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인공지능 정부 되겠다”…전문가들은 “글쎄”
- 올해 ‘정부 AI 준비지수’ 우리나라 세계 26위, UAE·말레이보다 뒤져
- 인재 확보 및 기술력 제고 위해 “기업에 집중할 때” 목소리도

지난 10월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공지능 콘퍼런스 '데뷰(Developer’s View) 2019'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인공지능 관련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공지능 콘퍼런스 '데뷰(Developer’s View) 2019'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한국의 낮은 AI 경쟁력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모습이다. 정부 차원에서 AI 산업 진흥을 위한 계획을 속속들이 발표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AI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AI 시대 정부의 역할, ‘국가 전략’

투자의 귀재로 불리우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조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공지능 분야의 대표적 콘퍼런스 ‘데뷰(Developer’s View) 2019’ 행사에 참석해 “인공지능(AI)은 인류의 동반자”라며 “올해 안으로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지난 11일 '제27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29차 경제관계장관회의’의 안건 중 하나로 '인공지능 국가전략'를 상정하고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AI는 기술뿐만 아니라 탄탄한 국가 정책도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IT 기업인 인텔이 자체적으로 AI 국가 전략의 방향성을 논의한 후 그를 정부에 제시하기도 했다. 기업이 국가에 정부 정책을 직접 제안한 셈이다. 기업의 기술적 역량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부 정책, 즉 ‘국가 전략’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뿐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수많은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저마다의 AI 전략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와 방향성으로 성장하는 산업 환경에서도 기술 성장을 이뤄내려면 민간 분야의 도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민간의 적극적인 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AI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AI의 중요성을 알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연내로 AI 국가전략을 발표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후 과기정통부 내에 AI 담당 부서가 신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앞선 기사에서 살핀 인재의 부재라는 문제에 더해 정부의 몫인 각종 규제의 완화 등 치러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우리 정부의 AI 시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표도 있다. 영국 옥스포드 인사이트가 국제개발연구센터(IDRC)과 함께 UN 회원국 194개국 정부를 평가해 발표한 '2019년 정부 AI 준비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6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순위에서도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 등 보다 뒤진 8위를 기록했다.

◆ 기업 성장이 곧 기술력 성장

삼성전자의 한국 AI 총괄센터가 위치한 삼성전자 우면 R&D 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한국 AI 총괄센터가 위치한 삼성전자 우면 R&D 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에 보다 집중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 기술력의 성장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AI 시대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늦어진 가운데, 당장에 산업 활로를 개척해야 하는 기업들은 정부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지난 기사에서도 살핀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각종 규제에 가로막힌 삼성전자, 네이버 등의 국내 주요 대기업은 결국 ‘즉시 협업 가능한 연구진'을 보유한 AI 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연구소를 설립하는 등의 대안을 통해 AI 시대를 대비하고 있었다.

다른 전문가들의 상황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장병탁 교수는 현 우리나라의 AI 문제를 타개할 해법은 “인수합병(M&A)이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각종 규제로 인한 한계도 지적했다. 장 교수는 “기업을 만나면 인수할 회사가 없다고 한다”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지분 30%(비상장 20%) 넘어가면 무조건 자회사로 분류돼 공정위 규제를 받으니 선뜻 M&A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활로 모색을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인수합병이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규제로 인해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목이 잡히는 셈이다. 장 교수는 “우리 스타트업을 제값 주고 사고 그게 기술 진보를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AI 산업의 주체인 기업이 ‘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또 기업의 활로 마련 그 자체가 인재 유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인공지능을 선도하는 주요국의 핵심전략’ 보고서에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혜택을 구체화 해 글로벌 기업 AI R&D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기업의 국내 유치를 통해 우수인력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해외 우수인력의 국내 유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AI 환경이 ‘기업하기에 좋은’ 상태로 거듭난다면 국내 기업의 AI 분야 활로 모색은 물론 해외 기업의 국내 유치 또한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적극적으로 기업의 연구 활동을 장려하고 기업 간 기술 교류가 보다 활발해지면 국내에 기업의 R&D 센터와 같은 기술 거점 마련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가 AI 기업 R&D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국내 인재의 유출을 막고 우수한 해외 인재의 국내 유입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50.4%는 ‘가장 시급한 혁신 정책’으로 ‘기업 주도의 새로운 R&D 기획 체계 구축’를 꼽았다. 우리나라의 국가 R&D 투자 규모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77%로 매우 높다. 연구개발 인력의 연구원 수도 기업의 비중이 71%에 이른다. AI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에 보다 집중해야 할 때라는 주장에도 자연스레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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