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로힝야족 학살 혐의로 ICJ 재판 심리 시작
- 처벌 요구하는 국제사회에 미얀마, “근거 없는 주장”
- 로힝야족과의 오랜 원한관계 등 역사적 배경 고려해야한다 주장도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10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불리우던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부 장관이 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섰다.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국가 감비아가 불교 국가 미얀마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족이 2년 전 겪어야 했던 집단학살 행위에 대해 미얀마를 제소했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는 10일부터 12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서 심리를 받는다.

◆ 학살 두둔한 평화의 상징, 동요하는 국제 여론
미얀마 내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학살은 지난 2017년 불거졌다. 미얀마군은 2017년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종교적 탄압에 반발한 일부 로힝야족이 경찰 초소를 공격한 것이 대대적 토벌의 시작이었다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로힝야족 거주지역은 초토화됐다.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 있는 방글라데시에는 로힝야족 난민 70만명 이상이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학살 사태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대답은 국제 사회의 기대와는 달랐다.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공격 소식은 ‘가짜 뉴스’라며 사태의 책임을 반정부 무장집단에 돌려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고, 일각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 철회 요구까지 이어졌다. 노벨 위원회는 수상을 철회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한국 5·18 기념재단,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등은 각각 광주인권상과 엘리 비젤상 등의 수상을 철회하며 아웅산 수치의 '평화의 상징'이라는 칭호를 박탈했다.

지난 8월에는 유엔(UN) 미얀마 진상 조사단이 자체 조사 끝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군이 로힝야족 여성과 소년, 소녀는 물론 남성과 트랜스젠더를 상대로 정례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강간, 윤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성폭행을 자행했다"며 "너무나 광범위하고 심각해 종족학살 의도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얀마에 남아 있는 60만명의 로힝야족이 여전히 집단학살 위협 속에 살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유엔의 공식 발표 이후 국제 여론은 다시 크게 동요했고 지난 11월, 감비아가 이슬람협력기구를 대신해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집단학살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혐의에서 였다. 아울러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미얀마 지도자들이 로힝야족 수십만명을 방글라데시로 강제추방한 혐의로 별도 수사에 착수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런 미얀마군의 행위를 두고 '집단학살', '반인도범죄', '인종청소' 등으로 규정하며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군과 정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중이다.

◆ 역사와 미래 … 미얀마의 속사정

7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지지 집회에 참가한 미얀마 시민들의 모습
7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지지 집회에 참가한 미얀마 시민들의 모습

국제사회의 비판적 목소리와 달리 미얀마 내에서는 아웅산 수치의 행보에 옹호의 목소리를 더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미얀마와 로힝야족 간의 잔존한 역사적 앙금 탓이다. 로힝야족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 버마(Burma)이던 시절 영국에 의해 인도 지역으로부터 강제 이주됐다. 폭력적인 식민주의적 사고로 자행된 이주 탓에 로힝야족은 미얀마 및 미얀마 지역 소수민족과 우호적일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과거 로힝야족은 영국의 사주로 미얀마 불교 사찰을 불태우거나 승려를 학살했다. 군사 행위 등을 통해 미얀마에 있는 농장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탄압하기도 했다. 특히 로힝야족은 1942년 미얀마의 소수민족 아라칸족 2만명을 학살하는 등 다른 소수민족 차별에 앞장섰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얀마가 아웅산 수치에 지지의 뜻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있다. 지난 며칠간 아웅산 수치의 국제사법재판소 출두를 앞두고 그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미얀마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편 아웅산 수치의 뜻밖의 행보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중 하나는, 내년 미얀마 총선을 앞둔 아웅산 수치가 압도적 총선 승리를 통해 군부 독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는 헌법을 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현 미얀마 헌법 체계에는 군부 독재시절의 불합리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국 국적의 가족을 둔 이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아웅산 수치를 정확히 겨냥한 조항을 비롯해 국군통수권과 경찰통수권 등이 대통령이 아닌 군최고사령관에게 귀속돼 있다는 조항도 존재한다. 또 군부가 헌법 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아웅산 수치가 그의 측근을 형식적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뒤 국가자문역의 자격으로 실질적 국가 원수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유다. 또 같은 이유로 아웅산 수치의 군부 독재 청산 완수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아웅산 수치는 지난 2015년, 25년만에 치러진 민주적 선거로 군부 독재 청산의 첫 발을 땠다.

아웅산 수치는 오는 12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제판소에서 열리는 재판에 변호인단과 함께 미얀마를 대표하는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한다. 지난달 23일에는 우 키아우 틴트 스웨 국가고문실 장관과 우 키아우 틴 국제협력부 장관이 "이번 소송을 미얀마 및 미얀마 국민의 고도의 국익과 관련된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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