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일문학상 수상한 이가희 시인
[인터뷰] 대일문학상 수상한 이가희 시인
  • 심재율 기자
  • 승인 2020.01.17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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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이 발효하듯 등단한 지 20년
30세에 다시 문학의 세계에 들어와
어린시절 자녀 교육은 ‘책 읽어주기’로
지식재산 스토리텔링 연구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한 인간이 어떤 분야에서 우뚝 서는데 몇 년이 필요할까? 하루 3시간씩 10년 간 한 분야에 꾸준히 정진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20년은 지나야 그 분야의 진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식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본질을 통달하는 수준에 오르려면 말이다. 10년이건 20년이건 그냥 시간만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 그 기간 동안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파고 들 때 도달할 수 있다.

이가희 (58) 문학박사도 20년 세월이 필요했다. 그녀는 20년 전인 2001년 대전일보가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시인으로 등단했다. 등단한 시 제목이 ‘젓갈 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였다. 시는 앞으로 그녀가 걸어야 할 성숙의 과정을 암시라도 했을까,

시와 문학과 글에 파묻혀 발효시킨 시간이 어언 20년 그녀는 1월말 16회 대일문학상을 수상한다. 대전일보가 주는 최고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이가희 박사는 “등단한 지 20년 만에 큰 상을 받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가희 시인
이가희 시인

이 박사는 그동안 ‘젓갈 골목은 나를 발효시킨다’ 와 ‘또 다른 골목길에 서다’라는  두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3번째 저서로는 시와 에세이를 결합한 ‘지금은 나를 좀 더 사랑할 때’를 출판했다.

그녀는 대일문학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썼다. 

‘얼마 남지 않은 50대, 나의 가을도 여전히 허기집니다. 그런 나에게 선물 같은 대일문학상 선정 소식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지식재산 스토리텔링> 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다고 시 쓰기에 소홀했던 저에게 대일문학상 소식은 한가위 보름달 같은 선물입니다. 잠시 가을비도 거두고, 스러지는 잎새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보내면서 ‘제16회 대일문학상’ 선정의 기쁨을 누려 보렵니다. 벅찬 감정을 저 달빛아래 스르르 꺼내놓는 것이 비단 나 뿐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정진하겠습니다.‘ 

대일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은 선생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래, 열심히 시를 쓰자. 시가 삶이다. 잘했다. 축하한다”며 같이 기뻐해줬다.

이 박사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비교적 일찍 가정을 꾸려 낳은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이 박사는 30세에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대전엑스포가 열리던 1993년에 대전MBC방송에서 ‘문화가 소식’ 이라는 방송을 하면서 대전 충청지역의 문화소식을 깊이 있게 접하게 되었다.

그때 중구문화원에서 충남대 손종호 교수가 지도하는 시창작 교실을 취재했다. 나이 들어 문학을 공부하고 늙깎이 작가 지망생들이었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 장군 퇴역자, 맞춤법도 허술했지만 시인을 꿈꾸는 그 분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 시 화평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내면에 잠자고 있던 문학본능이 폭발했다. 방송을 하는 틈틈이 손종호 교수 팀에 들어가서 시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테크노밸리 11단지 안에서
테크노밸리 11단지 안에서

문학소녀의 본능이 살아났다. 얼마나 심취했는지 시집 20권을 사다 놓고 밤새워 다 읽는 날도 있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도전해서 본선에 오른 곳도 몇 군데 있었지만 최종심에서 탈락하곤 했다. 동양일보, 문학사상, 현대시학 최종심에서 계속 미끄러지던 그녀에게 마침내 등단의 희소식이 날아왔다. 200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다.

그런 과정은 고려대 문학예술과 석사과정에서 김명인 교수를 만나 글은 더욱 탄탄해졌다. 그녀는 문학의 스승으로 석사과정 지도교수였던 고려대 김명인 교수와 신춘문예 심사를 맡아 문단의 손을 잡아 준 나태주 시인을 꼽는다. 그리고 고은 시인의 작품으로 시세계를 넓혔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사물이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때에 따라서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박사는 두 자녀를 독특하게 키운 학부모로서도 유명하다. 큰 딸 박원희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2년 만에 수석 졸업하고, 미국 10개 명문대학에 합격하여 최종적으로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다시 스탠포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고, 현재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한다. 아들은 뮤지컬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딸의 10개 대학 합격에 대한 뉴스 화면. (사진=이가희)
딸의 10개 대학 합격에 대한 뉴스 화면. (사진=이가희)

이 박사는 “어렸을 적에 자녀에게 책을 많이 읽어줬다”고 말했다. 자녀가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줬다. 글자를 터득 한 후에도 그녀는 독서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독서목록을 작성하고, 너무 학문적으로 어려운 책은 적당한 보상을 해주며 격려했다. 이를테면 딱딱한 과학책을 읽으면 포도알을 붙여주고 칭찬을 많이 했다.

 어린 두 자녀는 책을 잔뜩 안고 와서는 엄마의 양쪽 무릎에 앉아서 엄마가 들려주는 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책을 읽어주기만 한 것이 아니다. 백설공주를 읽을 때는 딸은 백설공주 역을, 자신은 독사과를 건네는 나쁜 왕비 역을 맡아서 마치 연극하듯 서로 대사를 읽었다. 이렇게 오감을 이용한 교육에 재미를 들인 두 자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알아서 많은 책을 찾아 읽곤 했다.

이 박사는 딸의 특징으로 강한 승부욕을 들었다. 초등학생 때 딸은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과 섞여 영어 말하기대회에 나갔다. 해외파에 밀려 1등을 놓치면 죽으라고 연습해서 다음해 열리는 대회에는 반드시 대상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이 박사의 문학인생은 이제 세 번째 변화에 들어설 것 같다. 두 번째 시절은 지식재산과 문학을 연결하는 ‘지식재산 스토리텔링’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지식재산에 숨겨진 스토리를 발굴해서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이 박사는 “지식재산 스토리텔링 활동을 많이 하느라, 시 쓰기를 소홀히 했는데, 이번 대일문학상 수상자 선정으로 다시 시인으로 더 열심히 쓰라고 격려인 것 같다”며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을 맡고 있으며,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책임연구원을 일했다. 여전히 ‘지식재산 강국’을 외치는 그녀의 눈빛이 1월 겨울 햇살에도 반짝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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