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폐단에도 무딘 시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동림 기자] 삼성이 ‘노사업무의 일환’으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를 ‘불온’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 단체를 후원하는 직원을 감시했다. 불온이란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뜻인데 진보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삼성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26일 <한겨례> 보도에 따르면, 삼성이 불온단체로 본 곳은 환경운동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여성민우회, 해산된 통합진보당 등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시민단체 및 정당 11곳과 ‘6월 민주항쟁’의 성지인 향린교회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은 이 같은 불온단체의 후원 여부를 알기 위해 임직원들의 동의 없이, 이들이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연말정산 자료를 무단으로 열람했다. 미전실은 임직원들의 기부금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테크윈, 삼성경제연구소, 삼성의료원 등 20여개 계열사를 뒤졌다. 

아울러 불온단체 기부금 납입 사실이 확인된 임직원의 기부액, 직급, 최종학력, 최종학교 등의 개인정보를 함께 기재해 386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을 올렸다. 이렇게 정리해서 만든 문건이 ‘불온단체 기부금 공제 내역 결과’다. 

삼성이 미전실 주도하에 임직원들의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수집해 온 것도 모자라 특정 단체나 정당을 후원한 이들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온 셈이다. 이는 명백한 불법사찰 행위일 뿐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또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 우를 범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진보성향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분류하고 계열사 직원의 후원 여부를 사찰했을까. 그 속사정을 알기 위해선 삼성의 경영방침을 살펴봐야 한다. 삼성은 창립 이래 81년간 ‘무노조 경영’ 원칙을 자부해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99.9건의 노사 분규가 발생했지만 삼성은 이러한 노사 분규에서 자유로웠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반도체 선제 투자가 가능했겠느냐’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된 데에는 무노조 정책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수십 년 간 권익과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삼성은 다른 기업처럼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는커녕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했다.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탄압과 감시로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을 과연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모르고 있었을까. 알았다면 일부러 눈감은 것이고, 만에 하나 몰랐다면 중대한 직무유기다. 삼성은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에 이어 이 부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삼성의 경영 환경과 경영가치도 세대교체를 맞이하고 있다. 법 위의 삼성이 아닌 법 아래의 삼성을 향한 ‘장고의 결단’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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