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넘치는 샌프란시스코·뉴욕 등 美 대도시
-70년대 이후 공급부양 정책에서 수요중시로 급선회
-英 이코노미스트 “보조금 지급이 집값 상승 불러와”

LA의 노숙자들 (사진=AFP)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어딜 가나 부동산이 문제다. 평범한 가장이 평생 벌어도 변변한 집 한 채 구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영미권 대도시의 집값 문제가 훨씬 더 오래되었고, 더 심각해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LA의 노숙자 수가 50% 가까이 증가했다. 뉴욕에서는 무려 60%나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문제’ 역시 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가령 트위터와 우버의 본사 앞에는 대낮부터 노숙자들이 모여 하릴없이 앉아있거나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닌다. 

하지만 모든 대도시가 또 그렇지는 않다. 서울이나 도쿄 역시 샌프란시스코만큼 세계적인 도시다. 노숙자가 없지야 않겠지만, 샌프란시스코처럼 어딜 가나 흔한 것은 또 아니다. 4차 산업단지로 요즈음 가장 ‘핫한’ 스위스의 추크(Zug) 역시 샌프란시스코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음에도, 노숙자 한 명 찾아보기가 힘든 동네라는 평이 중론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노숙자 문제는 정부가 수십년 동안 해결하려 했었던 주거정책의 결과”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환경 개선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를 보면 결과는 영 신통찮은 모양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시장에 대해 사실상 ‘전권’을 휘둘러 왔다. 그들은 수백만 채의 주택을 직접 건설했으며, 그 주택은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되었다. 1949년 통과된 주택법이 6년 동안 연간 13만 채 이상의 공공주택 건설을 승인했다. 영국에서도 전후 20년 동안 약 300만 개의 임대주택을 건설했다. 일본과 독일(서독)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미국정부는 “주택난이 해결되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이 많아지다보니,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공공임대주택에 살기를 꺼려한 것이다. 1968년 런던의 공공주택이었던 로넌 포인트에서 누전으로 폭발이 일어난 이후로는 공공주택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1970년대 중반 세인트루이스와 미주리에서는 공공주택 건설관련 프로젝트가 돌연 중단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는 것보다, 차라리 집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지원해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을 쥐어주면 자기가 원하는 집을 살 테고, 공공주택에 대한 불만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사람들의 소비력이 늘어나면 민간 부문이 더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있었다.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졸지에 쫓겨나게 생긴 가정들을 위해서도 이 방법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미국의 한 공공주택단지 (사진=픽사베이)

◆ 공급보다는 ‘수요중시’ 정책으로

70년대 들어 주택공급보다 주택수요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들이 속속 등장했다. 영국은 1970년대 초 들어 주택건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는 동시에, 가난한 세입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독일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주택자산을 영리 소유자에게 양도할 수 있게끔 정책을 조절했다. 미국에서도 전후 세대와 비교해 70년대 말까지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당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렇듯 눈에 띄는 성과에 “현금을 직접 뿌리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라는 말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주택구입을 위한 현금지원이 보기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반론 역시 80년대 이후로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워낙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그들의 구매력을 증가시킨다. 주택시장이 정상적이라면 유효 수요량의 증가는 곧 공급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택건설이라는 것이 워낙 그리 쉽지가 않다. 수요가 하루아침에 는다고 공급이 바로 다음날 이를 곧바로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보니 시장에는 초과수요가 발생했고, 주택가격을 점진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입자들에게 실질적인 ‘집값’이 되는 임대료가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면, 실질적으로 집주인들에게 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영국 주택수당의 절반은 결국 집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의 한 프랑스 논문은 주택수당이 1유로 오르면 임대료가 80센트 오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정부가 주택수당을 늘려 임대료 인상에 대응하고자 한다면, 임대료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역시 “장기적인 주택수당은 정부가 직접 주택을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늘날 대도시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뉴욕이나 LA의 중심가에서 높은 임대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주택을 직접 공급하라는 목소리가 근 40년 만에 다시금 불어 닥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각국 정부와 지자체는 이전과는 여러모로 다른 방법으로 ‘부동산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런던의 한 노숙자 (사진=유튜브 캡쳐)

‘주택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추크에서는 2014년 주택단지 훈지커아일(Hunziker Areal)을 농민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임대료는 인근지역대비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주택단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전거로 이동하고, 단지 내에서 채소밭을 가꾼다. 

각국 정부는 주택공급의 ‘스케일’을 한껏 키우는 모양새다. 2018년 영국은 1992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공공주택을 지었다.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전체의 7%에서 9%로 끌어올린다는 각오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정부는 공공주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5억 유로(약 7500억 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했다. 

물론 집값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요 증가에 대한 공급의 탄력성을 높이는 것이다. 도쿄의 노숙자가 이렇게 낮은 근본적인 이유는 어쩌면 집값(임대료)이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합리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도 “뉴욕에서 임대료가 10% 하락하면 노숙자 수가 8% 감소한다”고 밝혔다. 이러나저러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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