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장바구니물가 척도…정치인들 희비 갈려
-인도 뿐 아니라 인접국 외교에도 영향

양파값에 따라 인도 정치인들의 희비가 갈린다. (사진=AFP)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인도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양파의 정치’라는 말이 유행한다. 양파값은 인도의 장바구니시장을 상징하는 하나의 척도다. 한식에서 마늘이 쓰이지 않는 음식이 드물듯, 양파가 들어가지 않은 인도음식이 없을 정도니, 양파 값이 너무 내리거나 오르면 지도자들은 소비자들과 양파 농가들 사이에서 쩔쩔매는 현상이 항상 반복돼왔다.

작년은 양파 농가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해였다. 유례없던 폭우와 한철에 집중된 강우량이 원인이었다. 드넓은 인도 북부와 중부의 양파 농가에 느닷없는 가뭄이 닥쳤다. 비에 젖은 양파 가운데 3분의 1이 썩어 없어졌고, 그나마도 뒤이어 찾아온 가뭄에 생산량이 급감했다. 결국 인도 전역의 양파 부족으로 이어졌고, 양파값은 전년 대비 3배가 뛰었다.

시민들은 눈에 띌 정도로 동요했다. 식재료 값이 하루아침에 폭등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도가정식의 대표주자인 커리와 비리야니(인도식 볶음밥)에는 실제로 엄청난 양의 양파가 들어간다. 가난한 인도인들도 흔히 짜파티라고 불리는 밀가루 떡 두어 개에 양파 슬라이스 한 두 조각은 늘 곁에 들고 다닐 정도니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인도 정치인들이 이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양파의 위기는 지난여름 가장 먼저 북인도 인도의 농가들과 중소도시 소비자들의 불만을 촉발시켰다. 막 재선에 성공한 수상 나렌드라 모디의 정치적 고향 구자라트 역시 그러한 지역 중 하나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모디 총리뿐만 아니라 일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집권여당 인도인민당(BJP)에 충격을 안겼다. 이들은 곧바로 농가 보조금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농가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그들은 1980년 당시 정적이었던 인디라 간디가 양파값과 경제실정을 동일시했던 선거전략 덕에 정권을 획득했던 일을 기억한다.

9월 정부는 마침내 양파 수출금지를 권고했다. 일시적으로 양파값이 내려갔고 소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방향에서 불똥이 튀었다. 양파가 필수적인 현금작물에 해당하는 구자라트, 마하라슈트라, 카르나타카의 농부들과 수출업체가 분노했다. 여당으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핵심지역들이기에 지도층들은 전전긍긍이다. 

인도의 양파농가 (사진=AFP)

◆ ‘양파의 정치’는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양파의 정치’는 이에 국제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인도는 일대 최고의 농산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일뿐더러,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주변국들의 식문화는 워낙 인도와 크게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인도가 양파 수출을 금지하자 가장 먼저 방글라데시는 발칵 뒤집어졌다. 여성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는 “아무리 그래도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방글라데시 식문화에서 인도 양파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수도인 다카에서 양파값이 5배가 뛰기도 했다. 하시나 총리마저 당시 “내 전속요리사도 요즘 양파 없는 식단을 구상하느라 골머리를 썩는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등의 식문화도 거의 비슷하니 이들 국가에게서 수입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보낸다. 하지만 양국간의 외교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양국간의 무역 규모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일어났던 범죄에 대해 최근 다시금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며 양 국의 관계는 다시금 껄끄러워졌다.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작년 말 파키스탄과 양파 수출을 논의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얼마나 절박했으면”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는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무역규모 역시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다만 방글라데시와 달리, 인도의 지도자들은 양파가격 안정보다 파키스탄과의 불화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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