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대기질 400P 이상...한국은 20~30P 수준
-종교 문제와 연루 정치인들 쉽게 나서지 못해
-미세먼지 관심없는 모디 총리...정치인들 눈치보기 바빠

델리의 스모그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요즘 같은 시기 인도 북부를 방문하면 미세먼지가 하도 심해 마치 ‘화학전’이 한창인 듯한 느낌이다. 인도의 살인적인 미세먼지는 대개 암과 같은 질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도 연방정부는 이 문제의 본질을 애써 회피해오고 있다.

◇ 유독성 공기 체념한 인도 시민들

델리의 시민들은 유독성 공기에 체념한 모양새다. 그것은 인도의 정치적 실패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스모그로 인해 비즈니스 미팅을 연기하고 있다. 델리에서 열릴 스포츠 경기들에 대해서는 상대국 선수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선언한다. 학교는 문을 닫고 값비싼 공기청정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스모그는 보통 수천 개의 폭죽이 터지는 연중 힌두교 최대의 행사 디왈리 축제(10월 혹은 11월 중)를 기점으로 악화된다. 통상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다. 오염물질이 대기를 맴돌기 시작한다. 11월 초부터 인도 정부의 기상예측 및 연구시스템(SAFAR)은 인도의 평균 대기질 지수(AQI)가 400포인트 이상이라고 보고한다. 통상 100을 기점으로 위험성을 구분한다. 100은 호흡기 질환자에게 실질적인 건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수치다. 한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연중 20~30 정도다. WHO에서는 25를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평했다.

AQI가 400을 넘는 경우는 ‘전면적인 위험’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미세먼지로 유명한 중국과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대도시만이 이러한 수치를 기록한다. 그러나 북인도 대부분은 최근 근 한 달 동안 AQI 800~1500 수준의 미세먼지 수치를 기록중이다. 이에 인도 연방정부의 중앙오염통제위원회는 하루는 공중 보건 비상상태를 선포하는 한편, 다른 날에는 북인도의 학교들에게 휴교령을 권고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전면적인 해결보다는 미봉책에 가깝다.

정부에서 미세먼지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총선도 있었지만, 유독성 스모그는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세먼지에 대한 논쟁은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다.

마스크를 낀 거리의 인도 경찰들 (사진=AFP)
마스크를 낀 거리의 인도 경찰들 (사진=AFP)

◇ 미세먼지 해결 신앙과 충돌

인도에서 디왈리 시기에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주장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 디왈리와 미세먼지를 엮는 것은 신앙에 대한 모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이 문제는 경쟁자들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집권 여당 BJP도 사태의 본질을 애써 회피한다. 환경부 장관인 프라카시 자바데카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엉뚱하게도 힌두 전통음악을 들으라고 권고했다. 하쉬 바르단 보건부 장관은 당근을 먹는 것이 미세먼지에 대한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해 모디 총리실과 함께 공기청정기 140대를 구입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울러, 이들 장관들과 BJP 의원들은 아빈드 케리왈 주지사가 운영하는 델리 주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그가 주지사로서 시민들을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케리왈 주지사는 오히려 무책임한 쪽은 집권여당이라며 반격에 나선다.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지에 대한 문제는 현지진행형이다. 실제로 델리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시를 운영할 행정적 자치권을 두고 오래 전부터 대립해왔다.

델리는 AQI 지수가 때때로 1000을 훌쩍 넘을 정도로 인도 내에서도 무척 심각한 편에 속하지만, 사정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펀자브, 하리야나, 우타르프라데시주 등 인근 주들도 매년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독성 스모그에 시달린다.

문제는 펀자브와 하리야나의 대규모 농촌지역에서는 이 시기를 즈음해서 늘 벼를 수확하고 남은 폐기물을 태운다는 점이다. 수확한 쌀은 연방정부가 최저가로 조달한다. 이에 농부들이 실제 소비되는 쌀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을 경작하게끔 한다. 이에 보통 농약과 함께 버려진 폐기물은 ‘가장 비용은 적게 들지만, 환경에는 가장 유해한 방법’으로 소각된다. 여기에 화력발전소, 대규모 교통량, 미세먼지가 더해져 드넓은 북인도 일대를 일종의 가스실로 만든다.

이에 올해 들어 인도의 공기청정기 판매가 급증했다. 개인용 마스크 판매도 크게 늘었다. 상류층들은 자체적으로 발전기나 수도 시설을 갖추고 스스로를 다수의 주거공간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그러한 조치가 자신들을 스모크로부터 보호해 줄 유일한 수단이라는 인식에서다.

고탐 감비르 (사진=BBC)
고탐 감비르 (사진=BBC)

 

◇ 미세먼지에 관심 없는 인도 정치인들

인도의 크리켓 선수로 유명한 고탐 감비르는 올 5월 총선을 앞두고 델리 동쪽의 선거구에 BJP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그는 예상을 뒤엎고 총선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감비르는 이번 총선 출마자들 가운데 가장 부유한 후보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약 220억 원)에 달한다. 다소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선 직후 도시개발상임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상하원 의원 27명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지난 18일부터 시작되는 회기를 앞두고 미세먼지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정작 회의가 시작되자 27명의 운영위원 중 불과 4명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상대책을 상임위에 브리핑해야 할 핵심 관계자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 중에서는 감비르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의 선거구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 중 하나이다. 그 시각 그는 엉뚱하게도 인도 크리켓 팀과 방글라데시 팀의 시범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범경기의 TV중계 해설자로 계약되어 있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감비르의 한 보좌관은 그가 의회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던 그 날 트위터에 감비르가 크리켓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디저트를 먹는 사진을 올렸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감비르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판이 뒤따랐다. 이에 그는 즉시 사과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 와중에 한 동료 의원은 “그가 비난받는 이유는 사실 그가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최근 인도 연방정부는 지속적으로 주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인도 헌법상 인도의 주정부는 내부의 의제설정 및 정책실행에서 상당부분의 자치권을 실현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자율성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지적이다. 포린 폴리시(FP)도 오늘날 인도 주 정부의 상임위원회와 주지사들은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시민들을 중심으로는 대구모 시위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인들도 이 시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디 총리는 세계의 그 어느 지도자들 못지 않게 트위터를 애용하고, 또 소통을 강조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려 노력하지만 단 한 번도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의 건강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니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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