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끼 식사 돕고, 양치질도 시켜
뒤늦게 사랑 깨닫고 아내 손수 간병
외출 땐 항상 손잡고 다녀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극작가 김용복(80) 선생은 저녁식사 시간을 앞두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치매에 걸리고 뇌수술을 받은 아내에게 밥을 떠 먹여주고, 대소변을 가려주고, 재우기 위해서이다.  

열흘 전만 해도 김용복 선생은 아내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아내 오성자 씨가 좋아하는 국을 끓여 식지 않게 보온병에 담아 병원에 들어가면, 저녁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5년 전부터 치매에 걸렸다. 자꾸 말이 느려지고, 자동차 사고를 자주 내길래 검사했더니 치매였다. 남편은 깜짝 놀랐다. 워낙 건강하게 운동도 잘하던 아내에게 예고없이 치매가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남편 역할을 하다가 아내가 아프니까 더 사랑이 깊어졌다. 평범해보이던 모든 것들이 전부 비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매체에 다양하게 기고하는 극작가는 아내의 치매라는 소재로 글을 올렸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치매 걸린 아내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비상상황에 대비해서 기저귀는 차안에 항상 넣어둔 채로. 시청 교육청 구청을 갈 때도 아내의 손을 잡고 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어서 뿌렸다. 

극작가 김용복과 부인 오성자 여사. (사진=김용복)
극작가 김용복과 부인 오성자 여사. (사진=김용복)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으례 초청자들은 “사모님도 모시고 오세요”라고 할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설동호 대전시 교육감은 오리고기를 찢어서 먹여줬다.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은 보리굴비를 먹여줬다.

그러던 중 뇌출혈로 또 쓰러졌다. 10월 30일 1차 수술을 받고, 11월 10일 2차 수술을 받고 4일 동안 의식도 회복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대한신경외과 회장을 하고 있는 이일우 신경전문의사는 두고 보자고 했지만, 마음은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가 없는 생활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도 하기 싫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아내와 찍은 사진만 보고 울고만 있었다. 

수술실을 방문한 김진태 의원(사진=김용복)
입원실을 방문한 박찬주 전 대장. (사진=김용복)

다행히 닷새가 지났을 때 “여보” 부르면 눈썹을 깜빡깜빡했다. 손을 꼬집으면 아 소리를 냈다. 얼마나 기뻤는지, 다행히 아내는 보름쯤 뒤에 깨어났다. 김진태 의원, 이명수 의원,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입원실을 다녀갔다. 박용갑 중구청장,  황인호 동구청장, 양길모 대전시 체육회장은 직접 입원실을 들렀다. 장종태 서구청장은 사모님이 대신 문안했다. 

퇴원 한 다음 남편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양원으로 아내를 옮겼다. 그리고 아침마다 출근해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줬다. 아침 7시에 아내를 깨우고, 온 몸을 주물러 주고, 식사를 먹여줬다. 아내가 좋아하는 오리탕 아욱국은 집에서 뜨끈하게 끓여 와서 보온병에 담아 오고, 중간 중간 양치질도 직접 시켜줬다.

병 문안 온 허태정 대전시장.(사진=김용복)
병 문안 온 허태정 대전시장.(사진=김용복)

지극정성이 통했는지, 아내는 요양병원에서 17일만에 퇴원했다. 연말연시가 가까운 29일에도 남편은 교회에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저녁식사를 떠 먹여줬다. 

“아내를 내 손으로 먹이는 그 자체가 행복이야. 아내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 아닌가.”
극작가는 “늙어보면 안다”고 설명했다.

‘당해 본 사람이나 아는’ 행복, 아내 없이 사는 친구들이 많은데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똥오줌 치우고 밥 먹이고 빨래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극작가는 깨닫고 있다. 

아내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있는 아내에게 아직도 무엇인가 해 줄 수 있다는 그것이 행복이다. “아내 똥 치우는 것도 행복하다”는 이 경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극작가는 “제정신이면 똥을 싸겠느냐, 짜증이 왜 나오느냐”고 반문한다.

병 문안 온 김진태 의원 (사진=김용복)
병 문안 온 김진태 의원 (사진=김용복)

아내의 치매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배드민턴, 볼링, 수영 선수였고 23개국을 여행했으며 그동안 뚜렷한 병을 앓은 적도 없었다. 그러던 아내가 치매라니. 요즘 아내는 남편만 보면 간신히 살아난다. 손님이 와서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면 아내는 한참동안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훨씬 덜 불안해한다. 

김용복 극작가는 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 1961년 3월 11일 첫 발령을 받아서 1999년 2월 28일 퇴직했다. 그동안 대평초등학교, 대천여고, 대천고등학교, 연서중학교, 충남여중, 대전중, 대전고, 대전여고, 유성고, 유성농고 등에서 가르쳤다. 퇴직 후 논술학원을 하다가 이후에는 학교 강의만 다녔다.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집무실에서. (사진=김용복)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집무실에서. (사진=김용복)

연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몸에 배어있다. 1991년 ‘후보를 사랑해요’라는 제목의 대본은 법무부가 주최한 대회에서 수상해 소년원생들을 출연시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져도 후보, 대학에 떨어져도 후보, 시험이나 경쟁에서 떨어진 모든 ‘후보’에게 힘내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극작가를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를 통해서 문단에 등단한 사람이 50여명이나 된다. 치매 걸린 아내를 소재로 쓴 글 중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내 아내 오성자의 또 다른 모습

                                       김용복 / 오성자 지킴이  

 나는 내 아내 오성자가 깔깔대며 박수치고 웃으면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내 우는 모습을 보는 오성자 내 아내는 ‘개지랄하네’라며 또 웃는다. 난 내 아내 웃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기도 한다. 

제 43회 중구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신나는 버스킹 한마당’이 열리는 날이다. 나는 월정을 불러 함께 가자고 한 다음 내 아내 오성자와 함께 뿌리공원으로 향했다. 지정석 중구발전 협의회장을 비롯하여 내빈들만도 30여 명이 넘었다. 수변무대 객석을 모두 메우고도 관객이 넘쳤다. 

  그런데 내 아내 오성자에게서 이변이 일어났다. 원로 테너 성악가 권오덕씨가 ‘오 내 사랑’과 ‘오 나의 태양’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 두 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부르기 어려운 이태리 가곡을. 
“내 사랑 그대여 어디로 갔나
내 사랑 그대는 다시 못 올 사랑
잘 가오 잘 가시오
그 언제 만나려나
잘 가오 잘 가시오“ 
‘두스엔터테인먼트’의 탭 댄스와 맘마미아 메들리는 톡톡 튀는 무대였다. 신명나서 튀니 관객들도 튀고, 내 아내 오성자는 좋아서 손뻑치며 깔깔댔다. 아내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오성자의 지킴이 김용복은 감사해서 눈물을 짓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전문MC 곽성열의 멘토를 알아듣고 손뼉치며 깔깔대는 모습이었다. 누가 이런 내 아내 오성자를 보고 대소변 못 가리는 치매 4급이라 하겠는가? 신나서 어깨 들썩거리고 박자에 맞춰 고개 까닥거리며 즐거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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