 몰아줬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스포츠 시설을 운영하고 보안, 조경하는 기업에 일감을 이렇게 까지 몰아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기타 대기업 그룹사들이 순환출자 구조를 복잡하게 해 사익편취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하는 데 비해 한라그룹의 구조는 단순한 편이다. 정몽원 회장→한라→한라개발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한라개발의 실적은 그대로 정 회장 일가의 주머니로 흘러들어오는 구조다. 게다가 그 대상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기 어렵고, 애초에 내부거래가 활발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기업이니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 한라 관계자 “SPC 사업에 따른 일시 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라는 애초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 문제 없다’는 눈치다. 관련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한라를 포함한 중견건설사들이 눈치보기에 돌입했다”고 설명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의 폭이 아직 넓어지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그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하는 데다 그렇다면 누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한라를 포함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라 관계자는 “최근 내부거래 비중이 증가한 이유는 특수목적법인(SPC) 사업 진행에 따른 일시적인 증가”라며 “배곧신도시 공사가 종료되면 내부비중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라홀딩스는 한라그룹의 지주사이지만 주력 계열사들을 연결 종속사로 거느리고 있지는 않다. 지분율을 고려해 만도, 만도헬라, 한라 등을 관계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라홀딩스는 기업설명(IR)자료에 연결 종속사들은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관계기업들은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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