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림에 돌탑 17개 혼자서 쌓기도
한 달 12번은 1인 사물놀이 공연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이덕상 선생님의 스케줄은 꽉 차 있다. 일주일에 세 번 꼴로 자원봉사를 하러다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4일에도 할아버지는 대전시 용두동에 있는 한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혼자서 장구치고 괭가리에 징을 울리는 사물놀이를 하기 위해서이다. 할아버지는 딸 이혜련 씨가 민요를 부르면 1인 사물놀이 연주를 한다. 

등에는 징을 메었고, 목에는 장구를 걸었다. 장구 옆에는 꽹가리도 붙였다. 목에 매어 앞쪽으로 향한 장구와 꽹가리는 양손으로 박자에 맞춰 두드린다.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할 때 마다 발에 연결된 줄에 달린 솜방망이가 등에 맨 징을 두드린다.
혼자서 3개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년이면 90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거동도 어려울 텐데 이덕상 할아버지는 그 빠른 타악기를 혼자서 얼마나 활기차게 두드리는지 절로 흥이 난다. 귀는 약간 약해졌지만, 양손과 두 발의 근력은 얼마나 튼튼한지 연주소리만 들으면 청년이 움직이는 듯 하다. 지난 10월 공연은 12번을 다녔다. 

상소동 휴양림 돌탑앞에 선 이덕상.
상소동 휴양림 돌탑앞에 선 이덕상.

조금 체력부담을 줄여서 그렇지, 원래 할아버지는 북까지 합쳐서 완벽한 1인 사물놀이를 연주했다. 워낙 오랫동안 대전에서 1인 사물놀이 봉사를 다닌 까닭에 그를 알아보거나 그의 연주소리를 들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타고난 음악적 재질 덕분이지만, 이덕상 할아버지가 지금껏 저런 체력을 유지하는 것은 명백한 이유가 있다. 그는 아무 쓸모없이 보이는 돌을 이용해서 여러 사람 목숨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거의 혼자 힘으로 러시아의 둥근 궁전과 같은 모양의 조형미 넘치는 탑 17개를 쌓기도 했다.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옛 도로를 따라 계곡을 올라가면 상소동 오토캠프장이 나온다. 오토캠프장을 지나면 조그만 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 이 휴양림에 이덕상 할아버지는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 ‘희망탑’이라는 이름으로 돌탑을 쌓아서 기증했다.  

상소동 휴양림 돌탑
상소동 휴양림 돌탑

부여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20대 때 농사를 마치고 농한기가 되면 또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놀면서 시간을 때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추수가 끝나고 몇 달 동안 놀고 마시고 지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할아버지는 돌을 캐 모아서 혼자서 작은 성을 쌓았다.

1965년에 시작한 성 쌓기는 7년을 계속했다. 그가 쌓은 성의 흔적은 매년 늘어갔다. 그러던 중 1971년 대홍수가 왔다. 천운이라고나 할까 그가 쌓은 성이 물막이 역할을 했다. 여러 채의 가옥이 그가 쌓은 돌 성의 보호를 받아 홍수에 휩쓸려나가는 비극을 피했다. 덕분에 여러 명이 목숨을 건졌다. 

대전으로 옮겨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한 할아버지는 72세 되던 어느 날 상소동 휴양림에 탑을 쌓을 사람을 구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길로 그는 맨 손으로 상소동에 가서 탑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딱 2개만 쌓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늘어났다.

돌 쌓는 도구는 정말 간단하다. 시멘트에 망치 그리고 돌멩이를 가지런히 둥그렇게 원형을 잡아줄 몇 가지 간단한 도구가 전부이다.

3가지 타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한다.
3가지 타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한다.

그는 망치로 돌멩이를 납작하고 길쭉하게 잘라서 가지런하게 쌓아 올린다. 상소동 계곡에 널린 돌은 다행히 망치로 때리면 쉽게 가공이 됐다. 2개만 하려던 탑의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돌멩이가 부족하면, 그는 지게를 지고 산등성으로 올라갔다.

무거운 돌을 지고 내려오다가 낙엽에 덮인 우묵한 곳에 다리를 헛집어서 굴러 떨어진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했다. 건설현장과 돌탑을 쌓느라고 끊임없이 휘두른 망치질 덕분인지 그는 아직도 팔팔한 체력을 자랑하면서 혼자서 활기 넘치는 사물놀이를 공연하면서 대전시내 주요 요양원들을 수행한다.

다행히도 큰 딸 이혜련 씨는 든든한 공연의 동반자이다. 이혜련 씨는 아버지가 이동할 때 차를 가지고 와서 함께 오갈 뿐 더러, 아버지의 사물놀이 공연에 맞춰 민요를 부른다. 부녀가 함께 하는 공연은 요양원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큰 희망을 던져주는 인기 높은 레퍼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의 공연 경력은 아주 오래됐다. 한참 건강할 땐 대전역이나 홍명상가 목척공원 등을 돌면서 춤도 추고 사물놀이도 들려줬다. 큰 딸은 전을 부쳐서 나눠줬다. 대전시장, 동구청장 등에게 받은 표창장은 그의 수십 년 봉사활동을 증명한다. 

10월 공연 스케줄
10월 공연 스케줄

공연에 대한 열정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하고 싶어한다. 90세가 되는 내년에 백세시대를 맞아 어떻게 세월을 보내야할지 망설이는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그러나 배포가 맞는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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